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온생명과 낱생명__장회익

온생명과 낱생명

장회익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명예교수

 

 

우리 주변의 여러 물체들을 크게 나누어보면 살아 있는 것들과 그렇지 않은 것 들로 구분된다. 이때 이를 나누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이들 사이에 나타나는 ‘정 교성’의 차이다. 정교성을 가늠할 한 가지 척도는 이들을 모두 그 구성 입자 단위 로 흩어놓고 임의로 휘젓는다고 할 때 우연적인 재결합에 의해 이들이 얼마나 쉽 게 처음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생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렇게 정교한 대상들이 어떻게 해서 출현하게 되었느냐를 알아야 한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체 촉매적 국소 질서’라고 하는 개념을 도입할 필요 가 있다. ‘국소 질서’란 제한된 시공간 영역을 점유하는 구분 가능한 물질적 구성 체를 의미하는데, 우리는 이것을 크게 두 종류로 나누어볼 수 있다. 그 하나가 ‘자 체 촉매적 기능을 지닌 국소 질서’고, 다른 하나는 그렇지 않은 단순 국소 질서다. 여기서 말하는 자체 촉매적 기능이란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로 인해 자신과 닮 은 또 하나의 존재가 손쉽게 형성되도록 하는 기능을 의미한다. 이러한 기능을 지닌 국소 질서를 자체 촉매적 국소 질서라 한다.

이러한 자체 촉매적 국소 질서가 최초로 우연히 하나 만들어지는 것은 매우 어 려운 일이다. 그러나 오랜 기간 동안 수많은 우연들이 발생하는 가운데 아주 간단 한 형태의 자체 촉매적 국소 질서 하나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은 가능하며, 지구의 긴 역사 과정에서 최소한 몇 번은 이런 사건이 있었으리라 상정해볼 수 있다.

반면에 일단 비교적 단순한 자체 촉매적 국소 질서가 우연히 하나 만들어졌다 고 하면 (그리고 그것이 기대 수명 안에 같은 종류의 국소 질서를 적어도 하나 이상 생성하는 데 기여 한다고 하면) 이러한 국소 질서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그러다가 이 러한 것들을 생성할 소재가 소진되든가 혹은 이들이 움직일 공간이 부족해지면 더 이상 증가할 수 없게 되는데, 그때부터는 대략 소멸되는 만큼만 더 생겨나게 되어 이후 그 숫자는 상황에 큰 변화가 없는 한 거의 일정하게 유지될 것이다.

일단 이러한 자체 촉매적 국소 질서의 개체군이 출현해 엄청나게 불어난 그 숫 자가 지속적으로 유지된다면, 이를 통해 이보다 한층 더 높은 정교성을 지닌 새로 운 형태의 자체 촉매적 국소 질서가 이들의 변이 과정 혹은 결합 과정을 통해 출 현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실 이러한 새 형태는 이전의 개체군들이 출현하지 않았더라면 거의 발생할 수 없는 기적에 해당하는 존재다. 그런데 이렇 게 발생한 새 형태들은 자체 촉매적 과정을 통해 지속적으로 유지되며 새 과정이 형성될 때마다 이 기적이 거듭 중첩되어 쌓여나가게 된다. 실제로 이러한 기적들 이 충분한 기간 동안에 걸쳐 예컨대, 수억 번 쌓이게 된다면, 우리가 토끼나 고양 이에게서 보듯 매우 높은 수준의 정교성을 지닌 대상들이 자연스럽게 출현하리 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유의해야 할 점은 국소 질서들의 이러한 자체 촉매적 기능은 그 자체의 성격만에 의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촉매’라는 말이 잘 함 축하고 있듯이, 이것은 이미 진행되고 있는 어떤 큰 과정 안에서 이를 ‘돕는 구실’ 을 하는 것일 뿐, 빈 공간 속에서 혼자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자체 촉매적 국소 질서와 함께 이를 가능하게 하는 전체 체계에 주목해야 한다. 우주 안에는 국소 질서들을 담을 수 있는 두 종류의 ‘질서 체계’가 존재하는데, 그 하나는 이 안에 단순 국소 질서들만 포함하는 것으로 이를 ‘1차 질서 체계’라 부르며, 다른 하나는 이 안에 자체 촉매적 국소 질서들이 포함되어 위에 언급된 방식으로 그 정교성을 지속적으로 높여나가는 경우로, 이를 ‘2차 질 서 체계’라 부른다.

한 자체 촉매적 국소 질서 개체가 자체 촉매적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최소 한 그 수명 안에 1번 이상의 자체 촉매 작업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하며, 그러기 위 해서는 일정 기간 이상 생존을 유지해야만 한다. 그런데 자연의 기본 법칙 중의 하나인 열역학 제2법칙에 따르면 이러한 생존의 유지와 자체 촉매적 기능의 수행 을 위해서는 이것이 지닌 자유에너지를 지속적으로 소모해야 하며, 이는 곧 외부 로부터의 자유에너지 유입이 필수적임을 말해준다. 따라서 이러한 자체 촉매적 국소 질서들을 함유하는 2차 질서 체계는 그 안에 자체 촉매적 국소 질서들을 형 성시키고 유지시킬 물질적 소재뿐 아니라 이들에게 공급할 자유에너지의 원천을 갖추어야 한다. 이러한 상황을 한 개체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생존을 유지하고 또 그 (자체 촉매적) 기능을 수행해나가기 위해서는 이러한 2차 질서 체계의 나머지 부분에 결정적으로 의존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여기서 이제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자. 우리가 굳이 자연계에 나타나는 어떤 존재자에 대해 ‘생명’이라는 이름을 붙이려 한다면 하나하나의 개별 자체 촉 매적 국소 질서들보다는 이러한 2차 질서 체계 전체에 붙이는 것이 적절하다. 왜 냐하면 개별 자체 촉매적 국소 질서들은 생명에 관련된 그 어떤 기능도 독자적으 로 수행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2차 질서 체계를 직접 ‘생명’이라 부 르기보다는 이를 기존의 ‘생명’ 개념과 구분해 ‘온생명(global life)’이라 부르는 것이 좀 더 적절하다. 이는 기존의 생명 개념과 이렇게 차별화함으로써 이 새 개념을 통 해 생명의 본질적 성격을 한층 선명하게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기존의 생명 개념에 비교적 가깝다고 볼 수 있는 ‘자체 촉매적 국소 질서’에 대해서는 이를 ‘낱생명’이라 하여 ‘생명’으로서의 그 제한된 의미를 명시할 필요가 있다. 즉 하나 의 낱생명은 하나의 2차 질서 체계인 온생명의 나머지 부분이 함께할 때에 한해 생명으로의 구실을 한다는 것이다. 우리 온생명의 경우, 지구상의 풍요로운 물질 분포가 바탕 소재를 이루며 태양에서 오는 빛이 자유에너지를 공급해준다. 이 안 에서 대략 40억 년 전에 발생한 자체 촉매적 국소 질서 곧 낱생명들이 거듭 진화해 하나의 정교한 생태계를 이루면서 오늘 우리가 보는 온생명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생명 안에는 과학으로서는 전혀 해명할 수 없는 진정 놀라운 사건이 발 생한다. 곧 이 안에 ‘나’라고 하는 존재가 출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심오 한 물리학 법칙으로도 그 안에서 ‘주체로서의 나’가 발생하리라는 사실을 이끌어 낼 수는 없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좋은 방편은 이를 기존의 객체적 현상들과 같은 반열에 놓인 또 하나의 현상으로 보지 않고 현상 그 자체의 이면을 구성하는 하 나의 ‘숨겨진’ 속성으로 보는 관점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파악한 모든 객체적 현 상의 모습을 이것이 지닌 외적 혹은 표면적 속성이라고 한다면, ‘나’라는 존재는 현상의 내부에서 파악의 주체가 나타나 자기 스스로를 파악하게 되는 내적 혹은 이면적 속성으로 보자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둘은 실체적으로 구분되는 두 개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의 실체가 나타내는 두 가지 양상, 곧 ‘객체적 양상’과 ‘주체적 양상’에 해당한다.

이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가 설혹 주체적 양상 아래 주체적 삶을 영위하더라도 이로 인해 외면에 해당하는 객체적 세계가 사라지거나 기능을 정지하는 것은 아 니다. 우리의 모든 행동과 그 결과는 객체적 세계를 통해 나타나고, 객체적 세계 를 지배하는 자연의 법칙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러한 제약 아래 있기는 하나, 우주 내의 한 사물에 해당하는 우리가 ‘삶의 주 체가 되어 우리의 의지에 따라 삶을 영위해나가게 된다는 것’은 그 나름으로 엄 연한 사실이며, 이 둘이 양립한다는 것은 진정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설혹 우 리의 의지 자체가 이미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물질적 질서 안에서 형성되는 것이라 해도, 일단 이것을 ‘나’라고 느끼며 나로서 살아가는 한, 나 아닌 다른 무 엇일 수는 없다.

우리는 또한 ‘나’와 다른 ‘너’를 인정할 뿐만 아니라 ‘너’와 ‘나’를 다시 아울러 ‘집합적 주체’인 ‘우리’를 형성하기도 한다. 이는 곧 ‘너’와 ‘나’의 관계가 소중하다 고 인정될 경우 자신의 주체성을 확장해 ‘너’를 ‘나’와 구분되는 존재로만이 아니 라 더 큰 ‘나’의 일부로 끌어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이러한 집합적 주체를 통해 문화 공동체를 이루어왔고, 그 결과로 이루 어진 것이 바로 인간의 문명이다. 하지만 최근에 이르기까지도 인간의 집합적 주 체 안에 담겨 있던 자아의 내용은 ‘인류’ 곧 생물종으로서의 인간을 크게 넘어서 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인간은 인간을 제외한 온생명의 나머지 부분을 ‘자연’이라 부르며 이를 오히려 인간과 대립되는 개념으로 보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 왔다. 그뿐만 아니라 인간은 오랜 기간 자연 속에서 자연을 극복 혹은 활용해가며 인간의 자리를 넓혀가는 것을 발전이라 여기고, 이러한 발전을 문명이 지향할 주 된 지표로 삼아오기도 했다.

하지만 자연은 인간과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라 이들이 합쳐 비로소 생명이 이 루어지는 온생명의 한 부분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의 자아를 인류 단계에서 멈출 것이 아니라 온생명에까지 확장해야 한다. 사실 우리 온생명은 나를 포함하 고 있는 진정한 의미의 생명체이며 또 나에게는 진정으로 보호해야 할 소중한 존 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것이 쉽지가 않다. 설혹 우리의 지성이 온생명 또한 내 몸의 일부임을 말해주더라도, 우리의 일상 속에서 길들여진 심정적 자세는 자 기도 모르게 이에 대한 저항을 멈추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만일 이러한 장벽을 성공적으로 넘어설 수 있다면, 그리하여 우 리 자신이 온생명임을 스스로 깨달아 알게 된다면, 이는 곧 우리 온생명이 스스로 자신을 의식하는 주체가 되어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영위하는 존재로 새롭게 탈바꿈하는 일에 해당한다. 실제로 우리 온생명은 약 40억 년 전 우리 태양-지구 계를 바탕으로 태어나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으며 지속적인 성장을 거듭해왔지 만, 아주 최근에 이르기까지도 스스로를 의식하지 못하고 오로지 생존 그 자체만 을 수동적으로 지속해온 존재였다. 그러다가 이제 인간의 출현과 함께, 인간의 집 합적 지성에 힘입어, 40억 년 만에 처음으로 스스로를 의식하며 이 의식에 맞추 어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영위해나가는 존재로 부상할 우주사적 지점에 놓이 게 되었다.

장회익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루이지애나주립대 물리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텍 사스대 연구원과 루이지애나대 방문교수를 거쳐 30여 년간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같은 대학 대학원의 ‘과 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겸임교수로 참여했다. 지금은 서울대 명예교수로 있으면서, 초빙교수로서 경희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과학과 메타과학』, 『삶과 온생명』,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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