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불교와 정서 2

심리학에서 본
정서와 행복의 관계
권석만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희로애락(喜怒哀樂)의 정서를 느끼지 못한다면, 우리의 삶은 참으로 무미건조할 것이다. 정서는 우리에게 ‘사는 맛’을 느끼게 해주고 삶의 의욕과 활기를 제공하는 인생의 원동력이다. 그런데 문제는 사는 맛이 항상 달콤하고 고소한 것이 아니라 몹시쓰고 매울 때가 많다는 점이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우리 인생을 맛있게 요리하는 기술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의 맛을 음미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인생의 맛, 정서(情緖)를 잘 이해하고 조절하는 것은 행복한 삶을 위한 매우 중요한 기술이다.

인생의 맛, 정서의 세계
정서(emotion)는 자극에 대한 반응으로 경험되는 주관적인 느낌일 뿐만 아니라 신체 생리적 변화, 인지적 평가, 표정 변화, 특정한 행동 경향성으로 구성되는 복합적인 심리적 현상이다. 인간이 경험하는 정서는 매우 다양하지만, 기본 정서와 복합 정서로 구분할 수 있다. 기본 정서는 모든 인간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원형적 정서로서 그 정서의 표정이 대부분의 문화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날 뿐만 아니라 신생아에게서도 나타난다. 심리학자인 폴 에크만(Paul Ekman)은 6가지의 기본 정서, 즉 행복(happiness), 혐오(disgust), 공포(fear), 분노(anger), 슬픔(sadness), 놀람(surprise)을 제시하고 있으며, 복합 정서는 기본 정서의 조합에 의해 다양하게 파생된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다양한 정서는 두 개의 차원으로 이루어진 공간에서 분류될 수 있다. 한 차원은 정서의 유쾌-불쾌 정도를 반영하는 것이며, 다른 차원은 정서의 흥분-이완 정도를 나타내는 것으로 에너지의 활성도를 의미한다. 우리가 흔히 경험하는 주요한 정서들은 아래의 그림과 같이 2차원 공간의 특정한 위치에 배치될 수 있다.

우리의 삶은 정서의 2차원 공간을 오가는 변화 과정이다. 오른쪽 1, 4분면은 유쾌 정서를 느끼는 행복의 공간이며, 왼쪽 2, 3분면은 불쾌 정서를 경험하는 불행의 공간이다. 행복한 사람은 주로 오른쪽 공간에 머물며 살아가는 반면, 불행한 사람은 불안·분노·우울을 경험하는 왼쪽 공간에서 살아간다. 사람들은 누구나 왼쪽 공간에서 오른쪽 공간으로 옮겨가기 위한 이고득락(離苦得樂)의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오른쪽 공간이 모두 머물기 좋은 곳은 아니다. 환희와 같은 유쾌 정서의 흥분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자율신경계를 과도하게 활성화해 신체 건강을 훼손할 수 있다. 이상적인 삶은 대부분의 시간을 평온한 유쾌 정서의 4분면에 머물다가 가끔씩 1분면의 강렬한 유쾌 정서를 경험하는 삶인지 모른다.

 

부정성 편향 : 불쾌 정서가 유쾌 정서보다 강하다
인간의 언어에는 유쾌 정서보다 불쾌 정서를 기술하는 어휘가 훨씬 더 많고 다양하다. 인간은 좋은 일보다 나쁜 일에 의해 더 강한 정서적 영향을 받는 경향이 있다.
심리학 연구에 의하면, 동일한 액수라도 이익의 기쁨보다 손실의 아픔이 2배 이상 더 크다. 칭찬받는 기쁨보다 비난받는 아픔이 최소한 5배 이상 더 크다. 그래서 은혜는 물 위에 새기고 원한은 돌 위에 새긴다. 구하는 것을 얻는 즐거움보다 얻지 못하는 괴로움(구부득고, 求不得苦)이 더 크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기쁨보다 그와 헤어지는 괴로움(애별리고, 愛別離苦)이 더 크고, 미워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즐거움보다 다시 만나게 되는 괴로움(원증회고, 怨憎會苦)이 더 크다. 이처럼 인간은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것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는 경향이 있는데, 심리학에서는 이를 부정성 편향(negativity bias)이라고 부른다. 프로이트는 이러한 점을 지적하면서 “신은 세상을 창조할 때 결코 인간을 행복하게 할 의도가 없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인생은 고해(苦海)’라는 붓다의 말씀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부정성 편향을 잘 이해하고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삶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대표적인 부정 정서는 불안, 우울, 분노이다. 정서는 개인의 생존과 적응을 돕기 위해 진화한 것이지만 여러 원인에 의해서 정서가 부적절하게 기능할 수 있다. 불안, 분노, 우울과 같은 부정 정서를 자주 강하게 경험해 삶이 고통스러울 뿐만 아니라 사회적 부적응을 초래하는 경우는 정서장애(emotional disorder) 에 해당하며 치유의 노력이 필요하다.

 

삶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대표적인 부정 정서는 불안, 우울, 분노이다.
정서는 개인의 생존과 적응을 돕기 위해 진화한 것이지만
여러 원인에 의해서 정서가 부적절하게 기능할 수 있다

 

부정 정서를 유발하는 인지적 요인의 중요성
부정 정서를 유발하는 핵심적 원인은 개인이 그러한 사건을 해석해 의미를 부여하는 인지적 과정에 있다. 정서장애는 대부분의 경우 마음의 문제이며 심리 치료를 통해서 치유될 수 있다. 불교나 심리 치료에서 고통의 원인과 해결 방법을 마음의 바깥보다 안에서 찾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지 치료(cognitive therapy)를 제시한 아론 벡(Aaron Beck)에 따르면, 정서장애를 지닌 사람들은 생활 사건의 의미를 부정적인 방향으로 과장하거나 왜곡하는 사고 경향이
있다. 주목해야 할 점은 이러한 해석 과정이 매우 신속하게 자동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잘 의식되지 않은 채로 그 결과물인 정서만 경험된다는 점이다. 이처럼 정서는 특정한 사건이나 상황에서 반사적으로 유발되는 당연한 경험으로 느껴지지만 매우 복잡한 인지적 과정을 통해서 발생하는 것이다. 인지 치료는 부정 정서를 유발하는 인지적 요인을 정밀하게 탐색해 체계적으로 변화시키는 데 초점을 맞춘다.

 

비합리적 신념 : 자신과 세상에 대한 당위적 요구
정서장애를 나타내는 사람들이 사건의 의미를 부정적으로 과장하고 왜곡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자신과 세상에 대한 잘못된 신념, 즉 비합리적 신념 때문이다. 저명한 심리 치료자인 앨버트 엘리스(Albert Ellis)에 따르면, 비합리적 신념(irrational beliefs)이란 “반드시 ~해야 한다”는 당위적 요구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현실에서 충족되기 어렵다는 점에서 비합리적이다. 비합리적 신념은 자신, 타인, 세상에 대한 당위적 요구로 구분할 수 있다. 자신에 대한 당위적 요구(self-demandingness)는 개인이 자신에게 현실적으로 충족되기 어려운 과도한 기대를 부과하는 것이다. 이러한 당위적 요구는 개인에게 과도한 부담으로 작용해 불안, 좌절감, 우울을 유발하게 된다.

타인에 대한 당위적 요구(other-demandingness)는 다른 사람에 대한 과도한 기대로서 필연적으로 다른 사람에 대해서 실망감, 분노, 배신감을 느끼게 만든다.
세상에 대한 당위적 요구(world-demandingness)는 사회에 대한 비현실적인 기대를 의미한다. 비현실적인 신념을 지닌 사람들은 자신의 기대처럼 움직이지 않는 세상에 대해서 분노와 적개심을 경험하게 된다. 자신, 타인, 세상에 대한 당위적 요구를 지닌 사람은 필연적으로 현실에서 좌절할 수밖에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현실을 “결코 있을 수 없는 일” 또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라고 과장하면서 강한 부정 정서를 경험하게 된다. 그 결과 자신을 무가치한 존재로 비하하거나 다른 사람을 사악한 존재로 매도하며 비난하게 된다. 이
러한 행동은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새로운 부정적 사건을 유발하는 악순환을 만들게 된다. 엘리스에 따르면, “인간은 누구나 어느 정도의 당위적 요구를 지니고 태어나며 길러진다. 오직 꾸준한 노력을 통해서만 이러한 당위적 요구를 ‘건강한 소망’으로 바꿀 수 있다.”

 

정서 조절 : 생각을 알아차리고 다스리기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수시로 찾아드는 부정 정서를 잘 조절할 수 있는 심리적 기술이 필요하다. 우선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라는 점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부정 정서를 느끼게 만드는 우리 자신의 생각을 알아차려야 한다. 부정 정서를 유발하는 생각은 잘 자각되지 않기 때문에 잠시 멈추어 어떤 생각이 그러한 정서를 유발했는지 곰곰이 살펴보아야 한다. 인지 치료자들은 ABC기법을 통해 부정 정서가 유발된 상황을 정밀하게 분석한다. ‘어떤 사건(A)’이 ‘어떤 생각(B)’을 통해서 ‘어떤 부정 정서(C)’를 유발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부정 정서를 유발한 생각(B)이 포착되면 이를 다각적으로 평가한다. 사건에 대한 주관적 해석인 생각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 마음을 조금만 깊이 살펴보면 말도 되지 않은 비현실적인 기대와 요구, 즉 망상으로 가득 차 있다. 만약 자신의 생각이 과도한 것이라면 다음과 같은 물음을 던져본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생각하는 것이 좀 더 현실에 가까운 것일까? 또한 나의 인간관계와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되는 것일까? 내가 존경하는 사람(부모, 지혜로운 친구, 스승, 스님 등)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이러한 물음을 통해서 부정적이고 비현실적인 생각을 좀 더 긍정적이고 현실적인 생각으로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오랜 기간 습관화된 사고방식과 신념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처럼 생각을 알아차리고 다스리는 노력을 꾸준히 지속하면 부정 정서로부터 조금씩 벗어날 수 있다.

행복의 두 날개 : 지혜와 자비
마음의 상처가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타인에 대한 당위적 요구를 많이 지닌다. 따라서 사소한 잘못에도 자기 책망이 많아져 자존감이 저하될 뿐만 아니라 타인의 사소한 부정적 언행을 비난과 거부로 받아들여 분노하기 때문에 대인관계가 더욱 꼬이게 된다. 그 결과 우울, 불안, 분노의 부정 정서를 더 자주 강하게 경험하는 불행의 악순환에 빠져들게 된다. 이러한 악순환을 만들어내는 핵심적 고리는 당위적 요구와 부정적 생각이며 그 결과로 나타나는 부정적 행동이다.

부정 정서의 늪에 빠져들게 하는 악순환의 연결 고리를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과 타인에 대한 당위적 욕구를 건강한 소망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

자신과 타인에 대해서 좀 더 유연하고 자비로운 생각을 지니는 것이 불행의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지혜로운 방법이다. 자비로운 생각은 긍정적인 정서와 행동을 유발하고 타인과의 관계를 호전시킨다. 그러한 긍정적인 결과로 인해서 자신과 타인에 대한 자비로운 생각과 행동이 증가하는 선순환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처럼 정서와 인간관계의 순환 과정을 잘 이해하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비롭고, 자비로운 사람은 지혜로운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지혜와 자비는 행복의 두 날개이다.

행복의 근거를 마음 밖의 외부 세계에 두는 사람은 정서적 동요에서 벗어날 수 없다. 외부 세계는 우리의 뜻대로 통제하는 데 한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잠시도 머물지 않고 변화하며 결국에는 허물어지기 때문이다. 우리의 육체도 결국에는 늙고 병들어 죽어야 하는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 붓다는 이처럼 불안정한 삶의 존재 상황에서 금강석처럼 결코 깨지지 않는 최고의 행복에 이르는 길을 치열하게 추구하고 발견해 체득한 위대한 인물이다. 색즉시공(色卽是空)과 공즉시색(空卽是色)의 깨달음은 당위적 요구에서 벗어나 그물에 걸리지 않는 무한히 유연한 지혜를 의미한다. 하루에도 오만 가지 생각으로 정서의 네 분면을 상하좌우로 오가며 동요하는 마음의 바탕을 깊이 들여다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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