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 내가 생각하는 생명__박서연

모든 생명의 무게는 같다

 

내가 사는 독일 집에는 집거미가 많다. 이 거미들은 내 발길이 잘 닿지 않는 방 구석이나 화장실 변기 뒷자리에 터를 잡고 살고 있다. 처음에는 조금 무서웠지만, 딱히 죽이거나 밖으로 내쫓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어느새 이 거미들과 3년 정도 를 동고동락해왔다. 벌레를 무서워하지 않는 성격이라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하 지만 내 집에 사는 이 집거미들은 그동안 봐왔던 거미들과는 그 모양새가 조금 달랐다. 다리는 바늘보다 가늘었지만 아주 길었고 몸통은 내 손톱보다 작았다. 그 리고 일단 내 집 안에 있지만 나의 생활 영역을 딱히 침범하지는 않았고 내게 가 까이 다가온다거나 해를 끼치지는 않아 그대로 두기로 했다. 그런데 그렇게 하루 이틀 같이 살다 보니 죽여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되는 순간들이 찾아왔다. 그중 가장 큰 문제는 욕조였다. 샤워를 하러 욕실에 들어갔다가 욕조 안에서 나가 지 못하고 방황하는 거미를 마주치는 일이 종종 발생했던 것이다. 어쩌다 욕조 안 으로 들어왔는지는 몰라도 내 기척에 당황한 거미가 벽을 타고 올라가려다가 미 끄러지고, 올라가려다 미끄러지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럴 때 면 나는 고민에 빠지곤 했다. ‘샤워기를 들고 물을 세게 틀어서 이 녀석을 하수구 로 그냥 흘려보낼 것인가, 아니면 안전하게 욕조에서 꺼내줄 것인가.’ 첫 번째 방 법을 택한다면, 거미는 죽겠지만 나는 빨리 샤워를 하고 나갈 수 있을 것이고, 두 번째 방법을 택한다면 거미는 살겠지만 나는 약속 시간에 늦을 것이 뻔했다. 그것 보다 두려운 건, 보기만 해도 징그러운 거미에게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는 것이었 다. 결국 나는 휴지를 이용해서 손을 대지 않고 욕조에 갇힌 거미를 구해내는 쪽을 택했다. 행여나 손에 닿을까 무서워서 비명을 지르며 몇 번이나 휴지를 놓치 는 내 모습이 썩 우스웠지만, 거미를 욕실 바닥으로 무사히 옮겨놓는 편이 하수구 로 흘려보내는 것보다는 훨씬 마음이 편했다. 그 뒤로는 욕조에 발을 디디기 전, 늘 거미가 있는지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너무 가늘어서 혹시나 내가 못 보고 물을 틀기 시작하면 물에 휩쓸려 하수구로 빨려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서 너 번 거미를 구하고 난 뒤에는 말을 거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여기로 들어오 지 말라니까? 자꾸 이러면 나도 힘들어.” 거미를 욕조에서 꺼내는 것이 귀찮아 툴 툴거리면서도 언제부턴가 거미를 욕조에서 꺼내주는 순간 뿌듯함을 느끼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변기 뒤쪽 구석에 자리 잡은 거미에게는 아침 인사를 건네기 도 했고, 침실 구석에 있는 거미에게는 왜 며칠씩 내 방에서 나가지 않는 모기를 잡지 못하냐고 다그치기도 했다. 어떤 날에는 문득 거미의 입장이 이해되기도 했 다. 집 밖으로 나갈 기회야 얼마든지 있을 텐데 집 안에만 있는다는 건 주로 집에 서만 사는 거미들인 것 같은데 내가 죽이지 않고 쫓아낸다고 하더라도 집에서만 살던 녀석들이 야생에서 잘 살아남을지 짐짓 걱정 아닌 걱정도 되기 시작한 것이 다. 하지만 살생을 저지르지 않고 생명을 구한다고 느꼈던 뿌듯함도 결국은 나의 오만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왔다. 어느 날 불교 대학에서 법륜 스님에게 들 은 부처님에 대한 일화가 그 계기였다.

이 이야기는 부처님의 전생에 관한 이야기 중 하나이다. 어느 날 부처님이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런데 저 멀리서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오더니 도와달라고 애원했다. 무서운 매에게 쫓기고 있으니 자신을 좀 숨겨달라는 부탁이었다. 부처님은 비둘기를 안쓰럽게 여겨 그의 품 안에 비둘기를 숨겨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둘기를 쫓던 매가 나타났 다. 매는 부처님에게 비둘기는 자신의 먹이이니 내놓으라고 했다. 부처님은 매에게 살생 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고 말하며 비둘기를 내어주지 않았다. 그러자 매가 말했다.

“당신은 지금 비둘기가 죽지 않게 지키겠다고 하지만, 그 비둘기를 먹지 않으면 내가 죽습니다. 그러니 그것도 살생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매의 말이 옳았다. 비둘기를 살 리자니 매가 죽고, 매를 살리자니 비둘기가 죽는 꼴이었다. 그러자 매가 또 말했다. “하지만 내가 꼭 그 비둘기를 먹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만한 고깃덩어리만 있으면 됩 니다.”

그 말을 들은 부처님은 자신의 허벅지 살을 떼어내어 매에게 주었다. 하지만 그 크기 가 비둘기의 것보다 적었다. 그래서 반대쪽 허벅지 살을 또 떼어내어 주었다. 그래도 여 전히 그 크기가 비둘기의 것보다 적었다. 그래서 부처님은 자신의 살을 이곳저곳 더 잘 라서 내어주다가 결국 온몸을 다 내주게 되었다. 그리고 부처님이 비둘기를 위해 자신 의 온몸을 내놓은 순간, 신비하게도 그 몸이 다시 온전하게 돌아왔다.

처음에는 이 이야기의 참뜻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비둘기라고 하면 아무리 커봐야 그 크기가 사람의 허벅지보다 크지 않을 텐데, 어째서 양쪽 허벅지 살을 내어주고도 모자라 모든 살을 내어주어야 했을까? 매의 배만 불리면 되는 것이 아니었던 것인가?

그건 바로 생명의 무게는 모두 같기 때문이었다. 미물이라고 여겨지는 비둘기 나 위대한 성인인 부처님이나 그 생명의 무게는 모두 같기 때문이다. ‘생명을 해 치지 말라’는 불살생(不殺生)의 깊은 참뜻을 그제야 깨달은 듯했다. 그리고 그 순 간, 그동안 거미를 대해오던 나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사실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마치 내가 엄청나게 대단한 생명체나 되는 것마냥, 내가 언제든지 거미를 죽이고 살릴 수 있는 권한을 가졌다고 여기며, 내가 관대해서 거미를 살려주었다 고 착각한 것은 아니었을까. 어쩌면 내가 거미의 구역을 침범한 침입자였고, 그의 눈에는 미물처럼 보였을지 모를 일이다. 오늘 밤엔 거미에게 사과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박서연 자유기고가. 독일에 거주하며 브런치에서 작가 노이로 글을 쓰고 유튜브 명상 채널 ‘마음다이어트’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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