① 생명이란 무엇인가 : 과학적 생명 인식__서정선

생명이란 무엇인가?

과학적 생명 인식

서정선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명예교수, 바이오협회장

 

 

이끄는 말 : 우주의 법칙과 생명

우주에는 어떠한 삼라만상이라도 한시도 거역할 수 없는 법칙이 있다. 열역학 제2법칙이다. 이 법칙은 ‘우주의 모든 활동은 엔트로피(무질서도)가 증가하는 방향 으로 진행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모든 물질들에게 주어진 우주의 법칙이다. 생명체의 탄생이라는 사건 도 예외없이 적용되는 잔혹한 우주의 법칙인 열역학 제2법칙에서 벗어나기 위한 물질들의 반란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러한 점에서 ‘생명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시공간을 제압하는 전략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생명의 특성을 알기 위 해서는 바로 생명이 갖고 있는 적응 전략들을 검토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 될 수도 있다.

생명의 전략들을 이해하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몸을 세포로 환원 시켜 세포 내에 물질들로부터 생명을 분석하는 상향적(bottum up) 환원적 생명 인식이고, 다른 하나는 몸을 하나의 블랙박스로 보고 자신의 오감을 이용해 느끼는 하향적(top down) 전일적 생명 인식이다.

이 글에서는 1943년 E. 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뛰어난 통찰력을 보 여준 책이 출판된 이후 계속 축적되고 확인된 상향 방식의 과학적 방법론을 통해 지금까지 얻은 성과를 중심으로 생명의 전략들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참고문헌 1)

생명에 관한 근본적인 세 가지 질문(참고 문헌 2, 4)

생명을 과학적 연구 대상으로 삼았을 때 던지는 질문은 대략 세 가지다. 첫째는 ‘생명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이고, 둘째는 ‘생명은 어떻게 자신의 형질을 변함없 이 후손에게 전할수 있을까’이며, 셋째는 ‘생명은 어떻게 자율적 형태 발생으로 자신만의 공간적인 형태를 만드는가’에 관한 것이다.

첫 번째 질문은 생명의 기원에 관한 것으로 실험적으로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이유는 생명 탄생의 초기 지구의 환경 조건을 재현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생명은 얼핏 볼 때는 자신은 질서를 추구하면서 열역학 제2법칙과는 반대로 가 는 듯이 보이나, 대사를 통해 음식 등을 분해해 발생하는 총 무질서도는 증가한 다. 최종적으로 세포 전체 차원에서 엔트로피는 감소하게 되어(무질서도는 증가) 생 명 활동은 열역학 제2법칙에 순응하게 된다.

그러나 아무리 생명이 엔트로피를 낮추면서 동시에 질서를 추구하는 일이 가 능하다 하더라도 시간적으로 자신의 유전정보 물질의 복제 시스템을 갖추지 않 고서는 생명의 유지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 대사와 복제, 두 가지 사건은 초기 생명에서 반드시 확보되어야 한다.

둘째 질문은 유전 현상에 관한 것으로 모든 생명체의 공통적인 정보 전달 방식 에 관한 것이다. 150여 년 전 멘델의 통찰력으로 시작된 유전 현상은 20세기 중반 에 와서야 구체적으로 유전자가 DNA임이 밝혀지고 실체가 해명되었다. 이로부 터 20세기 과학적 생명 인식의 중요한 전환점인 분자생물학이 탄생했다. 기계적 생명관이라는 비난도 받지만 분자생물학의 생명에 대한 도전과 성과는 20세기를 생물학의 시대로 만들 만큼 대단한 성과를 이룩했다.

세 번째 질문은 같은 수정란으로부터 시작한 세포들이 질적으로 다른 분화된 세포가 되는 특수 분화 과정에 관한 연구와 형태 발생의 비밀을 규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질문은 몸 차원에서 답을 구해야 하기 때문에 두 번째 질문에 비하면 아직 충분한 성과들을 갖고 있지 않다. 이제 시작 단계이다.

이러한 세 가지 질문들은 생명현상을 입자 중심으로 파악해 물질들의 구체적 인 기능까지 밝히는데 큰 공헌을 했다.

상향 방식의 생명 인식(참고 문헌 2, 4)

분자생물학의 발달과 고분자들의 관계

1953년 DNA의 이중나선 구조가 밝혀졌다. 이중나선 구조는 복제 시에 DNA 한 가닥이 주형이 되는 구조로 효율적인 복제가 가능한 특수 구조라는 것이 알려졌 다. 1950년대와 60년대에 걸쳐 천재적인 파지 연구 그룹 등의 결과로 엄청난 복 제의 비밀이 풀리자 사람들은 자신들이 해온 일들이 기존 생화학이나 세포생물 학과는 다르다는 점에서 분자생물학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생명의 다양성은 생체 내 고분자들의 기능의 다양성으로부터 비롯되며, 또한 고분자들의 다양한 기능은 그들의 구조로부터 나온다는 것이 분자생물학의 근본 원리이다. “새로운 기능은 새로운 구조를 요구하며, 새로운 구조는 새로운 기능을 낳는다”라는 말은 분자생물학을 한마디로 잘 표현하고 있다. 결국 진화라는 현상 도 새로운 기능을 얻기 위해 새로운 구조를 득해나가는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다. 분자생물학에서 고분자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크기가 어느 정도 이상이지 않은 물질은 기능을 위한 3차원적인 구조를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생명은 생존을 위한 자신의 DNA에 내재한 계획의 실현(합목적성)을 쟁취하기 위 한 노력이라고 할 때 이러한 목표 수행을 위해 존재하는 물질이 단백질인 것이다.

그렇다면 단백질의 어떤 특성이 생명으로 하여금 열역학 제2법칙에서 벗어나 고도의 질서를 추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인가? 그것은 단백질의 입체적 특이성을 바탕으로 한 물질 식별력 때문이다.

고분자들 간의 관계 : 중심 도그마(Central Dogma)

우리는 분자생물학이라고 하면 다음과 같은 말을 떠올린다. “DNA는 RNA를 만들 고 RNA는 단백질을 만든다(DNA makes RNA makes protein).” 이것이 중심 도그마(Central Dogma)이다. 이 말은 DNA 속의 유전정보가 어떻게 생명의 실제 주역인 단백질 구조 로 나타나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생명 정보의 흐름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단백질의 3차 구조를 결정하는 것은 1차 구조, 즉 아미노산 배열 순서이다. 따 라서 “아미노산 서열 결정이 어떻게 DNA의 염기서열로부터 유래될 것인가” 하는 질문은 바로 유전암호 해독의 문제로 이어지게 되었다. 결국 유전정보는 복제되어 다음 세대로 전달되거나 아니면 아미노산 서열로 환원되어 단백질을 만든다. 중심 도그마설은 이제 모든 생명체에서 공통되는 정보 흐름이 되었다.

생명 진화의 무한계성 : 단백질의 물질 식별력과 입체 구조의 가역적 변화

생명은 열린계로서 외부로부터의 에너지 유입이 반드시 필요하다. 에너지 공 급은 생명 유지의 전제 조건이다. 에너지는 고분자 생합성에 사용되어 생명의 본 질인 고분자의 입체적 특이성을 확보하게 한다. 우리는 세포 내 분해와 생합성의 과정을 대사라고 부르는데 여러 개의 화학반응으로 구성되며 단계마다 효소 단 백질의 촉매작용에 의해 진행된다.

그렇다면 생명은 이러한 대사와 대사 사이의 활성 문제의 해결을 위해 어떻게 적응했을까. 그리고 제어와 조절을 위한 기구로서 생명의 선택은 무엇인가에 대 해 묻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 단백질 분자의 구조로부터 주어지는 기능의 제 어가 목표인 것이다. 만일 “구조의 가역적 변화”를 유발시킬 수만 있다면 생명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단백질의 활성 구조 부위의 구조가 활성형 과 비활성형으로 존재하고 이것의 변동이 가역적이라면 생명은 3차 구조의 가역 적 변화를 유발할 수 있는 방법만 찾으면 쉽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조 절 기능이 있는 단백질은 다른 물질과 결합할 수 있는 자리를 적어도 두 군데 이 상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 곳은 본래의 기능을 위한 활성 부위이고 다른 부위는 조절 물질과의 결합을 위한 조절 부위이다. 즉 조절 물질의 결합 여부는 바로 단백질의 전체 구조를 바 꾸며 이를 통해 기능이 조절되는 것이다. 이것을 “다른 자리 입체성 효과(allosteric effect)”라고 한다. 조금 복잡한 듯한 이 개념은 단백질의 정교한 기능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예이다. 단백질의 물질 식별력이 생명의 성립 근거를 보여준 것이라면 다른 자 리 입체성 효과는 대사 간의 효율적 제어를 가능케 함으로써 생명의 다양화와 진화 의 가속화를 촉진시키게 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제어 방식을 위한 단백질의 구조적 특성 발견은 분자생물학의 간결 명료성과 통일성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관계의 무근거성(gratuity)과 물질 초월성

생명이 물질 기계라고 하는 것은 분자생물학의 변함없는 입장이다. 생명이 물질 기계라는 말은 바로 생명이 구성 물질 등의 기능의 단순한 합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렇다면 물질의 기능의 합 이외의 더욱 복잡한 기능이 생명에 분명히 존재하고 앞으로도 합목적적인 효율성이 증가될 것이라고 한다면 과연 이러한 복잡한 특성 이 어떻게 물질로부터 나올 수 있을 것인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물질의 물질 초 월성은 물질 간의 새로운 관계를 획득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으로 이러한 일이 가능 하게 된 것은 단백질의 다른 자리 입체성 효과 작용에서 근거를 발견할 수 있다.

J. 모노는 다른 자리 입체성 효과에서 본래의 기능과 그것을 제어하는 화학 신 호 물질(ligand)과의 사이에는 아무런 필연적인 관계가 없다는 점에 주목하고 이를 무근거성(gratuity)이라고 표현했다. 다른 자리 입체성 효과에 의한 물질과 물질 간 의 무한한 관계의 가능성이 생명의 특성이라고 할 때 바로 무한한 관계가 가능한 이유가 무근거성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물질과 물질의 계속되는 새로운 관계 형 성의 무한한 가능성과 이로부터 서서히 현실화되는 새로움의 획득은 생명이 물 질 기계이면서 물질들의 단순한 기능적 총합으로서의 존재를 초월하게 만든다.

하향 방식의 생명 인식 : 하향 생물학(Top-down Biology)(참고 문헌 5)

세포 내 고분자의 기능이 생명현상을 나타내고 고분자들 간의 관계의 새로운 적응이 진화로 수렴된다. 생물학은 원래 몸의 문제로부터 출발했기 때문에 결국 은 세포로부터 몸으로 돌아가야 한다. 몸 차원에서 생명의 문제를 생각할 때 우리 는 분자생물학의 기계적인 특성에서 벗어나 유기체적인 전일적 관점을 갖게 될 것이다.

고분자에 가려 소분자들의 역할이 무시되고 있다. 특히 이온들의 농도 경사에 의한 장(field)의 변화에 관심을 돌려야 한다. 소분자들의 농도 변화에 따른 장 의 변동은 단백질과 단백질의 직접적인 원인-결과 관계 방식이 아니면서 한 번 에 전 세포의 변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매우 특징적이다. 전반적인 세포의 기능 조절에는 소분자의 기여가 클 것으로 생각된다. 몸에서 장기로, 장기에서 다시 세 포로, 그리고 세포 내 단백질로 연결되는 하향 원인화의 세포 내 주역은 소분자의 농도 변화로 생각될 수 있다.

맺는 말 : 통합적 생명 인식

생명의 문제에서 중요한 것은 몸 다음 차원, 즉 정신, 영혼 그리고 우주와의 관 계에 대한 것이다. 물질 기계로서 그 구성 성분이 잘못됨으로써 모든 문제가 발생 한다는 것이 환원론자의 주장이다. 반면 아래로 향하는 인과관계는 몸의 어떤 부 위가 자극됨으로써 세포를 제어하고 세포가 단백질을 제어한다는 것이다.

결국 생명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이 두 가지가 다 통합되어야 한다. 분자생물 학은 위로 향하는 인과관계를 일대일 대응관계를 통해서 생명의 기계론적인 특 성을 잘 정리했으며, 유기체적인 특성은 동양 의학에 남겨져 있고 이를 통해서 생 명과 우주, 환경과 생물 간의 관계에 있어서 통합적인 새로운 생명 원리가 출현할 것을 기대해본다.

 

참고 문헌

1. Erwin Schrodinger, 『what is life?』, published by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44

2. 서정선, 「분자생물학의 탄생과 생명현상」, 『현대 과학의 제문제』, 민음사, 1991. pp. 293~340

3. F. Dyson, 『무한한 다양성을 위하여』(신중섭 역), 범양사, 1991

4. 서정선, 「상향 방식의 과학적 생명 인식-분자생물학의 성과와 한계」, 『과학과 철학』 제8집, ‘특집:생명을 보는 여러 시 각’, 1997, pp. 72~92

5. 서정선, 「생물학 관점에서 본 서양 의학과 동양 의학」, 『과학사상』, 제5호 pp. 72~92

 

서정선 서울대학교 의대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생화학 의학 박사).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 마크로젠 대표이사, 한국유 전체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서울대 의과대학 명예교수, 공우생명정보재단 이사장, 분당서울대병원 석좌교수 및 동 병원 정밀의료센터 센터장, 바이오협회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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