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본 아름다운 우리 절|문경 사불산 대승사

대승의 길 혹은 아이처럼
부처님 좋아하기

 

여름은 아이들의 계절입니다. 아이들의 타고난 직관력은 ‘무더위’보다는 ‘물놀이’에 방점을 찍습니다. 그 날렵한 선택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생명력의 발동이겠지요. 물론 아이들이라 해서 더위가 좋을 리는 없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더위와 싸우지 않습니다. 아랑곳하지 않을 뿐이지요.

오늘날 우리가 신화적 상상력의 범주로 몰아넣는 고대인의 사고와 아이들의 행동은 유비적입니다. 믿어야 할 것 이외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또한 그들에게 믿음은 신화도 상상도 아닌 현실입니다.

거의 불가능하지만, 6세기의 신라인이 되어 다음 이야기를 읽어보겠습니다.

“죽령 동쪽 1백 리가량 되는 곳에 높이 솟은 산이 있었다. 진평왕 9년(587)에 갑자기 사면이 한 길이나 되는 큰 돌이 하나 나타났다. 사방에 여래의 상이 새겨졌고 홍색의 비단으로 싸여 있었는데, 하늘로부터 산꼭대기에 떨어진 것이었다. 왕이 그 말을 듣고 행차해 공경히 절했다. 이윽고 바위 곁에 절을 세우고는 대승사라 하고, 이름이 전하지 않는 비구를 청해 절을 맡겼는데 『법화경』을 외우는 스님이었다. (스님은) 공양석을 깨끗이 하고 향불이 끊이지 않게 했다. 그 산은 역덕산 또는 사불산이라고도 한다. 스님이 죽어 장사를 지내자 무덤 위에서 연꽃이 피어났다.”

『삼국유사』 「탑상 편」에 실린 이야기입니다. 현대 용어로 말하자면 ‘대승사 창건 설화’입니다. 오늘의 우리로서는 내용 그대로 믿기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당시 신라인들은 사실로 받아들였을지 어땠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오늘 우리가 생각하듯 ‘신화적 상상력’을 발휘해 지어낸 이야기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들의 세계관에서 산은 신령한 곳, 하늘과 통하는 곳으로서 숭배의 대상이었으니, 부처님이 오시기에 마땅한 곳이었겠지요.

 

 

위 이야기를 어떻게 이해하든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당시 신라인들의 『법화경』 신봉입니다. 스님이 죽자 무덤에서 연꽃이 피어올랐다는 이야기는 이 땅을 불국토로 여긴 믿음의 표현일 것입니다. 그들은 『법화경』의 대의에 오늘의 우리보다 훨씬 투철했습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불자라면 누구나 알 듯이 『법화경』의 핵심은 ‘회삼귀일’입니다. 성문·연각·보살이 궁극적으로 ‘일불승’에 귀착한다는, 불교의 모든 가르침이 결국은 ‘부처’를 이루게 하는 하나의 가르침으로 모아진다는 것이겠지요.

대승사가 있는 사불산(요즘은 공덕산으로 널리 불림)은 문경의 산으로, 신라 때에는 고구려와 접경한 변방이었고, 대승사가 처음 세워질 무렵은 삼국 간의 다툼이 치열했을 때입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이 땅을 불국토로 여긴 튼튼한 믿음으로 세운 절이 대승사였습니다. 진정한 대승 정신의 발현이겠지요. 무시로 살육이 벌어지는 현실을 아랑곳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에 대한 믿음 말고는 다른 어떤 것도 아랑곳하지 않는 그런 믿음의 태도 말입니다.

더위보다 물놀이에 이끌리는 아이들처럼, 그렇게 부처님께 매달리고 싶은 시절입니다. 아, 그런데 그 쉬운 일이 왜 이리 어려운지요.

 

사진│우태하(항공사진가), 글│윤제학(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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