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자유(自由) ① 자유로이 빛나다__켄포 출트림 걈초

 

자유로이 빛나다

 

켄포 출트림 감초

티베트 불교 스님

 

 

위대한 요기이며 수행자인 밀라레빠가 부른 노래를 설명하면서 켄포 출트림 갸ㅁ(Khenpo Tsultrim Gyamtso)는 삼계가 스스로 출현하고 스스로 해방되었음을 체험할 때 우리는 삼계의 참 자성이 자유로이 빛나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고 말한다.

밖에는 삼계가 자유로이 빛나고

안에는 스스로 출현한 지혜가 빛나고

그 사이엔 근본 자리를 깨달은 믿음이 있네

참 의미에 대한 두려움 없음-그것이 내가 가진 전부라네.

밀라레빠의 시 ‘만물이 안과 밖에서 빛나는 7가지 방식(The Seven Ways Things Shine Inside and Out)’에서 인용한 위 시구에서는 실재의 참 본성에 대한 깨달음을 노래하고 있다. 실재의 참 본성을 깨닫기 위해서 필요한 외적 조건은 ‘삼계’가 ‘자유로이 빛나는 것’이다.

“스스로 해방(Self-liberation)”이라는 말은 어떤 면으로는 삼계가 외부로부터 어떤 해 방자가 와서 그들을 해방시켜주지 않아도 출현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삼계는 꿈속에 나타나는 형상과도 같다. 이들은 단지 상호의존적인 원인과 조건이 결합된 결과일 뿐 자신만의 본질도 본래부터 가진 실체도 없다. 자유는 삼계의 기본적 실상이다. 하지만 삼계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체험이 자유로운가 속박인가는 우리가 삼계의 참 자성이 스스로 해방되었음을 깨달았는지 깨닫지 못했는지에 달려 있다.

‘스스로 해방’이라는 말은 마하무드라와 족첸 가르침에서도 사용되는데, 사물이 ‘스스로 출현하고 스스로 해방된다’고 말한다. 이는 현상이 참으로 존재할 원인이 없 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꿈에 나타난 자동차의 경우 그 차가 어느 공장에서 제조되 었다고 말할 수 없다. 또는 거울에 나타난 사람을 보며 그 앞에 서 있을 때 그 사람이 어디서 태어났는지 말할 수 없다. 꿈에 나타난 자동차나 거울에 비친 사람은 출현에 대한 참 원인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들이 스스로 출현했고, 따라서 그들이 스스로 해방되었다는 것이다.

이 원리를 고통을 겪을 때 적용한다면, 고통에 실제 원인이 없기 때문에 고통은, 꿈속의 고통처럼, 참으로 일어나지 않은 것을 안다. 따라서 고통은 스스로 출현한 것 이고 따라서 스스로 해방되어 있다.

따라서 밀라레빠는 우리에게 내적으로 필요한 것은 스스로 출현한 원초적 지혜를 깨닫는 것이라고 노래한다. 이 지혜가 마음의 본성이고 실재의 본성이며, 모든 외적 인 출현은 이 지혜가 가진 에너지이고 유희일 뿐이다. 원초적 지혜가 스스로 출현했 다는 것은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그저 그 사실을 깨닫기만 하면 된 다. 하지만 원초적 지혜의 깨달음은 깨달을 무언가가 있는 것도 아니고 깨닫는 사람 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 것들을 다 초월하는 것은 원초적 지혜가 이원성을 넘어서 기 때문이다.

이 지혜를 어떻게 하면 확신하고 직접 체험할 수 있을까? 지혜가 마음의 참 본성이므로 자신의 마음을 보는 것에서 시작하라. 마음을 볼 때는 아무것도 보지 않는다. 어떤 형태나 색채도 보지 않고, ‘물건’이라 이름할 만한 그 무엇도 보지 않는다.

셋째 줄에서 밀라레빠는 실재의 참 본성과 그 참 의미를 깨달을 수 있는 확신을 노래하고 있다. 우리가 단어와 언어 표현을 사용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 는 사물을 묘사하기 위해서고, 다른 하나는 그 단어들이 가리키는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서다. 여기사 밀라레빠는 후자의 경우를 노래한다. 그는 실재의 기본 성품을 확 신하고 있고, 네 번째 줄을 노래할 때는 실재에 대한 두려움도 의심도 없다. 그는 또 한 진리와 공성의 실상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게 내가 가진 전부라네’라고 노래할 때 그는 ‘나는 위대한 사람도 아니고 높은 깨달음도 없다. 내가 가진 것은 이 것이 전부다’라고 말하고 있다. 밀라레빠의 겸허한 성품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공성의 가르침을 들으면 흔히 두려울 수 있다. 대부분은 ‘모든 것이 공하니, 나는 텅 빈 우주의 무한한 공백 속에 홀로 있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개인의 무아성에 대해 좀 더 명상해볼 필요가 있다. 다른 모든 것이 ‘무’인데 자신만 은 ‘유’라고 생각한다면 텅 빈 우주에서 혼자 있는 느낌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을 포함한 모든 현상이, ‘유’, ‘무’의 개념을 떠나, 동등하게 공성을 지녔다고 생각한다면 더 이상 외롭지 않을 것이다. 대신 더욱 열리고 여유 있고 느긋하게 될 것이다.

이 시의 맥락에서 볼 때 쟘곤 콩툴 로드로 타예의 ‘마하무드라의 노래(Song of Mahamudra)’에서 인용한 다음 구절을 숙고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무어라 묘사하기 어려운 마음 그 자체에서

윤회와 열반의 마술 같은 다양성이 빛나네

그것이 스스로 해방되었음을 아는 것이 최상의 관점이네.

‘마음 그 자체’, 마음의 참 본성, 원초적 지혜 등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고 불가능하 다. 이렇게 표현 불가능한 마음의 본성에서 윤회하는 모든 존재의 출현과 열반이 나온 다. 존재의 출현은 마음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 출현하는 것은 그 자체의 본성이 없다. 출 현하는 것들은 단지 마음 자체의 에너지, 마음 자체의 광휘, 마음 자체의 빛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출현하는 것들은 마술 쇼와 같다. 윤회와 열반의 출현을 마술적 다양성으로 묘 사하는 것은 그것들이 실재가 아니라, 마술사의 속임수 내지 허깨비와 같다는 뜻이다.

감각적 체험과 일미행(一味行)

밖에는 오감의 즐거움이 빛나고 있고

안에는 집착 없는 지혜가 빛나고 있고

그 사이에는 모든 것이 동일한 맛인 행위가 있네

기쁨과 고통은 다르다 생각지 않네-그것이 나라는 사람의 전부!

이 시구에서 밀라레빠는 일미행(一味行)과 그 수행법을 노래하고 있다. 밖에서 일미를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감각적 체험의 다섯 대상이다. 눈에 보이는 즐겁거나 불쾌한 형상, 즐겁거나 불쾌하다고 생각되는 소리, 내가 즐기거나 역겨운 냄새, 좋아 하거나 싫어하는 맛, 그리고 좋거나 나쁘게 느껴지는 몸 안과 밖의 감각들이다.

일미행은 이 모든 체험이 내재적 실체가 없다는 의미에서 그들을 동등하게 본다. 이들은 모두 동등하게 ‘출현-공성’이다. 밀라레빠가 이를 깨달았기에 안으로는 지혜 안에서, 공성을 깨달은 지혜 안에서 머문다고 노래한다. 그러므로 이 지혜는 감각적 체험이 실재한다고 여겨 거기에 매달리고 집착하지 않는다.

일미행은 우리가 꿈속에서 꿈이라는 것을 알 때 하는 행동과 매우 유사하다. 꿈을 꾸면서 꿈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면 출현하는 감각적 대상이 참으로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몰라서 진짜라고 매달리게 된다. 하지만 꿈이라는 것을 인 지하면 감각적 대상은 단지 연기적으로 일어난 출현에 불과하고, ‘출현-공성’이 분 리 불가능하며, 우리는 매달림과 집착에서 자유롭다는 깨달음의 지혜에 머문다. 그 리될 때 어떤 감각적 대상이 나타나더라도 더 이상 고통을 유발하지 않는다.

감각적 체험이 ‘출현-공성’임을 깨닫고 일미행을 한 결과 밀라레빠는 기쁨과 고통 이 둘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는 행복에도 집착하지 않고 고통도 두려워하지 않는 다. 참 실재에서는 기쁨과 고통이 동일하다는 것을 그는 안다. 밀라레빠는 기쁨과 고 통의 기본 성품을 알기에 보통 사람처럼 기쁨과 고통을 구분하지 않는다. 밀라레빠 는 이를 여러 번 시범으로 보였다. 밀라레빠의 전기를 보면 그가 어떻게 일미행을 실 천했는지 어떻게 기쁨과 고통이 둘이 아님을 깨달았는지 알 수 있다. 시구의 마지막 에서 밀라레빠는, 오만해짐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기쁨과 고통이 다르지 않음을 깨 닫는 것이 ‘내가 가진 전부’라고 노래하고 있다.

번 역 | 로 터스불교영어연구원

 

이 글은 『라이언스 로어(Lion’s Roar)』 2010년 여름호에 실린 티베트 스님 켄포 출트림걈초의 글을 발췌해 번역한 것이다.

켄포 출트림 감초(Khenpo Tsultrim Gyamtso, 1934~ ) 티베트 불교 스님으로 불교 명상의 스승이며 불교학자이다. http://www.ktgrinpoche.org 운영자로 이 웹사이트를 통해 가르침을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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