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담 대선사 법문

바른 생각이 깨달음으로 가는 길

참선을 하는데 자꾸 이상스러운 어떤 경계(境界)가 나타난다고 하면 그 경계가 좋은 경계가 되었건, 무슨 신비한 경계가 되었건 간에 거기에 집착(執着)하면 안 됩니다. 그냥 그것을 있는 그대로 놔두고 정신을 딱! 챙겨 화두를 계속해서 들어야 합니다. 천하에 없는 신비하고도 묘한 경계가 나타나도 거기에 따라가거나 집착한다면 그것은 절대 공부가 될 수 없습니다. 이 경계를 물리치려 하지 말고 그냥 그대로 놓아둔 채 똑바른 정신으로 화두만 들고 나간다면 그 경계는 결국 사라질 것입니다. 공부하는 가운데 환상이 나타나거나 부처님이 나타나거나 관세음보살님이 나타나거나 별별 경계가 나타나더라도 그것은 참 경계가 아닙니다. 또한 참선하고 있으
면 집에서 뭔 일 일어나는 것이 나타나서 미리 알게 되고, ‘집에 누가 죽었다’ 하면 가서 보면 죽어 있고, ‘누가 올 거다’ 하면 참선 중에 그것이 그냥 자연히 알아져서 가서 보면 누가 와 있기도 하고 그럴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스스로 식(識)이 맑아져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그 맑아진 식의 능력으로 주변의 모든 일들을 알 수 있고 또 어떠한 잡신(雜神)이 이런 일들을 일러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식(識)이 맑아져서 모든 것을 알아도 그것이 도(道)를 통한 것과는 별개의 것입니다. 모든 것이 환하게 알아지니까 ‘내가 도통(道通)했구나!’ 그렇게 착각을 하시면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식(識)이 맑아지면 알 수 있는 것은 내가 나를 깨달아서 견성성불(見成成佛)하는 것과는 영판 다른 길입니다. 그것은 공부와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고 거기에 집착하면 정말 사도(邪道)로 빠질 수 있기에 절대 거기에 집착하지 말고 그냥 그대로 그것을 놓아두어 사용하지도 말고 좋다는 생각도 하지 말며 그냥 없었던 걸로 놓아버려야 합니다.놓아버리고 자꾸 바른 자세와 바른 호흡으로 자신의 본참화두(本參話頭)만을 꾸준히 들고 나가면 그런 것이 있다고 해서 해로울 것도 없습니다. 화두를 놓아버리고 그런 것에 집착하고 빠져서 아는 소리를 하면 그 사람은 점차 정도(正道)로부터 멀어져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삼매(三昧)는 ‘오직 알 수 없는 의심으로 화두를 참구해나가는 것’뿐입니다. 바른 정신으로 바르게 화두를 참구해나가야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가야 할 길입니다.

버리고 결국 잘되어보았자 점쟁이에 불과한 것입니다.참선하는 사람은 이러한 것을 초능력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고 혹자는 이것을 얻기 위해 무척 노력도 하겠지만 그것은 올바른 정도가 아닙니다.또 밤에 정진할 때, 다른 사람 눈에는 안 보이는데 자기 눈에는 100촉짜리 불을 켠 것처럼 환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이런 것에도 역시 좋아하는 마음을 내지 말고, ‘머지않아서 내가 도통하려고 이런가 보다’ 이러한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꼭 ‘나쁜 것이다, 좋은 것이다’ 말할 것도 아니고, 문제는 거기에 집착하면 그것이 나쁜 것으로 변하는 것이고, 집착하지 않고 놓아버리며 올바르게 정진해나가면 아무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또한 ‘정진하다 보면 코로 향내가 난다’고 하시는데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향내가 날 수도 있고 악취가 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마찬가지로 언젠가는 없어질 때가 올 것입니다. 향내가 정상적으로 나는 향내라면 다른 사람 코에도 다
그 향내가 나야 할 텐데 자기만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그동안에 어떻게 어떠한 공부를 해왔느냐?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해왔느냐? 과거에 어떤 업을 지었느냐? 그런 것에 따라 그렇게 향내가 날 수도 있고,
캄캄한 밤에도 환히 모든 것이 다 보일 수 있고, 수백 리 떨어진 데서 하는 소리를 여기서 들을 수도 있고 여러 가지 경계가 나타날 수가 있습니다.
『능엄경(楞嚴經)』에 보면 50가지 이와 같은 경계에 대해 소상(昭詳)하게 말씀을 해놓고 있는데, 이런 것들이 도(道)와는 별개의 것이며, 이런 경계가 나타났을 때는 절대 거기에 집착하지 않아야 정법을 수행하는 자라 할 수 있습니다.그런 신기한 불가사의(不可思議)한 경계가 일어날 때 그것에 집착했다 하면 거기서부터 정도(正道)에서는 멀어져버리는 것이라고 확실히 인식하시기를 바랍니다.삼매(三昧)와 선정(禪定)은 같은 말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삼매는 인도 말이고, 중국 말로는 정(定)이라 하기에 같은 말입니다. 독서를 한다고 할 때 거기에 열중하고 골몰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밖에서 떠드는 소리도 안 들리고 한다면 그것은 ‘독서삼매’가 될 것이고, 글씨 쓰는 데 열심이다 보면 자신이 글씨를 쓴다는 생각도 없고, 잘 쓰겠다는 생각도 없고, 밖에서 아무리 시끄러워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오직 글씨 쓰는 데만 정신이 통일된다면 그것은 ‘글씨삼매’가 되는 것입니다. 모든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일에 열중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거기에 집중하게 되면 그것은 ‘일의 삼매’가 되는 것입니다.참선도 ‘이 뭣고’가 되었건 또는 ‘옴 마니 반메 훔’이 되었건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이 되었건 간에 일심(一心)으로 하다 보면 그것도 삼매에 들어가는 것이고, 정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定)에는 삿된 정과 바른 정이 있어서 삿된 정에 빠지면 삿된 결과가 오는 것이고, 바른 정에 들어가야 바른 결과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삼매(三昧)는 ‘오직 알 수 없는 의심으로 화두를 참구해나가는 것’뿐입니다. 바른 정신으로 바른 신심으로 바르게 화두를 참구해나가야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간절하고자 해도 간절할 수 없는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순일무잡하게 나가면 결국에는 의단(疑團)을 타파(打破)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가 가야 할 길입니다.

●    이 글은 송담 대선사의 1994년 2월 6일 용화선원 동안거 중 보살선방 법문을 편집부에서 녹취, 정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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