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 세상 읽기|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죽음』 외__정여울

1. 두렵지 않은 죽음을 꿈꾸다

『죽음』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열린책들 刊, 2019

 

“우리가 왜 태어났을까, 우리가 죽고 나면 어떤 일이 펼쳐질까 스스로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면 삶은 무의미할 것입니다. 자아에 대한 질문을 많이 던질수록 우리는 좀 더 지적으로 될 수 있으며, 질문에는 한계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19년 6월 5일 웨스틴 조선 호텔에서 열린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기자간담회 중에서

죽음은 살아 있는 자에겐 두려움으로 다가오지만, 죽은 자에게도 과연 두려움일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죽음은 이미 죽은 자의 눈으로 바라본 죽음의 맨얼굴을 흥미롭고도 경쾌한 필치로 보여준다. 죽음을 전혀 다른 시점에서 바라본다면, 그러니까 ‘이미 일어나버린 나의 죽음’이라는 시점에서 바라본다면 어떨까. 산 자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언제 죽을지, 어떻게 죽을지’ 알 수 없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죽으면 내가 누리고 있는 이번 생의 모든 희로애락이 끝난다는 절망감이 산 자를 죽음 앞에서 두려움에 떨게 한다. 하지만 이미 죽은 자의 입장에서, ‘도대체 나는 어떻게 죽었을까’를 파헤치는 입장에서, 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이기보다는 순수한 탐구의 대상이 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이 새로운 시점에서 바라본 죽음의 스토리를 마치 윈드서핑을 하듯 경쾌하고 스릴 넘치게 직조해낸다.

소설의 주인공 가브리엘 웰즈는 유명한 추리소설 작가인데, 평소와 다름없이 자신이 주로 작업 공간으로 삼는 비스트로를 향해 가다가 갑자기 ‘아무 냄새를 맡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무 냄새가 없는 세계, 그것이 바로 죽음의 첫 번째 얼굴이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을 투명인간 취급하는 상황에서, 가브리엘은 처음엔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거울에도 자신의 모습이 비추지 않고, 창문에서 뛰어내려도 아무 이상이 없자, 비로소 죽음을 인정하기 시작한다. 자신이 만들어내고 있는 추리소설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그는 이제 ‘작가’라기보다는 ‘주인공’의 입장에서 소설 속을 살아내고 있는 느낌이다. 머릿속에는 용의자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가지만, 누구도 아직 확신할 수 없다. 그는 자신의 목소리를 알아듣는 영매 뤼시 필리피니를 만난다. 아직 죽을 나이가 아니라고, 억울하다고 항변하는 그에게 영매는 이렇게 말한다.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웰즈 씨. 당신은 말이죠(…) 일체의 불필요하고 거추장스럽고 유약한 것에서 벗어나 본질적인 것, 즉 당신의 정신만 간직하게 됐다고 생각해봐요.” 그녀의 신기하리만치 유쾌한 해석을 들으며, 독자는 ‘죽음의 긍정적인 측면’도 생각해보게 된다. 죽음의 ‘또 다른 긍정적인 측면’을 이해하게 된 가브리엘은 자신을 공격하는 사람 앞에서 이렇게 유쾌하게 응수할 줄도 알게 된다.

알랭 로트브리예가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의 검을 빼 들자 가브리엘 웰즈가 코웃음을 치며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당신은 내게 고통을 가할 수 없어요. 난 순수한 영혼이거든요.”

“정말 그럴까? 별 볼 일 없는 작가 선생? 잘 생각해보게, 어렸을 때 자네가 제일 아파하고 두려워했던 게 몸의 상처였는지 마음의 상처였는지.”

-베르나르 베르베르, 『죽음』 중에서

자신이 왜 죽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는 아직 하데스로 갈 수 없는 이 떠돌이 영혼 가브리엘은 영매의 도움을 받아 ‘내 죽음의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글쓰기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가브리엘은 죽음 앞에서 ‘이제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다는 사실’을 가장 안타까워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는 죽음 이후에도 저승에서 ‘작가의 삶과 매우 비슷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는 이야기꾼의 재능, 탐구의 시선, 연구 활동을 멈추지 않는다. 자기 죽음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그가 자신의 죽음의 원인을 밝히는 과정은 단지 한 개인의 인생을 되돌아보는 과정을 뛰어넘어, ‘인간에게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밝히는 과정이며, 글쓰기는 어떻게 인간의 삶에 구원으로 다가올 수 있는지를 진지하게 묻는 과정이기도 하다. “글쓰기가 나를 구원한다. 이 순간이야말로 내가 진정한 나로서 존재하는 유일한 순간이다. 오직 이 공간에서만큼은 사건을 뒤따라가는 게 아니라, 내가, 그것들을 창조해낸다.”

 

 

2. 마음의 무늬를 비춰보는 붓다의 말씀

『불교가 필요하다』

 

 

김규칠 지음,

김영사 刊, 2019

 

 

내 마을에서는 우주에서 볼 수 있는 만큼의 땅이 보인다

그래서 내 마을은 다른 어떤 땅보다 그렇게 크다

왜냐하면 나의 크기는 내 키가 아니라

내가 보는 만큼의 크기니까

도시에서는 삶이 더 작다

여기 이 언덕꼭대기에 있는 내 집보다

도시에서는 커다란 집들이 열쇠로 전망을 잠가버린다

지평선을 가리고, 우리 시선을 전부 하늘 저 멀리 밀어버린다,

우리가 볼 수 있는 크기를 앗아가기에, 우리는 작아진다,

우리의 유일한 부는 보는 것이기에, 우리는 가난해진다

– 페르난두 페소아,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민음사, 2018) 중에서

 

세상이 문득 아름다워질 때는 어떤 순간일까. 세상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크고 깊어질 때가 아닐까. 내 마음이 증오와 불안으로 가득 차 있을 때는 아무리 아름다운 장면을 봐도 마음이 움츠러들고, 비뚤어지고, 흐려진다. 내 사랑의 크기에 따라 이 세상의 넓이와 깊이가 조정된다. 우리가 자신의 삶을 더 많이 사랑할수록, 사람들을 더 깊이 사랑할수록, 세상은 더 풍요로운 색채와 깊은 울림으로 우리 앞에 다가온다. 세상을 향한 사랑의 깊이와 크기가 우리 존재의 깊이와 크기를 바꾸는 것이다. 『불교가 필요하다』는 이렇듯 마음의 스펙트럼에 따라 달라지는 세상의 넓이와 깊이에 대해 수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또 하나의 힘은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자 하는 마음’이다. 저자는 『유마힐경』 중의 한 대목을 들려준다.

산더미처럼 커다란 이기심과 자기중심의 고집으로 자기 자신에만 집착하던 사람도 도를 찾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나게 되면, 마침내는 깨달음에 도달하게 된다. (…) 명예욕과 물욕으로 다듬어 세운 칼날의 산 위에서도, 또한 증오가 이글거리는 거대한 불구덩이 위에서도, 깨달음의 신선한 바람은 불어오고 있는 것이다.

– 『유마힐경』 중에서

우리가 깨달음에 대한 의지만 있다면, 종교를 넘어, 인종과 성별과 계급을 넘어, 깨달음의 기회는 우리 앞에 널려 있다. 붓다의 가르침은 우리를 가로지르는 모든 경계로부터 자유로울 것을 제안한다. 삶을 풍요로운 색채와 향기로 물들게 하는 또 하나의 힘은 바로 ‘보이지 않는 사랑’을 실천하는 마음이다. “우리 사회에는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관계를 형성하고 성숙시켜 공동체를 풍부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보이지 않는 사랑은 아래로부터 꿈틀거리는 변화의 초석이며, 공동체의 몸과 살과 피를 만드는 자기 생산의 움직임이다. 이름 없고, 얼굴 없고, 언어 없이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살아가는 존재들,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사랑 속에서) 살아가면서 공동체는 다양해지고 풍부해지며 충만할 수 있다.”(신승철, 『동식물계』, 2015.) 누군가 보고 있지 않아도 묵묵히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과 동물들과 식물들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미 붓다의 가르침을 온몸으로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자기 안에서 넘쳐 흐르는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는 사람들의 눈 속에는 세상을 향한 깊은 깨달음의 향기가 넘실거린다.

인간의 대지에서 들려오는 작가 생텍쥐페리의 목소리는 바로 이 세상을 향한 깊은 깨달음과 연대감이 담겨 있다. “우리는 같은 지구를 타고 같은 배의 선원으로 연대의 책임이 있는 자들이다. 우리가 구원되기 위해서는 우리를 서로서로 연결하는 어떤 일, 어떤 목적을 자각하도록 서로 도와주면 되는 것이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붓다의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는 길로서, 저자는 자발적이고 능동적이며 자유로운 삶을 제안한다. 상황이나 조건에 휘둘리지 않는 삶, 어떤 외부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기쁨을 자유롭게 창조할 수 있는 힘, 스피노자의 어법으로 말하면 ‘신적인 지의 사랑’의 차원, 나아가 ‘스스로 기쁨을 창조하는 역량을 최고도로 발휘하는 가장 능동적인 인간’이 되는 것. 이 책을 읽다 보면 스피노자, 니체, 생텍쥐페리, 화이트헤드, 들뢰즈, 페르난두 페소아 등 저자가 사랑하는 수많은 작가들과 철학자들이 ‘붓다가 전해주는 깨달음의 별자리’ 속에 함께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정여울 작가. 저서로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월간정여울-똑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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