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담 대선사 법문

참선법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심을

깨닫는 것

 

공안을 화두라고도 하는데, 공안이라 하는 것은 공립학교의 공(公) 자와 안건의 안(案) 자로, 공안은 ‘관가의 법률’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이 공안이라 하는 것은 우리가 깨달음에 이르는 데나, 깨달음을 성취함에 있어서 가자(假藉)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공부하는 입장에서 이 공안을 선지식(善知識)으로부터 받아 그분들의 직접적인 지도 아래 참구(參究)해야 합니다.

사실 공안(公案)·화두(話頭)는 이론으로 풀 수 없는 일종의 수수께끼와 비슷합니다. 수수께끼라 하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온갖 상식, 지식 등을 총동원해서 알아맞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수수께끼는 이론으로 풀 수 없습니다.

한 예로 유리병이 하나 있다고 칩시다. 그 유리병의 주둥이는 좁고 밑으로 내려가면서 툭 퍼졌는데 어떤 사람이 그 병에 오리 새끼 한 마리를 넣었다고 해봅시다. 새끼 때는 몸집이 작으니까 그 좁은 주둥이로 오리 새끼를 넣을 수가 있었는데, 매일 먹을 것을 주니 그 덩치가 점점 자라서 이제는 병의 주둥이로 나올 수 없다면 어떻게 그 오리를 구할 수 있을까요? 병을 깰 수도 없고, 그렇다고 먹이를 주지 않을 수도 없는데, 바로 이것이 공안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병에 열을 가해 주둥이를 넓혀서 꺼낸다고 하든지 하는 생각들은 벌써 이론을 사용한 것이기 때문에 바른 답이 나올 수 없습니다. 이론을 사용하지 말고 ‘다못(다만) 어떻게 하면 꺼낼 수가 있을까?’ 이렇게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일체처 일체시(一切處 一切時),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든지 간에 이렇게 참구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처음에는 무엇을 보는 순간에 깜박 이 공안에 대한 참구를 잊어버리고, 또 무엇을 들은 순간에 깜빡 잊어버리지만, 잊어버렸다 하면 바로 돌이켜서 ‘어떻게 꺼낼 수가 있을까?’ 이렇게 생각을 돌리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잊어버리는

 

참선법은 인생이 스스로 자연적으로 품게 되어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심(疑心),

그것을 체계화해서 스스로 깨닫도록 하는 방법입니다. 참선법이 공안이라 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이미 그 공안을 가지고 있습니다. 생명을 바쳐서 풀어야만 할

그 문제를 자기 자신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이미 안고 태어나는 것입니다

시간이 많다가 차츰차츰 잊어버린 시간은 줄어들고 이 화두를 참구하는 시간은 늘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하지 않으려고 해도 항시 저절로 참구가 되는 때가 올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공부가 익숙해진 증거인 것입니다. 수수께끼, 이론으로 풀 수 없는 수수께끼 바로 이것이 화두라는 것입니다.

자동차에는 운전사가 있어서 자동차를 운전하면 자유자재로 갑니다. 그것은 겉에서 보기에 차가 그렇게 한 것같이 보이지만 실제로 속을 알면 차가 제멋대로 그런 것이 아니라 운전사의 조종에 의해 차가 그렇게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뚱이, 이 육체도 눈으로 보는 것, 귀로 듣는 것, 입으로 말하고 밥을 먹는 것, 손으로 움직여서 일하고 발로 걸어 다니는 것, 앉고 서고 눕고 하는 것이 몸뚱이가 제멋대로 그런 것이 아니고 이 몸뚱이를 조종하는 운전사가 우리의 몸 안에 있어서 그 운전사의 조종에 의해 행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관절 그놈이 무엇이냐? 보통은 ‘그게 마음이지 무엇이겠느냐’ 한다면 그 마음이라 하는 것이 어떻게 생겼고 어디에 있으며,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눈으로 볼 수 없고, 귀로 들을 수 없고, 손으로 붙잡을 수 없건만 그놈이 눈을 통해서 모든 것을 보고, 귀를 통해서 모든 것을 듣고, 손이나 발을 통해서 온갖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것이 있다면 눈에 보여야 하고 손으로 잡을 수가 있어야 할텐데, 왜 있으면서 볼 수 없고 잡을 수가 없느냐?

그래서 우리는 의심을 안 할 수 없습니다. 배만 부르면 그저 아무 근심이 없이 사는 사람이라면 모르지만,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사람이면 이 불법(佛法)이 무엇인 줄도 알기 전에 ‘대관절 이 인생이라는 게 무엇이냐?’, ‘대관절 나라는 것이 무엇이냐?’, ‘어디서 와서 무엇 하러 왔으며 또 한평생을 살다 가는데 어디로 가는 것이냐?’ 하는 자기 자신과 인생의 근본 문제에 대해 다 자기 나름대로 궁금증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참선법은 인생이 스스로 자연적으로 품게 되어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심(疑心), 그것을 체계화해서 스스로 깨닫도록 하는 방법입니다. 참선법이 공안이라 하는 것입니다. 아까 이 공안은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한다고 그랬습니다만 실제는 자기 자신이 이미 그 공안을 가지고 있습니다. 생명을 바쳐서 풀어야만 할 그 문제를 자기 자신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이미 안고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의식주, 오욕락(五欲樂) 때문에 그 중요한 문제를 건드려보지도 못하고 놓아둔 채 방황을 하고 몸부림을 치면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의 우리들입니다. 부처님과 역대 조사들은 이 문제에 대해, 말세에 태어난 근기(根機)가 약한 업보 중생(業報衆生)들도 공부할 수 있도록 개발해놓은 방법이 바로 이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이라고 했습니다.

‘이 뭣고? 대관절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또는 ‘이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 본래면목(本來面目)이 무엇인고?’. 이 몸뚱이는 부모로부터 났는데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참나는 절대 부모가 낳아주신 것이 아닙니다. 이 참나는 우주가 생겨나기 이전부터 언제 생긴 때가 없이 존재해온 것입니다. 이 몸뚱이는 늙어서 병들어 죽지만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우리의 주인공 참나는 태어난 때가 없기 때문에 또한 죽지도 않습니다. 죽고 사는 것이 아니요, 생겨났다 없어졌다 하는 것이 아니라 늘 언제나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이 글은 송담 대선사의 1980년 5월 4일 용화선원 일요 법회 법문을 편집부에서 녹취, 정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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