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우주(宇宙)란 무엇일까? – ② 물질의 기원, 우주의 기원__김희준

물질의 기원,

우주의 기원

김희준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과학에서 ‘기원’이 처음 논의된 것은 다윈의 ‘종의 기원’으로, 생물학적 문제를 다 루었다. 그 후로 최근 100년간 과학은 물질 자체, 우주 자체의 기원을 다루게 되었다. 오늘은 그 100년 사이의 일을 소개하려 한다.

과학의 역사는 분류의 역사라 할 수 있다. 17세기까지 사람들은 지상의 세계가 물, 불, 흙, 공기로 되어 있으며 천상은 에테르로 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힘을 놓고 봐도 지상 세계는 중력 같은 힘이 작용하지만 천상은 다르리라 여겼다. 18세기에 들어와 린네는 동식물의 분류 체계를 만들었고(이명법), 19세기에는 멘델레예프가 화학 원소를 분류하는 주기율을 만들었다. 그리고 20세기에는 별과 은하를 분류하고, 물질을 구성 하는 기본 입자를 발견하면서 과학은 우주의 기원에 대한 구체적인 답을 얻었다.

기원을 추적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10년의 10배씩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10년 전쯤에 월드컵이 있었고, 100년 전에는 1차 세계대전, 1,000년 전에는 중세, 1만 년 전에는 농경의 시작, 10만 년 전에는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했다. 100만 년 전에는 호모 에렉투스가 불을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그때에도 공기 중에 산소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약 1,000만 년 전에 인간과 침팬지의 공통 조상이 갈라졌고, 1억 년 전 지 구상에는 공룡이 주역이었다. 10억 년 전에는 모든 생명체가 바닷속에 있었다. 생명 의 출발이 바다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00억 년 전은 138억 년 전에 우주가 태어난 빅뱅의 순간에 접근한다. 지구는 지금으로부터 46억 년 전에 태어났는데, 46억이면 138억의 1/3에 해당한다. 최초로부터 3, 4억 년 사이에 처음으로 별이 태어났다고 추 정한다. 그전에는 수억 년의 암흑기가 있었던 것이다.

옛날 사람들은 우주가 유한한지 무한한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 시작이 있 었다는 건 시간적으로 유한함을 말한다. 시간적으로 유한한데 공간적으로는 무한할 수도 있을까? 불가능하다. 한 점에서 우주가 시작되었고 그 점이 아무리 팽창한다 한들, 유한한 시간 속에서 팽창한다면 그 공간도 유한할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를 대하는 고대의 관점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그리스철학에서 출발한 헬레니즘 전통이다. 철학은 합리성을 중시하며, 대표 인물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있다. 아리 스토텔레스는 우주를 무한하다고 보았다. 또 하나는 유대-기독교적 전통인데, 헬레 니즘 전통과는 대립되며 종교적이고 초월적이다(성서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고 말한다). 이런 두 가지 관점의 대립 상황이 크게 바뀐 것은 지난 100년 사이의 일이 다. 과학자만 놓고 보면 100년 전에는 과학자 가운데 3분의 1이 우주에 시작이 있었 다고 생각했지만, 오늘날에는 과학자 가운데 3분의 2가 시작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빅뱅을 발견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며, 큰 변화라 할 수 있다.

어떻게 빅뱅이 발견되었는지 상세히 알아보자. 칸트는 우주를 이해할 때 중요한 개념인 ‘섬 우주’를 생각해낸 사람이다. 섬 우주란 우주가 넓은 바다 여기저기에 섬 들이 있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이런 섬이 여럿 있지만 서로 멀리 떨어져 있기 에 한 섬에서만 살면 다른 섬의 존재를 알 수 없다. 당시만 해도 우리가 속해 있는 은 하수가 우주의 전부인 줄 알았다. 그런데 섬 우주를 계기로 은하가 여럿일 수도 있겠 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이 가능했을까? 성운 때문이다. 빛을 내긴 하는데 보통 별과는 달리 흐리고 퍼져 보이는 천체를 보면서 일부 성운은 우리 은하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 것이다. 허블 우주 망원경으로 찍은 게성운, 오리온성 운, 구상성단, 행성상성운 등은 우리 은하 내의 성운이지만, 소용돌이 성운 같은 천 체는 알고 보면 모두 외계 은하들이다. 이런 것들이 우주에 약 1,000억 개 있다. 하지 만 100년 전까지는 이런 사실을 전혀 몰랐다.

우리 은하는 나선형이다. 그 은하 중심에 블랙홀이 있을 것이고 태양계는 그 중심 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광년은 빛의 속도로 1년을 가는 거리를 말하는데, 우리 은하 의 지름이 10만 광년이니 얼마나 광대한가. 그 안에 태양 같은 별이 1,000억 개 있다. 그렇다면 우주의 1,000억 개 은하에는 모두 1022~1023개, 즉 아보가드로수 정도의 별 이 있는 셈이다. 물 한 모금에 물 분자가 우주 전체의 별의 수만큼 있다고 하니, 거대 한 세계와 미시한 세계가 공존하고 있는 셈이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하늘을 가로 지르는 뿌연 띠 같은 빛이 보이는데, 바로 우리가 속한 은하수다. 우리가 그 중심에 있다면 어느 방향을 봐도 똑같아야 한다. 우리 태양계는 우리 은하의 외곽 지대에 있 다. 그전에 이미 지구가 태양계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이 알려졌는데, 태양이 은하의 중심인 것도 아니다.

우주에서 가까운 천체의 거리를 재는 방법은 연주시차, 즉 지구가 태양 주위를 공 전하면서 만들어내는 시차를 이용하는 것이다. 어떤 별이 멀리 있는 별들을 배경으 로 6개월 사이에 만드는 각도를 재고, 지구와 태양 간의 거리를 알고 있다면 삼각함 수를 이용해 거리를 알 수 있다. 이 방법으로 베셀이 1838년에 처음으로 별의 거리 를 측정했다. 하지만 이 방법으로 알 수 있는 천체의 거리는 300광년 정도이고, 그 이상 멀어지면 각도를 측정하기 힘들다. 당시에도 별의 절대 밝기를 겉보기 밝기와 비교해서 거리를 계산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누구나 했다. 그런데 별의 절대 밝기 를 알 길이 없었다. 그러다가 1908년에 헨리에타 레비트(Henrietta Leavitt)는 새로운 방 법을 발견했다. 마젤란성운의 우리 은하로부터 약 20만 광년 떨어진 위성 은하인데, 그 안에서 1,777개의 변광성을 찾은 것이다. 그중에서 세페이드 변광성은 1일 내지 100일 주기를 가지고 밝기가 주기적으로 변하는 별인데, 레비트는 세페이드 변광성 의 절대 밝기는 주기에 비례하는 것을 발견했다. 따라서 세페이드 변광성의 주기와 겉보기 밝기를 측정하면 그 변광성을 포함하는 천체의 거리를 측정할 수 있다. 그러 나 당시에는 이 발견이 빅뱅우주론으로 이어질지는 아무도 몰랐다.

베스토 슬라이퍼(Vesto Slipher)는 천체의 운동에 관해 중요한 기여를 했다. 그는 안 드로메다성운의 스펙트럼을 분석하다가 선스펙트럼의 편이 현상을 관찰하게 된다. 은하가 관측자 쪽으로 이동할 때는 파동의 파장이 짧아지고 진동수는 높아지며 스 펙트럼의 선들은 청색 쪽으로 이동한다. 즉 청색편이는 가까워지는 은하의 스펙트럼 에서, 적색편이는 멀어지는 은하의 스펙트럼에서 나타난다. 따라서 스펙트럼선이 어 느 쪽으로 이동했는지 보면 그 빛을 내는 천체가 정지했는지 접근하는지 멀어지는 지를 알 수 있다. 슬라이퍼는 몇몇 은하를 제외한 모든 은하에서 적색편이가 나타나 는 것을 발견했으며, 이 발견으로 천체의 운동을 관측할 수 있게 되었다.

세 번째로 중요한 인물이 에드윈 허블이다. 1929년 허블은 앞선 두 사람의 연구 결과를 받아들여, 멀리 있는 은하들은 우리 은하로부터 모두 멀어지고 있으며(가까운 은하들은 중력 작용으로 서로 가까워짐) 멀리 있을수록 더 빨리 멀어진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리고 은하들이 멀어지는 속도는 은하들까지의 거리에 비례한다는 허블 법칙을 발 표하게 된다. 이때부터 과학자들은 우주가 팽창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우주가 팽창한다면 과거에는 어땠을까? 허블 법칙이 맞는다면 우주의 출발점이 있어야 한다. 처음에는 우주의 크기가 관심사였다면 허블의 법칙이 나온 후로는 우 주의 기원이 초점이 되었다. 은하의 거리와 멀어지는 속도를 알면 우주의 나이를 알 수 있고(속도/거리=시간), 이로써 138억 년이라는 우주의 나이를 계산할 수 있게 되었으 며, 우주가 유한하다는 것이 확실시되었다. 우리가 볼 때 모든 은하가 멀어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우주의 중심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점들이 그려진 풍선을 불 면 어느 점에서 봐도 모든 점들이 멀어지고, 멀리 있는 점들은 더 빨리 멀어지는 것 을 알 수 있다. 우주는 유한하고 우주에는 중심이랄 것이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빅뱅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1940년대에 물리학자인 조지 가모프(George Gamow)는 우주의 팽창과 출발점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그는 우주 의 시초에 모든 에너지가 한 점에 모여 있었을 테니 밀도나 온도가 엄청 높았을 것 이고 그 속에서 새로운 물질들이 생성되었으리라 상상했다. 그러나 천문학자인 호일 (Fred Hoyle)은 그런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고 우주는 항상 일정하다는 정상우주론을 주장했다. 두 사람의 논쟁 속에서 1949년 4월에 호일이 가모프를 향해 “팽창우주론 이 맞는다면 태초에 ‘빅뱅(Big Bang)’이라도 있었단 말인가?”라고 조롱하듯 말했는데, 여기서 ‘빅뱅’이란 말이 탄생한다.

가설이 확실해지려면 어떤 현상이 나올 거라는 예상이 있어야 한다. 그 예상이 확 인되면 과학적 사실로 자리 잡을 수 있다. 빅뱅의 경우엔 그 예상에 해당하는 것이 우주배경복사였다. 빅뱅이 맞는다면 초기 우주는 온도와 밀도가 높아야 한다. 가모 프는 그런 입장에서 초기의 에너지가 현재 우주의 배경에 남아 있을 것이라고 예상 했다(1948년). 그러나 당시 기술로는 그것을 입증해낼 수 없었다. 그러다 1965년 벨연 구소의 펜지어스(Arno Penzias)와 윌슨(Robert Wilson)이 최초로 우주배경복사를 관측했 고 1978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이로써 빅뱅은 부정하기 힘든 사실로 자 리 잡았으며 빅뱅우주론이 대중화되었다. 그 후 1989년 우주배경복사 탐사선인 인 공위성 코비(COBE)가 발사되었고, 우주배경복사의 스펙트럼이 절대온도 3℃에 해당 하는 흑체복사 스펙트럼을 나타내는 것을 밝혀냈다. 이 공로로 존 매더(John Mather)와 조지 스무트(George Smoot)는 2006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이제 더 이상 누구 도 빅뱅을 부정할 길이 없게 되었다.

별빛의 스펙트럼 사진을 보면 빨주노초파남보처럼 연속적으로 나타나는 연속스 펙트럼을 배경으로 특수한 파장 부분이 어둡게 나타나는데 이를 흡수 선스펙트럼이 라 한다. 이것으로 해당 천체에 어떤 화학 원소가 포함되어 있는지 알 수 있다. 우리 와 가까운 은하인 안드로메다은하를 선스펙트럼으로 조사해보면 우리 지구에 있는 원소들이 그 별에도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아주 멀리 있는 은하는 그 양상이 많이 다르다. 철, 마그네슘과 같은 무거운 원소들은 아예 관찰되지 않으며, 적색편이가 아주 큰 은하에서는 초기 우주에서 만들어진 수소와 헬륨만 발견된다. 우리 몸에 있 는 수소는 빅뱅 때 만들어졌으며 산소나 탄소, 철 등은 그 후 생성된 것임을 알 수 있 다. 별은 태어나 일생을 거치면서 그런 원소들을 만들어내고 나중에는 대폭발로 생 을 마감한다. 대폭발로 그런 원소들을 우주 공간으로 쏟아내고 몇 억 년에 걸쳐 그 원소들이 다시 2, 3세대 별의 재료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별이 윤회를 하듯 인간도 마찬가지다. 죽을 때 몸에 있던 원소들이 흩어진다. 지금 내 몸에도 100년 전에 살았 던 사람의 원자 몇 개가 들어 있다. 로마의 시저가 죽을 때 그 마지막 숨에 들어 있던 공기 분자가 2,000년 동안 퍼져, 적어도 그중 한두 개가 오늘날 내가 들이마시는 숨 에 들어 있다니, 만물은 돌고 도는 것이라 할 만하다.

과학의 두 가지 핵심어는 우주와 생명이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도생일(道生一), 일생이(一生二), 이생삼(二生三), 삼생만물(三生萬物)”이라 하여 삼(三)이 되면 만물이 된다 고 했다. 과학적으로 해석하면 일은 에너지라 할 수 있다. 에너지는 빛에너지와 물질 에너지의 두 가지 형태로 바뀐다. 물질은 질량을 지니며 질량이 있으면 에너지가 있 다(E=mc2). 질량이 없는 에너지가 빛에너지다. 이것들이 상호작용하며 우주와 생명을 만들어낸다. 1960년대 빅뱅우주론이 자리를 잡은 시기에 물질을 구성하는 입자에 대한 표준 모형이 나왔다. 그중에서 업쿼크, 다운쿼크는 우리 주위의 물질을 만드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이들이 조합해서 양성자와 중성자를 만든다. 전자는 렙톤에 속 한다. 이 세 가지만 모이면 여러 원소를 만들어내 만물이 된다.

천문학의 핵심어가 빅뱅이고 물리학은 원자, 생물학은 진화, 지구과학은 판구조론 이라면, 화학의 핵심은 주기율이다. 피아노 건반이 88개 있듯이 지상의 화학 원소는 약 90종류가 있다. 더 놀라운 것은 둘 다 옥타브 시스템을 지닌다는 점이다. 19세기 말부터 비활성 기체라는 것이 발견되어 그전처럼 옥타브에 비유하기 곤란해지긴 했 지만, 비활성 기체라는 건 화학반응을 하지 않는 것으로 음악에서의 쉼표 정도로 여 길 수 있다.

원소들은 옥텟 규칙에 따라서 수소, 탄소, 산소 등이 서로 반응해 생명이 만들어진 다. 물은 수소와 산소로 구성되며, 여기에 탄소가 들어가면 포도주가 된다. 포도주와 아세트산은 원소 면에서는 똑같이 수소, 산소, 탄소 세 가지로 구성된다. 여기에 질 소가 더해지면 아미노산이 만들어진다. 이 모든 것이 규칙에 따른 것이지 제멋대로 결합하지 않는다. 음악에서 이를 하모니라는 뜻에서 화합(和合)이라고 하듯이, 화학 에서는 변화라는 뜻에서 화합(化合)이라고 한다.

창세기에는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말이 있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해야 할 두 가지 일을 말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생육은 태어나서 일생을 살아가는 것으로, 그에 필요 한 핵심 물질은 단백질이다. 번성은 대물림을 말하며 여기서 핵심은 DNA다. 우리 자 신도 오랫동안 대물림해서 여기까지 온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우주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것은 우리가 우주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러분과 아인슈타인 중 누가 더 우주를 이해하는 것 같은가? 여 러분이다. 아인슈타인은 1955년에 죽을 때까지 우주배경복사라는 말을 들어보지도 못했다. 우리가 지능을 가진 존재이며, 특히 최근 100년 사이 과학이 극적인 발전을 이룬 덕이다.

우주의 역사를 드라마로 보자면, 빅뱅으로 출발해 초기 우주의 급격한 입자들의 진 화, 별의 진화, 화학적 진화, 생물학적 진화, 인류의 진화가 전개되었다. 이 5단계 진화 의 중심에 화학적 진화가 있다. 무생물이었던 단순한 분자로부터 생명체의 필수 요소 인 아미노산 같은 것이 생긴 일은 엄청난 진화적 사건이다. 이 5단계의 진화는 그야말 로 놀라운 드라마다. 기승전결로 보자면 기는 빅뱅, 승은 빅뱅을 계승해 입자들이 태 어나는 것, 전은 획기적인 전환(무생물에서 생물로), 결은 우리 자신이라 할 수 있다.

이 글은 본지에서 개최하는 대중 인문학 강좌인 <화요 열린 강좌> 중 지난 4월 16일 ‘물질의 기원, 우주의 기원’을 주제 로 열린 김희준 교수 초청 4월 강좌의 주요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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