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수행|나의 사경 이야기__김혜정

나의 사경 이야기

김혜정

서예가

 

 

맑은 새벽, 촛불을 밝히고 향을 사루어 벼루에 담긴 먹물에 붓을 적십니다. 정 수리에 맑은 기운이 스며드는 느낌, 반듯하게 편 깨끗한 종이에 첫 획을 그을 때 면, 저절로 숨소리조차 조심스러워지면서 붓끝에 집중합니다. 한 구절, 한 구절, 오롯이 부처님의 말씀을 눈에 담고, 가슴에 담으며, 손으로 쓰다 보면, 먹물이 종 이를 만나는 소리조차도 범음이 되어 복잡한 생각들은 어느새 사라집니다. 사경 은 법의 향기요, 경전 속의 문자가 수행의 꽃으로, 예술로 피어나는 것입니다.

아주 오래전, 20대이던 젊은 시절에 서울 인사동에 살면서 우연히 듣게 된 이 야기가 있었습니다. 당시 한 서예가가 『금강경』 전문을 병풍으로 썼는데, “『금강 경』을 쓰면 좋다더라” 하면서 그 말이 인사동에 퍼졌습니다. 『금강경』 병풍이 참 귀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나도 언젠가는 써봐야지. 『금강경』이 무엇인지, 좋다는 것이 무엇인지, 왜 좋은지, 당연히 사경의 의미는 전혀 모른 채 ‘쓰면 좋다’는 그말에 이끌려서 마침내 서른 즈음에 처음 『금강경』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경전에 대한 지식은 없었지만 밤낮으로 열심히 일일이 먹을 갈아 한 글자, 한 글자 정성 들여 쓰다 보니 평소 붓글씨를 쓸 때와는 다른 알 수 없는 경건함을 깨닫게 되었 고 불현듯 함부로 쓰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처음으로 불교 공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조계사 기본 교육에 입문해 처음으로 접하는 십이연기, 사성제와 같은 불교 언 어들은 삶에 대한 본질을 생각하게 했고, 불교 교리는 그야말로 새로운 세계였습 니다. 경전은 물론 불서들을 부지런히 찾아서 읽고, 여러 가지 수행법에 대해서 배우고 체험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사경의 의미를 알게 되자 『반야심경』 사경을 시작했습니다.

기본 교육 수료식 날, 담임 스님께 감사의 인사로 『반야심경』을 사경해서 드렸 는데, 같은 반 도반님들이 “나도, 나도!” 하고 외치는 바람에 『반야심경』을 사경 해 보시하겠다고 약속을 드리고, 조계사불교대학을 다니던 2년 동안 『반야심경』 108장 사경을 완성해 회향했습니다.

‘언젠가는 『금강경』을 제대로 쓰고 싶다.’ 그것은 일생의 과제가 되었습니다. 세 월을 훌쩍 넘어 나이 50세에 이르러 비로소 다시 사경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젊은 날에 막연히 가졌던 서원을 초발심으로 삼아 다시 사경을 시작한 지 10년이 흐른 지금, 『반야심경』, 『화엄경약찬게』 등을 비롯해 『금강경』 10폭 병풍 30여 점을 완성해 회향했고, 현재는 여러 사찰과 미술관, 불자 개인 등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사경 수행에 첫 입문한 지 어느 덧 3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간혹 묻습니다. 사경을 왜 하느냐고. 사경은 우리나라 불자들의 대표적인 수행 방법 중의 하나로, 여러 경전 곳곳에서 사경 공덕에 대한 찬탄이 등장하고 있고, 많은 불자들이 사경 을 통해 수행을 하고, 가피 체험을 하고, 소원을 성취하는 사례들을 쉽게 볼 수 있 는데요. 사경 수행은 집중을 통해 모든 감각을 정화하는 힘이 강하다는 느낌을 받 을 때가 많습니다. 사경은 우리 몸의 감각기관들이 ‘오직 여기’에 집중해야만이 할 수 있는 수행이고, 어느 한 부분이라도 흐트러지면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사경이란 무엇인가, 끊임없이 저 자신에게 묻습니다. 수행의 과정이며 결 과로서의 사경, 스스로 탐구하고, 자문하고, 집중하고, 반복되는 과정 속에 성찰하게 되고, 돌이켜보면 늘 ‘그때 이런 어려움이 있었는데, 내가 사경의 힘으로 극복했었구 나’, ‘그건 사경의 공덕이었구나’ 깨닫게 되고, 다시 정진하게 되고 발원하게 됩니다.

종이를 펼 때마다 기도합니다.

붓을 들 때마다 기도합니다.

한 획을 그을 때마다 번뇌를 소멸케 하시고

한 글자를 새길 때마다 보리를 얻게 하소서.

붓끝에 지혜를 담게 하시고 자비로 회향하게 하소서.

구절마다 서원 담아 간절히 발원하옵나니

부처님이시여! 이 뜻을 살펴 지켜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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