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담 대선사 법문

자유를 향해

여법하게 수행해나가자

 

 

 

 

세상의 물질문명이 점점 발달해서 과거에는 생각지도 못할 그런 세상이 되었지만 과연 지금이 진정으로 과거보다 훨씬 더 행복한가 생각해보면 꼭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고 다 버리고 머리 깎고 스님이 되어 세상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오직 인연 따라 열심히 도만 닦으면 별것이 아니겠지만 세속에서는 세속의 모든 흘러감을 외면하고 자기 혼자 옛날처럼 살기는 퍽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흐름을 전적으로 무시하지 않으면서 항상 불자로서의 자기 마음 닦는 일에는 절대로 등한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농계유식탕와근(籠鷄有食湯鍋近) 닭장 속 닭은 식량은 있지만 전골냄비가 가깝고

야학무량천지관(野鶴無糧天地寬) 야학은 먹이 주는 이 없지만 천지간에 자유롭네.

원입송풍나월하(願入松風蘿月下) 원컨대 송풍 불고 칡덩굴 사이 달 비치는 곳 들어가

장관무루조사선(長觀無漏祖師禪) 길이 무루의 조사선을 관하게 되어지이다.

– 1, 2구 지공(誌公) 선사의 「권세염불문(勸世念佛文)」

 

‘닭장 속에 있는 닭은 시간 맞춰서 먹이를 후하게 주니 배불리 먹고 있지만 머지않아서 펄펄 끓는 전골냄비가 기다리고 있고, 들에 날아다니는 학은 특별히 누가 양식을 주거나 양식을 쌓아놓은 것은 없지만 천지에 왔다 갔다 자유롭게 살고 있구나.’

이것은 세속에서 남부럽지 않게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는 것 같지만, 그 재산을 모으고, 관리하고, 쓰느라 본의 아니게 죄를 지어서 자칫하면 그러한 업(業)으로 인해 삼악도에 떨어질 우려가 다분히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 것이 다 무상(無常)한 것임을 철저히 깨닫고 다 버리고 발심해서 도를 닦으면, 그건 마치 내 소유라 할 것은 땅 한 뙈기, 명예, 지위, 부귀영화도 없지만 야학처럼 걸망 하나 짊어지고 바리때, 장삼(長衫) 하나만 있으면 어느 선방이든 다니면서 도를 닦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사요달(生死了達)해 일체 중생을 제도(濟度)할 수 있는 경지까지 도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원컨댄 솔바람 불고 칡덩굴 사이로 달을 보면서, 그 밑에 길이 무루(無漏)의 조사선(祖師禪)을 관(觀)하기를 원하노라. 이런 고인의 시가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왕림하시어 왕궁의 부귀도 버리시고 49년 동안 팔만사천의 법문을 설하셨고, 그 법문이 문자화되어 우리나라 해인사 장경각에도 목각(木刻)으로 모셔져 있지만 사실 이 「팔만대장경」을 다 읽고 해석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그 안에 있는 요점만을 뽑고 또 뽑아서 어떤 근기(根機)의 중생이라도 그렇게만 해나가면 「팔만대장경」에 담겨 있는 진리를 깨달을 수 있도록 개척해놓은 가장 간단하고 누구나 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셨는데 그것이 바로 참선법(參禪法)입니다.

참선법 가운데에서도 ‘이 뭣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앉아서도 ‘이 뭣고?’ 서서도 ‘이 뭣고?’ 하는데 이것이 별 재미도 없고 어려운 말도 아니지만 무상함을 철저히 깨닫고 열심히 ‘이 뭣고?’를 한다면 해가 갈수록 무엇이 알아지는 것은 없더라도, 신심이 더욱 나오고, 무상을 더 철저히 느끼게 되며, 일분일초 시간을 아껴서 이 한 가지 일에 철저하게 정진할 수 있게 됩니다.

수행이라 하는 것이 꼭 해야 하고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나, 공부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소견(所見)이 나거나 경계가 일어났을 때, 철저하게 선지식을 믿거나 선지식의 법문을 의지하지 아니한 사람은 까딱하면 잘못된 지경에 말려들어갈 수 있습니다. 정말 삼명육통(三明六通)과 팔해탈(八解脫)을 다 얻어서 부처님과 조사와 같은 그런 경지에서 오무생사(悟無生死)하고 증무생사(證無生死)해서 용무생사(用無生死)할 지경에 이르지 아니했으면서 득소위족(得少爲足)처럼 자기도 깨달았다는 생각을 속에 품고 있다면 불조(佛祖)에게도 부끄러울 일이고 도반들에게도 부끄러울 일이며 신도·단월(檀越)네에게도 부끄러운 일일 것입니다. 깨닫지 못한 것을 깨달았다고, 미증(未證)을 위증(謂證)하고 미득(未得)을 위득(謂得)해 대접받으려 하는 그러한 짓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항상 자기의 잘못된 점을 반성해 참괴심(慙愧心)을 가지고, 구경각(究竟覺)을 얻을 때까지는 초학자(初學者)와 같은 겸허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허리띠를 졸라매서 여법하게 수행해나가는 그러한 수행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자굴중무이수(獅子窟中無異獸) 사자 굴 속에는 다른 짐승이 없고

상왕행처절호종(象王行處絶狐) 코끼리 왕이 행하는 곳에 여우의 발자취가 끊어짐이라

– 낙보원안(樂普元安) 「전등록」

 

사자 굴속에 어떻게 다른 짐승들이 사자와 같이 살 수 있겠습니까? 코끼리의 왕, 상왕이 떼를 지어서 걸어가는 데 여우 같은 간특한 짐승들이 그 사이에 끼여서 갈 수 없습니다. 철저하게 정법을 믿고 정법에 의해서 발심한 여러 도반들이 바로 사자요, 코끼리의 무리와 비교될 수 있을 만한 도반들입니다.

 

호향차시명자기(好向此時明自己) 정말 이때를 향해서 자기를 밝혀라

백년광영전두비(百年光影轉頭非) 백년 세월이 금방 일초일초 지나가게 되니,

금생약불종사어(今生若不從斯語) 금생에 이 말을 마음속 깊이 새기고 단속하지 아니하면

후세당연한만단(後世當然恨萬端) 후세에 한이 만단이나 될 것이다.

– 1, 2구 『선가귀감』 / 3, 4구 「자경문」

 

‘이때’라는 게 ‘바로 지금’입니다. 바로 우리가 이만큼 건강할 때 도를 닦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래 살아봤자 100년이지만 이 또한 금방 지나가는 것이니, 뒤로 미룰 일이 아니고, 여러 가지 핑계 대지 말고, 금생에 이렇게 간절히 드리는 말씀을 따라서 실천하지 아니하면, 염라대왕 앞에 끌려가서 “아! 그때 좀 더 열심히 정진할 것을…”, 더 늙어 육체가 자유를 잃어버리게 되었을 때가 되어 “그때 힘 좀 있을 때 정진을 열심히 할 것을…” 하고 후회해봤자 한(恨)만 만단(萬端)이나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글은 송담 대선사의 2000년 8월 용화선원 하안거 해제 법문을 편집부에서 녹취, 정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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