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기획 | 불교와 인공지능

왓슨 포 온콜로지 (Watson for Oncology)와 불교의 연기법

석봉래
미국 앨버니아대학교 니액 연구 교수

보편 튜링머신의 범용 문제 해결사에서 특수한 지식을 바탕으로 하는 전문가 체계로 그리고 연속적 학습의 뉴럴 네트워크로 진화한 인공지능은 이제 프로그램 기반의 지능에서 학습 기반의 지능으로 발전해나간다. 현 단계에서 인공지능의 성패는 학습에 달려 있다. 즉 방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학습에 그 성공의 열쇠가 달렸다. 왓슨 포 온콜로지(Watson for Oncology, 종양 정보를 위한 왓슨)는 아이비엠(IBM, 미국에 기반을 둔 다국적 정보 통신 회사)이 개발한 의료용 인공지능 체계다. 암 환자의 정보를 입력하면 과거 임상 사례와 각종 의학 저널을 바탕으로 좋은 치료 방법을 의료진에게 추천하는 일을 한다. 그러나 최근 미국의 주요 암 센터나 병원들은 왓슨의 능력에 회의론을 제기하고 있다. 의사들의 판단과 왓슨의 추천 일치율이 인도의 한 병원에서 조사된 폐암 치료의 경우 17.8%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한국의 한 병원에서는 위암의 경우 그 일치율이 40% 수준에 그쳤다. 경험이 많은 의사의 판단과 왓슨의 처방이 다르다는 것은 왓슨의 능력이 아직 충분히 완성되지 못했다는 뜻이다.  왓슨이 겪고 있는 이러한 어려움은 인공지능의 기능과 그 실용적 적에 관해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다. 인공지능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체계이기 때문에 고정된 정보처리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 체계가 아니다. 이러한 복합적 판단을 제공하는 인공지능의 경우에는 정보처리의 규칙(프로그램)도 중요하지만 학습이 매우 중요하다. 학습을 통해 각 분야의 전문가가 주어진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고 그에 따른 적절한 판단을 어떻게 내리는지를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특별히 왓슨 포 온콜로지와 같은 의료 인공지능의 경우는 환자들의 다양한 조건을 고려하고 이 조건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조사해서 늘 새롭게 진단 프로그램에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올바른 진단과 치료 방법의 선택에 있어서 인종, 문화(식습관과 생활 방식), 그리고 자연환경을 고려하는 학습을 구성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인공지능이라는 기계는 완성된 규칙에 따라 우리가 시키는 대로 일하는 체계가 아니라 학습에 따라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가는 성장하는 기계임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암 진단과 치료가 아닌 일반 상식 분야에서 왓슨은 완벽에 가까운 능력을 보여주었다. 왓슨이 <제퍼디(Jeopardy)>라는 미국 퀴즈 게임 쇼에 출연해 인간과 경쟁하고 승리했을 때 많은 시청자들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적 능력을 넘어서는 체계라는 인상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의료 진단은 이런 일반 상식이나 시사 문제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문제였던 것이다. 주어진 정보를 빠르게 찾아내고 보고하는 것과 복합적 현상을 다양한 시각을 고려해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매우 다른 종류의 인지 능력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똑똑한 기계에 기대하는 바는 복합적 현상을 이해하는 지적 능력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인공지능의 이러한 통합적 인지 능력을 불교의 연기(緣起, pratītyasamutpāda)라는 개념을 통해 이해할 수도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연기법은 인(원인)과 연(조건)으로 현상의 나타남과 사라짐을 설명하려는 입장이다. 그런데 불교의 연기를 단순한 인과관계의 원리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먼저 연기는 원인과 결과가 반드시 일대일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다대다(多對多)의 관계를 통해 나타나는 것으로 이해한다. 많은 원인과 그것들의 많은 결과가 연기라는 과정에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물 한 방울이 땅으로 떨어지는 것과 같은 단순한 사건에도 사실은 수만 가지의 요인들과 그들의 상호작용이 숨어 있는 것이며 이 물 한 방울도 이와 비슷한 복합적 방식으로 수만 가지의 다른 사건을 일으키고 변화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연기는 애초부터 복합적 인과관계로 세상을 바라본다.  다음으로, 연기에서 설명되는 인과관계들은 국부적 혹은 지엽적인 과정으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총체적인 상호 조건의 덩어리로 이해된다. 연기는 인과관계를 단일한 사건이나 단일한 대상에 벌어지는 것이라기보다는 대상들과 사건들이 총체적 연관을 형성해 만드는 세계라는 전반적 환경을 고려한다. 예를 들어 최근 인간의 신체에 마이크로 플라스틱(1㎜ 이하의 극소 플라스틱 조각)이 축적되고 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의학계에 전해졌다. 인간의 분변에서 상당한 양의 극소 플라스틱이 발견된 것이다. 플라스틱의 폐해는 해양 동물의 죽음으로 우리에게 알려지기는 했지만 인간의

인공지능이든 자연 지능이든 복합적이며 상호작용적 관계를 고려하는 것은 사건의 숨겨진 인과 고리를 살피는데 필수 요소다. 복합적이며 상호의존적인 발생을 살펴보는 것이 앞으로 인공지능의 기능과 학습의 열쇠가 될 것이다. 연기는 인공지능과 불교가 학습이라는 실용적 고리에서 연결되는 지점이다.

신체에까지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는 없었다. 그런데 최근 연구에 따르면 극소 플라스틱 파편들이 실제로 인간이 섭취하는 음식물에까지 침투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불교의 연기는 이러한 돌고 도는 총체적 연관 관계를 무지와 욕망과 번뇌의 순환 과정에서 본다. 나의 욕망의 불길은 번뇌의 불길이 되어 돌아오고 나의 무지함은 번뇌의 올가미가 되어 돌아온다. 좋은 업(業)을 쌓으면 좋은 업이 돌아오고 나쁜 업을 쌓으면 나쁜 업이 돌아온다. 이러한 통합적이며 총체적인 인과성과 조건성의 이해가 연기법의 핵심인 것이다. 복합적 현상의 과학적 분석에 항상 등장하는 이런 총체적 인과 분석은 불교의 연기 사상의 시각에서 보면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세 번째로 불교의 연기 철학에 따르면 복합적 상호적 인과관계는 단순히 세계를 이해하는 틀이 아니라 세상 만물과 현상과 인간 존재의 실질적 성격이다. 즉 연기는 지식과 관계되는 인식론을 넘어서서 사물의 근본에 관계된 존재론의 영역에까지 나아간다. 불교의 연기법에 따르면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각각의 독립적 실체를 지니는 것이 아니라 이런 인과적 연결 네트워크 안에서 생겨나는 상호 조건적 연관 관계를 갖는 것으로 이해된다. 즉 내가 먼저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그리고 내가 타인 그리고 외부 환경에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그들의 환경과 조건에 둘러싸여 있고 이 복합적 연결 그물 안에서 내가 한 연기의 마디로 그때그때 드러난다는 것이 불교의 가르침이다. 불교가 아니더라도 이런 상호의존적 연관 관계는 생태계와 먹이사슬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들이 지닌 존재의 원리이다. 최근 꿀벌 집단과 그 개체수가 전 세계적으로 감소하고 있다는 보고가 있었다. 벌들은 꽃가루를 옮겨 다니면서 식물의 수정과 성장을 돕고 인간과 다른 동물에게 많은 도움을 주는 곤충이다. 벌이 사라진다면 이러한 생태계의 중요한 고리 하나가 끊어지는 것이다. 유명한 과학자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은 만일 벌들이 완전히 사라진다면 인류는 4년 이내에 멸망의 길에 접어들 것이란 주장을 했다고 한다. 끔찍한 일이다. 존재의 상호의존적 연관성은 단지 생태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인간은 원래 관계적이며 의존적 존재라는 것은 인간 삶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실존철학에서도 분명히 나타난다.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가 주장하듯 인간 존재는 그것이 참된 방식이건 퇴락한 방식이건 다양한 대상과 관계를 맺고 있는 ‘세계-내- 존재(in-der-Welt-sein)’이며 늘 상황에 놓여 있는 ‘거기 있음(Dasein)’이라는 존재이다. 즉 존재는 연기이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왓슨 포 온콜로지 같은 의료 인공지능과 불교의 연기법이 연결되는 지점이 분명해진다. 왓슨 포 온콜로지가 뛰어난 의료 인공지능이 되기 위해서는 그 학습 과정에 이러한 불교의 연기를 (즉 총체적 상호작용으로서의 인과관계를) 고려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인간의 몸은 겉으로 보기에는 스스로 생존하는 생물학적 체계인 듯 보이지만 사실은 매우 연기적인 체계이다. 사람이 병드는 것은 순수한 분자생물학적 조건이나 유전적 조건도 있지만 환경적 조건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음식 문화 그리고 기후와 자연환경뿐만 아니라 특별히 관계없을 것 같은 사회 정치적 조건도 몸에 많은 영향을 준다. 왓슨 포 온콜로지 코리아는 왓슨 포 온콜로지 아메리카와 다를 수 있고 왓슨 포 온콜로지 인디아는 왓슨 포 온콜로지 재팬과 다를 수 있는 것이다.  몸과 환경과의 관계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생물학적 영향뿐만 아니라 문화 사회 정치적 영향도 고려되어야 한다. 정치적 억압 속에 성장한 세대는 몸속에 코르티솔(Cortisol, 호르몬 중의 하나로 스트레스에 민감하게 반응해 그 활동이 증가한다)이 증가하며 코르티솔이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 면역 체계에 나쁜 영향을 미쳐 병에 더 잘 걸릴 가
능성이 생긴다.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는 말이 이런 연유로 나온 것이다. 또한 아이들이 성장기에 코르티솔을 자극하는 환경에 너무 많이 노출되면 성인이 되었을 때 소시오패스(sociopath)나 사이코패(psychopath)적 성향이(반사회적 반인륜적 행동을 하고자 하는 성향이) 증가한다는 연구가 있다.  마찬가지로 건강도 단순한 생물학적 조건이 아니라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조건의 상호작용적 현상이라 생각할 수 있다. 장수하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나 지역을 보면 그 복잡성을 잘 이해할 수 있다. 이들이 단지 좋은 영양만을 섭취해서 장수할 수 있었을까? 많은 현상이 이렇게 복합적이고 상호 연관적으로 일어나고 있으므로 의료와 건강을 다루는 인공지능은 당연히 연기적 시각으로 현상에 접근하고 폭넓은 복합성을 강조하는 연기적 학습을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인공지능이든 자연 지능이든 복합적이며 상호작용적 관계를 고려하는 것은 사건의 숨겨진 인과 고리를 살피는데 필수적 요소다. 단선적인 인과관계가 아니라 복합적이며 상호의존적인(pratītya, 緣) 발생(samutpāda, 起)을 세심하게 살펴보는 것이 앞으로의 인공지능의 기능과 학습의 열쇠가 될 것이다. 연기는 인공지능과 불교가 학습이라는 실용적 고리에서 연결되는 지점이다. 아마 왓슨 포 온콜로지의 프로그래머들도 이러한 총합적 지능과 학습의 중요성을 이미 인지하고 여러 가지 방도를 취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 기회를 빌려 왓슨에게 이러한 복합성과 총체적 연관성을 보는 불교적 연기의 시각을 고려해볼 것을 추천하고 싶다.
__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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