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본 아름다운 우리 절|안성 서운산 석남사__우태하·윤제학

안성 사람들의

‘우리 절’

 

 

 

‘산이 높아야 골이 깊다’고들 합니다. 호소력의 높이로 치자면 백두산쯤 되지만, 보통의 사람살이와는 별 관계가 없는 말입니다.

안성 서운산과 석남사. 그리 높은 산도 그리 큰 절도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을 안아주는 품은 그윽합니다. 절대높이로 서운산(瑞雲山, 547)은 높은 축에 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발치에서는 태산입니다. 안성평야 일대에서는 가장 높습니다. 안성, 평택 일대와 아산만을 넉넉히 품에 둡니다. 골짜기는 성마르지 않고 사철 물이 넉넉해 절이 깃들기에 안성맞춤입니다. 석남사는 이 산의 북동쪽 골짜기에 깃든 천 년 고찰입니다. 남서쪽에는 남사당의 근거지가 되었던 청룡사가 자리해 있습니다. 청룡사가 그랬듯이 석남사 또한 ‘마을 절’ 같은 산사입니다.

석남사의 초창은 신라 문무왕 20년(680) 담화 덕화 스님에 의해서였다 합니다. 고려 광종 4년(935) 혜거 국가가 중창했고, 조선 태종 7년(1407)에는 나라의 복을 기원하는 ‘자복 사찰’로 지정되어 이 지역의 으뜸 사찰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부분 절이 그랬듯이 임진왜란의 병화를 피하지 못했습니다. 잿더미가 된 사찰은 조선 영조 1년(1725) 혜원 선사가 대웅전, 영산전 등을 중창함으로써 면모를 새로이 했습니다.

석남사의 역사 가운데 가장 크게 보아야 할 것은 해방 직후 1948년의 대웅전 보수가 아닐까 합니다. 83명의 안성읍 노인 계원이 힘을 모아 쓰러져가는 대웅전을 반듯이 세웠다는 사실입니다. 해방 직후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곤궁의 상황에서 이루어진 일입니다. 지역민들과 절이 웬만큼 가깝지 않고서는 가능하지 않았을 일이라고 봐야겠지요. 안성 사람들에게 석남사는 ‘우리 절’이었습니다. 공동체의 구심점이었습니다. 산과 절이 우리 삶에 어떤 의미인지를, 어떤 의미여야 하는지를 알게 하는 관계입니다.

석남사는 대웅전으로 오르는 계단이 인상적입니다. 금광루 앞에서 보면 날렵한 상승감으로 시선을 대웅전으로 이끕니다. 막돌을 곱게 다듬어 쌓은 계단입니다. 절로 걸음을 옮겨놓게 하는 부처님 손바닥입니다. 최근에는 TV 드라마 ‘도깨비’ 촬영지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지요.

석남사는 큰 절이 아닙니다. 대웅전과 영산전(보물 제823호) 참배만으로는 아쉬울 수도 있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면 마땅히 산을 올라봐야지요. 절 마당 왼쪽에서 등산로를 따라 10여 분쯤 오르면 바위 벼랑에 부처님이 반가이 맞이해주십니다. 통일신라 말기에서 고려 초기쯤에 조성한 것으로 보이는 마애불(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09호)입니다.

절의 깊이는 산의 높이와 비례하지 않습니다. 절을 찾는 사람들의 살림살이가 절의 깊이를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사진│우태하(항공사진가), 글│윤제학(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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