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인공지능|인공지능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까? (2)__석봉래

인공지능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까? (2)

석봉래

미국 앨버니아대학교 니액 연구 교수

 

 

표상적 마음과 비표상적 마음

참된 의식 혹은 앎을 불교에서는 깨달음이라고 한다. 이것은 의식의 최고의 단 계이기도 한다. 의식은 감각과 지각의 단계를 넘어서서 있음을 (존재를) 그 자체로 마주하는 깨달음의 능력으로 완성된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은 깨달음을 달성할 수 있는 체계인가?

인공지능은 철두철미 표상적 체계이다. 표상은 그 자체로서는 의미가 없고 다 른 어떤 것을 지시할 때( 혹은 관계성을 가질 때) 그 의미를 갖게 되는 그런 존재이다.

인공지능은 표상의 패턴을 통해 마음의 작용을 구현하는 일을 한다. 그런 과정 에서 인간의 언어를 기계가 처리할 수 있는 (0과 1 같은) 신호로 바꾸고 이를 전자 적으로 변화시켜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게 하는 것이 컴퓨터의 프로그램이다. 그 래서 표상은 인공지능에서 중요하며 인공지능의 기반이다.

사람의 생각도 표상적 성격을 갖는다. 생각은 늘상 ‘무엇’에 관한 생각이 이 ‘무 엇’은 생각의 내용이자 대상이 되는데 이런 생각과 대상의 관계성은 바로 나의 생각이 표상적 성격을 가지게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별히 이러한 표상성 은 가상적 존재에 대한 생각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다. 인간의 사고나 정신생활은 대부분 표상적이지만 그중에는 표상을 최소화하거나 거부하려는 성향도 있다는 점이다.

뒤샹의 변기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는 모든 철학적 사고는 근본 적으로 시적(詩的, 즉 일상적이며 고정된 표상을 넘어서서 그 새로운 의미를 통해 존재의 참모습을 드러내는 과정)이라고 했다. 시는 언어를 사용하고 언어는 표상이기는 하지만 이 언 어를 통해 표상을 해체하고 창조하는 작업이 참된 사고를 위한 철학에서 중요하 다는 점을 하이데거는 강조하는 것이다.

프랑스의 예술가인 마르셀 뒤샹(Henri Robert Marcel Duchamp, 1887~1968)은 화장실 에 사용되는 변기를 샘(Fountain)이라는 이름을 붙여 전시회에 내놓는 희대의 사건 을 일으킨다. 그는 이 작품을 옹호하면서 다음과 같이 썼다. “변기는 철물점에서 우리가 매일 보는 물건일 뿐이다. (…) 평범한 일상적 물건이 그 실용성을 버리고 새로운 목적과 시각에 의해 대상으로( 오브제로) 재창조된 것이다.”

불교의 깨달음과 명상은 표상의 문제를 사고와 이해의 깊은 바탕에서 제기하고 있다. 깨달음은 어떻게 보면 표상의 덧없음을 아는 것이다. 명상은 표상이 최소화 되는 집중된 의식의 과정을 지속하는 것이다. 이 과정은 표상의 참을 수 없는 가벼 움을(말과 개념과 생각의 조건성과 비영속성을) 직접 마주하는 과정이다.

불교의 사성제(四聖諦)에 따르면 인간의 마주하는 고통은 인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욕망의 마음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다. 세상 만물을 소유하려는 마음을 극복 하기 위해서는 표상이 지시하는 대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표상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아야 하고 표상의 덧없음, 가변성, 그리고 비영속성을 이해해야 한다.

이야기와 설정

마음의 종교인 불교는 표상의 방향과 반대에 서서 마음을 바라볼 것을 주문한 다. 생각을 하고 생각의 대상을 따라가서 그 대상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 자체를 생각하고 생각을 일으키는 마음 자체를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 다. 생각의 대상뿐만 아니라 생각 자체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표상과 반대 방향으로 가는 이러한 명상의 길이 불교에서 중요한 이유는 인간 의 번뇌와 고통의 근본이 우리 안에 있는 욕구와 갈망과 집착의 마음에 있기 때 문이다. 그래서 생각이 지시하는 대상이 아니라 생각 자체를 보고 그것을 일으키 는 마음을 마주하는 것이 불교에서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것은 구름이 아니다.

불교의 유식론(唯識論)을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 세상이 마음의 지각 과 개념을 통해 (즉 표상을 통해) 나타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생 각을 그 자체로 보지 못하고 생각의 대상을 보려고 한다.

불교가 말하는 깨달음은 표상에 대한 사고의 집착에서 빠져나오는 것에서 시 작된다. 이렇게 마음을 보면 인간을 괴롭히는 번뇌와 고통에서 벗어나는 깨달음 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을 찾을 수 있게 된다.

인공지능은 깨달음에 이를 수 있는가? 표상의 반대편에서 인간의 생각과 마음 을 그 자체로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 깨달음이고 명상이다.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인공지능은 깨달음과 반대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결국 인공지능 이든 사람이든 표상적 마음에만 갇혀 있는 체계는 깨달음을 얻기 어려울 것이다.

__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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