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이 아름답다|살림 짓는 그 자리에 연꽃이__변택주

살림 짓는 그 자리에 연꽃이

변택주

경영은 살림 연구가

 

요즘 사람들은 끼니 걱정에서 웬만큼 벗어났습니다. 보릿고개가 뭔지 모릅니다.

그래도 먹는 일은 늘 조심스럽습니다. 먹을거리가 마을을 벗어나 세계를 두루 오가다 보니

어떤 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지은 것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먼 데서 오는 먹을거리가

많다 보니 에너지를 많이 쓰는 바람에 환경도 적잖이 더럽히고 있습니다. 또 세계를 둘러보면

여전히 굶주리는 사람이 적지 않는데 멀쩡하니 버려지는 음식물이 어마어마합니다.

 

열매에 갑옷을 더 입히다

지구에 있는 모든 목숨붙이는 살갗이나 껍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과에서 나무딸기에 이르기까지 껍질에 둘러싸인 열매는 껍질을 벗겼을 때보다 다섯 배나 더 오래갑니다. 그러나 한여름 기온이 30℃를 넘나들면 싱그러워야 할 과일과 채소들은 더운 날씨에 시달리다 보면 껍질 갑옷이 멋쩍다 싶을 만큼 쉬이 시들게 마련으로 장바구니 물가에 빨간불이 켜집니다. 가뭄이 들거나 큰물이 난 뒤에는 출하량이 뚝 떨어져 값이 더 치솟습니다. 또 유통기한이 지난 과채류들은 버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미국에서 유통 업체들이 버리는 음식 쓰레기만 한 해에 180억 달러(약 20조)에 이릅니다.

그런데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어필 사이언스(Apeel Sciences)’가 과채류 쓰레기로 골머리를 앓는 식료품 유통 업계에 생기를 불어넣었습니다. ‘어필(Apeel)’이란 식용 코팅제(Edible Coating)를 개발해 내놨기 때문입니다. 식용 코팅제 어필은 채소나 과일 껍질 또는 씨앗과 같은 유기 부산물에서 지방질(Lipid)을 뽑아내 가루로 만들고 이 가루를 다시 겉에 입히기 좋도록 액체로 만들었습니다. 사람이 먹어도 조금도 해롭지 않은 식용 코팅제 어필을 덧입힌 열매채소와 과일은 갑옷을 한 겹 더 입은 것과 같아 오래도록 물기를 머금어 촉촉하고 썩는 속도를 늦춰 싱그럽습니다. 이에 머무르지 않고 과채류가 박테리아나 곰팡이, 곤충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에서도 벗어나도록 해줍니다. 박테리아나 곰팡이, 해충은 모두 농산물 겉에 있는 특정 분자를 인식해 먹이를 가려냅니다. 그런데 어필은 아주 얇은 분자 층을 겉껍질에 덧입혀 박테리아나 곰팡이, 해충의 눈을 가립니다.

어필 사이언스는 식용 코팅제 실험 품목으로 가장 먼저 요즘 한창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아보카도(avocado)’를 꺼내들었습니다. 영양분이 넉넉한 아보카도는 여러 가지 요리 재료로 쓰이며 세계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습니다. 그러나 보관하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아 적잖이 골치를 앓아왔습니다. 어필 사이언스 경영자 ‘제임스 로저스(James Rogers)’는 실험 대상으로 아보카도를 고른 까닭을 “아보카도는 익기 전에 껍질을 벗기면 딱딱해서 먹기 힘들고, 너무 익은 뒤에 껍질을 벗기면 빛깔이 변하고 식감도 좋지 않아 먹기 알맞은 때를 가리기가 매우 어렵다”고 짚었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벌거숭이 아보카도에 견줘 식용 코팅제를 입힌 아보카도는 놀랍게도 유통기한이 배로 늘어났습니다. 아보카도뿐만 아니라 바나나, 딸기, 완두콩 따위 열매채소나 과일들은 유통기한이 배에서 크게는 세 배까지 늘어났습니다. 이렇게 되면 과채류를 오랫동안 싱그럽게 관리할 수 있어 음식물 쓰레기를 퍽 많이 줄일 수 있습니다. 또한 방부제 없이도 품질을 지킬 수 있고, 냉장하지 않고도 쉽게 옮길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슈퍼마켓과 채소밭이 하나로 ‘알버트 하인’

네덜란드에 있는 슈퍼마켓 체인 하나가 ‘싱그러운 채소 끝판 왕’을 내세우며 나서서 눈길을 모으고 있습니다. 가게 안 진열대에 채소밭을 들여놨기 때문입니다. 흙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채소이다 보니 싱그럽기가 뿌리째 뽑혀 진열대에 누운 채소에 견줄 수 없습니다. 슈퍼마켓 ‘알버트 하인(Albert Heijn)’에 가면 ‘허브 가든’이란 채소밭이 있습니다. 알버트 하인은 네덜란드 디자인 기업 ‘스튜디오 엠에프디(Studio mfd)’와 어깨동무해서 허브 가든을 꾸몄습니다. 손님들은 마치 농부가 채소를 거둬들이듯이 먹고 싶은 나물이나 채소를 직접 따서 바구니에 담을 수 있습니다. 채소를 딴 손님은 손에 묻은 흙을 싱크대에서 씻고 계산대에서 무게를 달아 값을 치릅니다.

직접 딴 채소를 바구니에 담은 손님들은 텃밭을 가꿔 거둔 것 같은 재미가 쏠쏠합니다. 재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들어서 버려지는 채소도 한결 줄일 수 있으니 얼마나 보람찰까요.

보다 깊이 들여다보는 사람이라면 더 큰 즐거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채소를 딴 사람이라면 ‘푸드 마일리지(Food Mileage)’를 줄였다는 뿌듯함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푸드 마일리지는 식품이 만들어진 곳에서 밥상에 오르기까지 움직인 거리를 일컫는 말입니다. 1994년 영국 환경운동가 ‘팀 랭(Tim Lang)’이 내놓은 푸드 마일리지는 지수가 높을수록 먼 곳에서 온 식품이라는 뜻입니다. 높은 푸드 마일리지는 싱그러움을 살리려고 살충제나 방부제를 더 많이 쓸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푸드 마일리지가 높은 음식물을 먹는다는 것은 몸을 살리려고 먹은 식품이 도리어 몸을 죽이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먼 거리를 운송해야 해 이산화탄소를 많이 쏟아내 환경에 부담을 크게 지운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다른 표현으로 탄소 발자국이라고도 합니다.

우리나라 푸드 마일리지는 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2010년 우리나라 국민 한 사람당 푸드 마일리지는 7,085톤킬로미터로 2001년(5,172톤킬로미터)보다 37%나 늘었답니다. 조사 대상 나라인 한국, 일본, 영국, 프랑스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로, 739톤킬로미터를 기록한 프랑스에 견주면 열 배에 가깝습니다. 더욱이 일본, 영국, 프랑스는 모두 2003년보다 푸드 마일리지가 줄어들었는데 우리나라만 거듭 늘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2004년 처음 한·칠레 FTA(자유무역협정)를 발효했습니다. 그 뒤로 15년동안 52개 나라와 FTA를 발효했으며 농식품 수입액은 2.4배나 늘었습니다. 특히 축산물과 과일·채소류 수입액이 큰 폭으로 늘어 2004년 146억 달러이던 농식품 수입액은 지난해 353억 원으로 수입액이 207억 달러가 늘었습니다. 신선 농식품 수입액만 142억 달러나 늘어났습니다. 우리 밥상이 수입 식품들로 둘러싸이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알버트 하인에 있는 허브 가든과 같은 채소밭이 슈퍼마켓을 비롯해 편의점, 밥집에 들어앉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기분 좋은 상상을 해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앓고 있는 환자 몸을 아우를 수 있도록 병원 안에 저런 채소밭을 들여놓아 갓 딴 채소나 나물로 암이나 당뇨로 고생하는 환자들에게 걸맞은 밥상을 차려준다면 좋지 않을까요?

 

 

버림받은 식빵, 수제 맥주로 되살아나다

영국은 세계에서 양조장이 가장 많은 나라입니다. 최근 영국에서 새로 생기는 기업 가운데 25%가 ‘착한 사업’을 하려고 한답니다. 자연스럽게 양조 업자들도 사회를 아우르겠다는 꿈을 하나둘 품고 있습니다. 맥주를 빚는 ‘토스트 에일(Toast Ale)’도 그런 양조장 가운데 하나입니다. 토스트 에일에서 일하는 ‘줄리 프레블(Julie Prebble)’은 토스트 에일을 “버려질 수밖에 없는 싱싱한 빵으로 좋은 맥주를 만드는 회사”라고 힘주어 말합니다. 무슨 말일까요? 빵이 주식인 영국에서 식빵을 구우면 상품으로 팔릴 샌드위치를 만들고 양쪽 가장자리 남은 빵 두 쪽은 버려지고 맙니다. 이렇게 버려지는 식빵이 영국에서만 하루에 2,400만 장이나 된답니다. 그런데 이 회사를 세운 ‘트리스트람 스튜어트(Tristram Stuart)’가 엉뚱한 상상을 합니다. ‘이렇게 버려질 수밖에 없는 빵 부스러기로 맥주를 빚어 팔면 어떨까?’ 하고요.

스튜어트는 여행을 하다가 우연히 빵으로 맥주를 만드는 전통 ‘브뤼셀 비어 프로젝트(the Brussels Beer Project)’와 맞닥뜨립니다. 4,000년 전 메소포타미아 바빌론에서 쓰던 전통 양조 방식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자선단체 ‘피드백(Feedback)’에서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 캠페인을 벌이던 스튜어트는 이걸 보자마자 무릎을 칩니다. “바로 이거야!”

처음에는 마을 제빵사로부터 가장자리 빵을 거둬들여 썼으나 이제는 대형 슈퍼마켓에 샌드위치를 납품하는 생산 업자들과 거래하고 있습니다. 말려서 잘게 부순 빵 한 조각과 맥아와 물, 홉과 이스트 따위를 섞어 끓인 뒤 일주일쯤 삭히고 나면 맛있는 맥주가 빚어집니다. 영국에서 하루에 버려지는 식빵 끄트머리 2,400만 장을 버리지 않고 다 모을 수만 있다면 하루에 식빵 맥주 2,400만 병을 빚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맥주를 빚는 방법은 홈페이지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누구라도 이걸 보고 맥주를 빚어 즐길 수 있도록 한 겁니다. 공동 창업자 롭 윌슨은 “언젠가 이 땅에서 버려지는 빵들이 깡그리 사라져서 우리가 문 닫는 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린다”며 웃습니다. 이를 벤치마킹해서 식빵 맥주 빚기에 영국 대형 유통 체인인 ‘막스 앤드 스펜서’와 미국 기업도 뛰어들었습니다.

세상은, 거북한 것을 거북한 대로 가만히 두고 보지 못하는 사람이 바꿉니다. 살려야 한다는 마음 바탕에서 일어난 사랑 어린 손길이 바꿉니다. 우리 몸 가운데 있는 ‘배’는 ‘배다(목숨을)’에서 나온 말씀입니다. 어질 인(仁)도 어머니가 아이를 배는 그림에서 나왔답니다. 그러니까 ‘배짱’이나 ‘뱃심’은 어진 밑절미를 이루는 힘을 일컫는 말씀입니다. 어진 생각이 일어났을 때 뜻에 머물지 않고 꿋꿋이 살림 지어나갈 수 있는 힘이 바로 뱃심이며, 두둑한 배짱입니다. 작든 크든 결을 바꾸려고 배짱 있게 한 걸음 내디디며 살림 짓는 그 자리에 흙탕에도 물들지 않는 연꽃이 피어오르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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