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 세상 읽기|장 피에르 보의 『도둑맞은 손』 외__정여울

1. 내 몸의 주권은 누구에게 있는가

『도둑맞은 손』

 

장 피에르 보 지음,

김현경 옮김,

이음 刊, 2019

 

로빈 윌리엄스 주연의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bicentennial man)>을 보면서, 나는 로봇의 인권을 생각해보았다. 가사 로봇으로 주인의 온갖 노동을 담당하던 앤드류는 제조 과정의 실수로 오작동해 인간의 감정, 인간의 지능을 갖게 되고, 때로는 인간보다 더 뛰어난 재능과 창조성을 보여주어 주인을 놀라게 한다. 무엇보다도 앤드류를 인간보다 더 인간답게 만든 것은 사랑할 줄 아는 마음이었다. 로봇조차 저토록 ‘살아 있는 존재의 주권’을 주장하는데, 우리는 너무도 자신의 인권에 대해 무감각한 것은 아닌지.

바이센테니얼 맨은 말 그대로 두 세기에 걸쳐 약 200년간 살면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늙고 죽어가는 평범한 인간의 삶을 꿈꾼다. 그는 죽을 권리를 얻기 위해 법정과 수십 년 동안 치열한 공방을 벌인다. 세상은 ‘로봇이 과연 죽을 권리가 있는가’로 갑론을박을 벌인다. 온 세상이 그를 공격하지만, 그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죽기 위해 그 외로운 싸움을 견뎌낸다. 영화를 보다 보면 스스로 인간이라 주장하는 이들이 더 비인간적으로 느껴지고 인공지능 로봇 앤드류가 더 인간적이고 온기 있는 존재로 느껴진다. 그가 로봇일 때는 그의 주권이 ‘그를 구매한 인간’에게 있었다. 하지만 그가 로봇이 아닌 인간이기를 선택한 이후, 그의 인생은 물론 신체의 주권 또한 앤드류 자신에게 귀속된다. 나는 이 영화를 통해 ‘내 몸의 주권은 진정 나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 책은 살아 있는 생명체로서의 주권, 신체 부위 하나하나의 주권을 통렬하게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해방과 자유를 얻을 수 있는 지름길임을 보여준다. 인공지능 로봇 앤드류는 바로 그 생명체의 주권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의 신체는 물론 인생의 주권을 쟁취하기 위해 모든 것을 걸고 분투한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당연히 내 몸은 내 것이다’라는 고정관념 때문에 우리 몸의 주권이 얼마나 위협당하고 착취당하고 있는지에 대한 자의식이 둔감해진 것은 아닐까.

대중문화와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더 멋진 신체, 더 상품성 있는 몸’을 미디어를 통해 전시함으로써 우리의 자연스러운 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신체의 비율, 몸무게나 의류 사이즈, 심지어 피부의 미세한 결이나 톤까지 ‘상품화된 신체’의 대상이 된다.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의 신체를 뭔가 모자란 존재, 뭔가 이상적인 기준에 걸맞지 않은 존재로 대상화하게 된다. 인간의 몸은 끊임없이 이전과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용도로 변환되고 착취당하고 있지만 명목상의 신체적 주권은 결코 잃어버린 현대인의 몸 자체를 되찾아주지 못한다.

이 책은 어떻게 해야 우리가 몸의 주권을 되찾을 수 있는지, 나아가 ‘나의 몸’이라는 충만한 감정이 사라져버린 현대인의 슬픈 육체에 대한 광범위한 역사적 분석을 통해 살아 있는 생체의 진정한 인권을 되찾는 지적 모험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미디어의 시선으로 우리 신체를 ‘뭔가 모자란 몸, 뭔가 이상적이지 않은 신체’로 대상화해 바라보는 순간, 우리는 우리 신체의 주권을 잃는다. 전쟁은 가장 참혹한 형태로 인간의 신체 주권을 유린한다. 총을 쏘고 싶지 않고 인명을 살상하고 싶지 않은 선량한 젊은이들로 하여금 국가와 군대는 ‘너는 살아남기 위해 적군을 죽여야 한다’는 강요된 명령에 길들여진 신체로 만든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신체는 어떤가. 그들은 가장 꽃다운 나이에 온갖 감언이설에 현혹되어 오직 가난을 이기기 위해 끌려갔으나 이루 말할 수 었는 폭력과 학대 속에 자신의 몸의 주권을 잃어버린 채 수십 년 동안 숨죽여 살았다. 위안부 차출 기간이 끝나고 나서도 할머니들은 뭇 시선의 감옥에 갇혀 진정한 자기 삶을 살지 못했다.

우리 몸의 주권을 되찾는다는 것, 그것은 우리의 잃어버린 기억과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는다는 의미이며 더 나은 삶을 위해 내 몸의 진정한 주권을 탈환하는 일이기도 하다.

 

2. 공간의 힘으로 삶을 바꾸는 시간

『공간 혁명』

세라 W. 골드헤이건 지음,

윤제원 옮김,

다산사이언스 刊, 2019

 

휴가를 떠올리면 왜 푸른 바다와 나무 향기 가득한 숲이 자동적으로 연상될까. 왜 현대인은 왜 점점 더 인테리어가 아름다운 집에 집착하는 것일까. 이 모든 것은 공간이 인간의 심리에 끼치는 영향과 연관된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인간에게 중립적인 공간이란 없다고 이야기한다. 공간은 반드시 좋거나 나쁘거나, 둘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공간을 어떻게 디자인하는가에 따라, 공간을 어떻게 재배치하는가에 따라, 공간은 인간에게 독이 될 수도 있고 기적을 선물해줄 수도 있다. 진정 우리 삶을 가치 있고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디자인을 고민할 때, 우리의 삶은 좀 더 나아질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도시 경관과 건물, 조경에 관심을 두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 우리 대부분은 스스로도 모른 채 혹은 알면서도 건축 환경에 대한 통제권을 포기하고 시의원, 부동산 개발업자, 건축업자, 건축 재료 제조업자, 디자이너 등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결정에 모든 것을 맡긴다. 자신이 건축 환경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반인은 거의 없다. 그리고 이런 무기력감으로 인해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한다. 공간 혁명중에서

이 책은 뇌과학으로부터 공간 혁명의 아이디어를 얻고 있다. 신경건축학이라는 낯선 분야를 통해 저자가 보여주는 통찰력은 공간의 구조와 인간의 행복이 아주 밀접한 연관 관계가 있다는 사실로부터 비롯된다. 우리가 사는 장소가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 공간 혁명은 시작된다. 마을을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곳, 아침에 일어나 내 집 안을 천천히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상쾌해지는 곳을 만들어가는 것이야말로 일상 속 공간 혁명의 시작이다. 생명친화적인 공간은 긍정적인 행동을 유도하고, 숭고하고 경이로운 건축 디자인은 더 높은 존재를 향한 갈망을 불러일으킨다. 자연의 본질에 대한 깊은 경외감을 바탕으로 한 건축디자인은 그 자체로 생태주의적인 삶을 촉발한다. 지은이는 우리는 어떤 공간에서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지, 현대인의 피난처로서의 집은 어떤 공간 디자인으로 설계되어야 하는지를 다양한 모델을 통해 보여준다.

중국의 많은 지역에서는 새로운 아파트를 건설할 때 일 년 가운데 가장 해가 짧은 동지에도 직사광선이 최소 3시간 이상 집 안으로 들어오게 만들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번 생각해보자. 전 세계가 이 한 가지 법규만이라도 제대로 지킨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의 주거 환경이 개선되겠는가. 공간 혁명중에서

인간의 잠재력을 더욱 활성화하는 건축 디자인, 인간의 역량을 강화하며 인간의 행복을 증진하는 디자인은 반드시 호화롭거나 최첨단 기술을 활용하는 건축 기술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내 삶이 이루어지는 공간을 스스로 가꾸고 돌보려는 의지로부터 공간 혁명은 시작된다. 햇빛이 잘 들어오는 창가에 아름다운 꽃을 놓아두는 몸짓, 최고의 인테리어의 시작인 청소를 열심히 하는 것, 1년 이상 사용하지 않은 모든 물건이나 옷들을 정리하고 공간을 최대한 간결하게 가꾸는 것. 이 모든 일상 속의 인테리어가 공간 혁명의 시작이다.

정여울 작가. 저서로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월간정여울-똑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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