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행복을 말하다 ③ 무아론과 이타심, 그리고 행복__월호 스님

무아론과 이타심,

그리고 행복

월호 스님

행불선원 선원장

 

‘참 나’는 무아(無我)다. 모든 존재는 변한다. 이 몸과 마음도 끊임없이 변한다. 그러 므로 ‘고정된 실체로서의 나’는 없다. 다만 변화하는 현상으로서의 ‘몸과 마음’이 있을 뿐이다. 이처럼 고정된 실체가 없으므로 어떠한 나도 만들 수 있다. 텅 비었기에 무엇 으로든 채울 수 있는 것이다.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내가 선택한다. 내 작품이다.

착한 행위를 하면 착한 이가 되고, 나쁜 짓을 하면 나쁜 놈이 된다. 결국 고정된 나 가 없기에 어떠한 나도 만들 수 있으며, 바로 이 몸과 마음이 그것이다. 다시 말해서 ‘참 나’는 무아(無我)요, 무아는 대아(大我)이며, 대아는 시아(是我)라고 하는 것이다.

1. ‘참 나’는 무아(無我)다. 무아 체험의 핵심은 대면 관찰이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거울 보듯 영화 보듯 강 건너 불구경하듯 대면해서 관찰한다. 걸어가면 ‘걸어간다’, 머무르면 ‘머무른다’, 앉았으면 ‘앉아 있다’, 누웠으면 ‘누워 있다’고 관찰한다. 화가 나면 ‘화가 난다’, 걱정 근심이 일어나면 ‘걱정 근심이 일어난다’고 관찰한다. 늙어가면 ‘늙어간다’, 병이 들면 ‘병들었다’, 죽어가면 ‘죽어간다’고 관찰한다. 실체는 없고 현상만 있는 아바타로서의 몸과 마음은 끊임없이 변화하여 일어나고 사라지나 관찰 자는 여여부동, 늙고 죽음을 초월한다. 이 관찰자가 바로 성품인 대아(大我)이다.

무아는 대아(大我)다. ‘이것이 나’라는 생각이 쉬면 ‘나 아닌 것’이 없게 된다. 대아 는 크고 밝고 충만하다. 마하는 ‘큼’이요, 반야는 ‘밝음’이요, 바라밀은 ‘충만함’이다. 마하반야바라밀이 ‘나’요, ‘내’가 마하반야바라밀이다. 나는 본래 크고 밝고 충만하 다. 나는 지금 크고 밝고 충만하다. 나는 항상 크고 밝고 충만하다. 달은 항상 보름달 인 것과 마찬가지다. 때때로 초승달이나 반달로 이지러져 보이지만 달이 진정 이지 러진 적은 한 번도 없다. 달은 항상 크고 밝고 둥근 것이다.

이를 몸소 느끼려면 앉으나 서나, 오나 가나, 자나 깨나 ‘마하반야바라밀’을 구념 심행(口念心行)하도록 한다. 입으로 염하고 마음으로 실행하는 것이다. 입으로 ‘마하반 야바라밀’을 염하며 듣는 데 집중하고, 마음을 크고 밝고 충만하게 쓰도록 꾸준히 노 력하는 것이다. 마치 운전자가 전방을 주시하고 차를 몰 때 윈도 브러시가 바로 눈앞 에서 왔다 갔다 해도 큰 영향을 받지 않는 것처럼, 대아인 ‘마하반야바라밀’에 초점 을 맞추다 보면 소아(小我)는 저절로 쉬어진다.

대아는 시아(是我)이다. 바로 이것이 나다. 바로 지금 여기서 다만 이것뿐! 여념이 없는 것이다. 보이는 것을 보기만 하고, 들리는 것을 듣기만 하고, 느끼는 것을 느끼 기만 하고, 아는 것을 알기만 할 뿐! 거기에 ‘나’는 없다. 다만 배고프면 밥 먹고, 졸리 면 잠잔다. 밥 먹을 땐 밥 먹을 뿐! 잠잘 땐 잠잘 뿐! 공부할 땐 공부할 뿐! 일할 땐 일 할 뿐! 노래할 땐 노래할 뿐이다.

결국 바로 지금 여기에서 나의 행위가 나를 창조한다. 구걸하는 마음을 연습하면 거 지나 종이 되고, 베푸는 마음을 연습하면 부자나 주인이 된다. 부처의 행을 하면 부처 가 되고, 보살행을 하면 보살이 된다. 인간적인 행을 하면 인간이 되고, 축생 같은 짓을 하면 축생이 된다고 하는 것이다. 그럼 어떤 마음으로 어떤 행을 해야 할 것인가

2. 『자애경』에서 붓다는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진정한 평정 상태를 언뜻 맛보 고서 더욱더 향상에 이르고자 애쓰는 사람은… 이와 같은 생각을 기를지니, ‘모두가 탈 없이 잘 지내기를! 모든 생명이 행복하기를!’”

여기에서 진정한 평정 상태란 바로 무아를 말한다. ‘나 없음’이야말로 최상의 평정 상태이다. 어떠한 형태로든 일단 ‘내’가 있게 되면 평정 상태는 쉽게 깨진다. ‘내’가 있다는 것은 결국 ‘남’도 있다는 것이며, 이로써 모든 분별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 므로 언뜻 무아를 체험하면 거기에 머무르지 말고 속히 대아로 나아가야 한다.

“살아 있는 생명이면 어떤 것이건 하나 예외 없이, 약한 것이건 강한 것이건, 길건 크건 중간치건 짧건, 미세하건 거칠건, 눈에 보이는 것이건 보이지 않는 것이건, 멀 리 살건 가까이 살건, 태어났건 태어나려 하고 있건, 모든 중생이 행복하기를!”

대아의 입장에서 보면 온 우주가 내 집이요, 모든 생명이 내 가족이다. 심지어 마 구니와 외도 또한 내 가족이요, 나를 비난하거나 괴롭히는 사람이 나의 스승이다. 그 러므로 더욱 지평을 넓혀서 나는 물론이고 내가 사랑하는 그가 탈 없이 건강하고 행 복하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심지어 내가 미워하는 그도 탈 없이 건강하고 행복하기 를 기원하며, 궁극적으로 모든 생명이 탈 없이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해야 한다.

“누구도 자기 동반을, 그것이 어디에 있든 간에 속이거나 헐뜯는 일이 없도록 하 라. 누구도 남들이 잘못되기를 바라지 말라. 원한에서든 증오에서든.

어머니가 자기 아들을, 하나뿐인 자식을 목숨 바쳐 위험에서 구해내듯 만 중생을 향한 일체 포용의 생각을 자기 것으로 지켜내라.

전 우주를 그 높은 곳, 그 깊은 곳, 그 넓은 곳 끝까지 모두를 감싸는 사랑의 마음 을 키워라. 미움도 적의도 넘어선 잔잔한 그 사랑을!”

더 이상 나와 남이 둘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의 불행이 곧 나의 불행이며, 그들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이다. 그러므로 내가 사랑하는 그도 지금 나처럼 크고 밝고 충만 하기를 기원한다. 나아가 내가 미워하는 그도 지금 나처럼 크고 밝고 충만하기를 기 원한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존재가 지금 나처럼 크고 밝고 충만하기를 기원한다. 결국 세상의 모든 존재가 궁극적으로 행복해지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3.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일까? 인간 세상에서 무엇이 진정한 행복인지에 대한 대 토론이 벌어졌다. “통치의 즐거움에 비교할 게 없지요.” “사랑의 행복보다 더한 행복 이 있을까요?” “맛있는 음식을 먹고 미인과 즐기는 것이 행복이지요.” “사랑하는 사 람과 아름다운 곳을 여행하는 것이 가장 행복한 일이 아닐까요?” “온 가족이 화목하 게 지내는 것?” “그저 마음 편안한 것이 최고지요.” 사람들은 저마다 행복에 대해 견 해가 다른 것이다.

이 토론을 듣고 천상 세계인 욕계 천신들 사이에서도 논쟁이 벌어졌고, 마침내 색 계 범천들까지 이 문제를 두고 토론이 벌어졌다. 그때 욕계 천신의 왕인 삭까천왕은 이 문제에 대한 답변은 신들의 영역이 아니라 붓다의 영역임을 밝히고, 수많은 천신 들을 이끌고 붓다 앞에 출현해 요청했다. “많은 천신과 인간들이 최상의 행복을 소망 하며 행복에 관해 생각하니, 행복에 대해 설해주소서.”

붓다는 이에 답해 37가지 행복을 설했으며, 인간은 물론 무수히 많은 신들이 붓다 의 법문을 듣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이 내용을 정리한 것이 바로 『행복경』이다.

“어리석은 이와 사귀지 않고, 현자와 가까이하고, 존경할 만한 이를 존경하는 이것 이 최상의 행복!”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말이 있다. 어리석은 이와 사귀면 점차 어리석어지 고, 현명한 이를 친근하면 저절로 현명해지는 것이다. 또한 존경할 만한 이가 주위에 있다는 것 자체가 또 하나의 행복이다.

“분수에 맞는 장소에 살고, 일찍 공덕을 쌓고, 스스로 바른 서원을 세우는 이것이 최상의 행복!”

남들의 이목을 의식해 지나치게 사치스러운 장소에 살면 삶이 고단해진다. 공덕 을 쌓지 않고 잘되기를 바라기만 하면 이루어질 리가 없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서원을 세워 열심히 살되 애착하지 않는 것이 잘 사는 것이다.

“많이 배우고, 기술을 익히며, 계율을 잘 익히고,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는 이것이 최상의 행복!”

배우고 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하랴? 게다가 자신만의 기술이 뛰어나면 세상에 서 인정받고, 생계가 편해진다. 또한 다섯 가지 계율을 잘 지키기만 해도 건강하고, 부자가 되고, 존경받고, 신뢰받고, 지혜가 밝아진다. 그러면서 잡담이 아닌 법담을 나 누는 것, 자체가 큰 행복이다.

“부모를 섬기고, 처자식을 돌보고, 평화로운 직업을 갖는 이것이 최상의 행복!”

부모는 뿌리요, 자식은 열매다. 줄기인 자신이 튼실하려면 당연히 뿌리와 열매가 튼실해야 할 것이다. 평화로운 직업이란, 살생·투도·사음·망어·음주 행위를 하 지 않는 직업을 말한다.

“보시하고, 청정하게 살고, 친지를 보호하고, 비난받지 않을 일을 하는 이것이 최 상의 행복!”

무언가를 베푸는 것은 스스로 충만함을 연습하고 헐떡이는 마음에서 벗어나는 것 이다. 청정하게 살면 누구에게나 존경받는다. 친지를 보호함은 울타리를 튼튼하게 하는 것이며, 현자들의 충고를 달게 받아 스스로를 돌이켜보아야 한다.

“악을 싫어하여 멀리하고, 술 마시는 것을 절제하고, 가르침에 게으르지 않는 이것 이 최상의 행복!”

악행을 짓지 말고 뭇 선을 받들어 행하라고 하는 것은 모든 붓다의 공통된 가르침 이다. 술을 자주 마시고 가르침에 게으르면 자연히 어리석어진다. 술과 담배조차 벗 어나지 못하는데, 어찌 윤회에서 벗어날 것인가?

“존경하고, 겸손하고, 만족하고, 감사하며, 적당한 때 법문을 듣는 이것이 최상의 행복!”

타인을 존경하고 스스로 겸손하며, 만족할 줄 알아 감지덕지하는 것은 인간사 최상의 덕목이다. 이에 더해 적당한 때 법문까지 듣는다면 일취월장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인내하고, 온화하고, 수행자와 함께하며, 적당한 때에 법담을 나누는 이것이 최상의 행복!”

참을성 없이 화를 내면 온갖 복덕이 다 타버린다. 공덕을 쌓기는 어렵지만 태우기는 쉽다. 수행자를 가까이하고 법담을 나누다 보면 이와 같은 삶의 이치를 잘 알게 된다.

“감각을 단속하고, 청정히 살고, 사성제를 숙고하며, 닙바나를 실현하는 이것이 최 상의 행복!”

인간은 단순히 쾌락을 즐기려고 태어난 것이 아니다. 쾌락도 고행도 아닌 중도적 입장을 견지하고, 진리 중의 진리인 사성제를 숙고하며, 바로 지금 여기에서 완전연 소를 실감나게 체험하고자 태어난 것이다.

“세상사에 부딪혀도 마음 흔들리지 않고, 슬픔에서 벗어나고, 오염원을 제거하고, 두려움에서 해탈하는 이것이 최상의 행복!”

백운은 오락가락하지만 청산은 여여부동이다. 잘나가는 것도 한때요, 못 나가는 것도 한때다. 잘나갈 때 공덕을 짓고, 못 나갈 때 공부를 지어야 한다. 오염원이란 바 로 탐욕, 성냄, 어리석음의 삼독을 말한다. 여기에서 벗어나려면 대면 관찰을 해야 한다. 거울 보듯 영화 보듯, 강 건너 불구경하듯 대면해서 관찰하되, 닉네임을 붙여 하는 것이다. 몸도 아바타, 마음도 아바타에 다름 아니다. 그러므로 ‘아바타’가 탐을 내는구나, ‘아바타’가 화를 내려 하는구나, ‘아바타’가 근심 걱정하고 있구나 라고 관 찰하면서 자신을 탐, 진, 치로부터 분리해 관찰자의 입장에 서는 것이 최상의 행복인 법희 선열이다.

이상의 37가지를 행하는 이는 어느 곳에 있든 실패하지 않고, 어느 곳에 가도 평 안하리니, 이것이 최상의 행복이라고 하는 것이다.

‘참 나’는 무아다. 그래서 ‘이것이 나’라는 생각이 쉬면 ‘나 아닌 것’이 없게 된다. 즉 진정한 대아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몸과 마음이 ‘나’라고 하는 애착은 쉬되, 오히려 타인에 대한 애정을 일으켜야 한다. 우리는 더 이상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나와 남이 함께 행복해지기를 기원하고 연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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