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에서 온 편지 17

가지지 않았다고
즐기지 말란 법은 없다

 

 

“숲에 사는 동식물은 숲이 자기 소유가 아니라고 슬퍼하지 않는다. 날아가는 철새는 국경 때문에
갇혀 사는 일이 없고, 자기 영역이라고 표시하는 멧돼지는 영역 확장을 위해 쓸데없는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숲을 소유하지 않은 우리 아이들은 숲 주인보다 더 즐겁게 놀곤 한다. 우리 인생도
한바탕 신나게 노는 게 숙명이 아닐까? 더 가지려 하기보다는 더 즐기기 위해 노력하자.
결국 우리도 빈손으로 자연에 돌아갈 테니 말이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듯이, 나도 몇 해 전, 친구가 아주 싼값에
집과 땅을 샀다는 소식에 무척 부러웠다. 땅뙈기 하나 없는 우리 부부에게는 시골 생
활에서 가장 부러운 것이 텃밭이다. 적어도 친구는 자기 땅에 원하는 만큼의 채소를
심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솔직히 부러웠다. 시골에 살면서 땅 하나 없는 우리에게는
경작 가능한 텃밭을 빌리는 일이 큰일이었다. 언제나 노는 경작지를 찾아 땅 주인을
수소문해 빌려야만 했다. 운이 좋은 해는 여러 해 텃밭을 빌릴 수 있었고, 운이 나쁜
어떤 해는 어떤 텃밭도 운영하지 못했다.
그러다 어느 날 땅을 산 친구와 허심탄회하게 대화할 기회가 생겼다. 텃밭에 대한
고충을 말하다 친구에게 부럽다고 하소연을 했다.
“알프레도, 땅이 많아 텃밭 때문에 걱정할 일이 없어서 얼마나 좋겠어!”
하지만 친구는 이런 말을 해주었다.
“부럽긴…! 땅이 있으면 걱정거리가 너무 많아. 오히려 나는 땅 없는 네가 부러운걸.”
알고 보니, 친구는 계절마다 크고 작은 일 때문에 고생한단다. 사냥하는 계절에는
포수가 자신의 숲에서 총을 쏴대고, 난데없이 산악자전거 동호회에서 야외 활동을 하
며 다져놓은 흙길을 엉망으로 만들기도 한다고 했다. 심지어 자기 땅에 허락 없이 소
를 풀어놓은 이웃과도 불화가 생겨 골치가 아프다고 한다. 어떤 이는 느닷없이 찾아
와 자기 삼촌 땅에서 무단 점거한다며 협박까지 했다고 한다. 친구는 땅 때문에 생긴
이런저런 문제로 골치 아파했다. 차라리 아무것도 없는 우리가 더 부럽다고 했다.
친구가 해준 말을 듣고 나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진 사람은 아무것도 없는 이
를 부러워할 수도 있고, 가난한 이는 한없이 부유한 이를 부러워할 수 있다는 사실.
우리네 인생은 모든 것이 상대적이다. 나도 스페인 고산의 삶을 글과 사진으로 한국
의 독자들께 소개했는데, 우리 가족 이야기가 부럽다는 이도 있었고, 불편해서 싫다
는 이도 있었다. 그처럼 추구하는 가치가 상대적으로 다르기에 우리는 때때로 그 불
편함이나 부러움을 감수하고 살아야 한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내가 초라해 보여도 어떤 이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 있

다’라는 것. 스스로 열등하다고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말고 내 삶을 더 가치 있게 관
리하는 게 중요할 듯하다. 외모에 자신 없는 이는 스스로 자기 외모를 비하하며 자신
을 들볶는다. 하지만 그 외모마저도 누군가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가난
한 학생은 돈 많고 부유한 집안의 학생이 부러울 수 있다. 하지만 가난하다고 한탄만
한다면 피폐해지는 건 저 자신이다. 누군가에게는 당당히 열정적으로 돈 벌며 학업에
몰두하는 가난한 학생이 더 부러울 수도 있다. 또 실직해서 앞날이 깜깜한 어떤 이에
게는 자기 발전의 기회로 보고 부러워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또 매일 직장에 나
가야 하는 주부는 전업주부가 부러울 수도, 전업주부는 당당히 돈 버는 직장 여성들
이 부러울 수도 있다. 그렇게 우리는 상대적인 가치로 매겨지는 인생을 살고 있다.
그래서 소유했다고 절대 성공한 인생은 아니라는 것. 다 가졌다고, 더 많이 가졌다고
해서 자유로운 인생을 사는 건 아닐 게다. 오히려 제약되는 일들이 더 많을 듯도 하다.
누가 그랬는지 확실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무명의 자유로움’, ‘무소유의 즐거움’은
이럴 때 두고 하는 말인 듯하다. 작가가 되어 세상의 잣대가 엄격해졌을 때, 그 틀 안
에서 벗어나지 못해 창작 활동이 어려워지는 일이 있다. 아무도 아니었을 때 우리는
뭐든 자유롭게 할 수 있다. 화가 지망생은 모사도 하고, 작가 지망생은 필사도 하며
창작의 즐거움을 만끽한다. 그것처럼 무소유였을 때도 세상 자유롭게 소유한 사람보
다 더 즐거운 순간을 만끽한다고 생각된다. 가지지 않았을 때는 더 채워 넣을 수 있
고, 더 무한한 가능성으로 자신이 발전해나갈 수 있으니 말이다. 결국 인생의 목표는
소유가 아니라, 얼마만큼 행복하게 최선을 다하는가가 중요하다.
자연에 살면서 땅뙈기 하나, 나무 하나, 숲 하나 없는 우리에게, 우리 소유가 아니
라고 자연을 즐기지 말란 법은 없다.
아이들은 집 뒷동산에 올라가 세상 다 가진 듯 숲의 주인이 되어 흠뻑 놀다 오곤 한다.
숲을 가진 이보다 더 크게 숲을 즐기고 오는 듯하다. 그러고 보니 세상은 소유하지 않아
도 얼마나 즐길 거리가 많은가! 아이들은 숲에서 온전히 순간을 즐기며 에고는 잊는다.
아이들이 논 흔적을 보니 별것이 없다. 암벽 위 나뭇가지 몇 개, 나뭇잎, 돌멩이, 새

깃털 등을 가지고 논다. 그 모두, 자연에서 잠깐 빌려 놀던 장난감이다. 내 것이 아닌
자연의 것. 우리도 이 인생 살다 죽으면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아
이들처럼 그렇게 놀지 못한다. 내 소유의 차와 집, 부, 명예…. 이런 속박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어쩌면 이런 물건이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자연 안의 돌멩이와 같
은 존재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우리가 죽으면 의미가 없어지는 것들.
우리가 땅이 없어 좋아하는 텃밭을 가꾸지 못하는 건 참 아쉽지만 다른 방법으로 텃
밭을 가꾸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그 과정이 주는 즐거움도, 불편함도 분명 있을 것이
다. 천천히 그 가치를 깊게 생각하다 보면, 어떤 일에서건 행복이 보이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고 무조건 무소유를 인생 목적으로 삼자는 소리는 아니다. 소유가 목적이
되지 않는 게 중요할 듯하다. 남보다 더 가져야 행복하다는 삶의 자세는 버려야 가치
있는 소유로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싶다.
오랜만에 우리 가족은 지금 한국 여행을 하고 있다. 아이들과 스페인 사람인 남편
에게 내 조국을 보여주는 게 참 흐뭇하다. 멋진 자연경관과 훌륭한 문화유산, 꾸밈없
는 인간애…. 우리가 얼마나 훌륭한 대한민국 사람들인지 마음을 다해 느끼고 있다.
한편으로는 그 빠른 변화만큼 따라오지 못하는 타인을 배려하는 시민의식이 부족해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양보 없는 운전 문화, 갑과 을을 따지기 좋아하는 습관화
된 행동, 재활용 수거율은 높다지만 플라스틱 쓰레기가 넘쳐나는 상황 등. 전반적으
로 잘살게 된 우리에게 행복을 위한 가치가 그저 소유가 아닌, 세상과 함께 보고 행
동하는 가치로 변했으면 하는 소망이 들었다. 우리의 물질적 변화만큼 정신적 변화
도 훌륭히 잘 이뤄낼 것이라는 희망도 함께….

 

김산들 스페인에서 언어와 도자기를 공부했다. 스페인 관련 블로그(www.spainmusa.com)를 운영하면서 여러 방송 매
체에 스페인 정보를 제공, KBS 다큐 <공감>, <인간극장>, EBS 세계견문록 <스페인 맛에 빠지다> 등에 출연했다. 현재 해발
1,200m 스페인 고산평야에서 친자연적인 삶을 살면서 한국과 스페인의 일상과 문화를 글로 소개하고 있다. 저서로 자연
친화적이고 생태적인 삶을 다룬 『우리 가족, 숲에서 살기로 했습니다』가 있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two × 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