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 세상 읽기|리처드 프럼의 『아름다움의 진화』 외__정여울

1. 아름다움의 진화, 세상을 바꾸다

『아름다움의 진화』

리처드 프럼 지음,

양병찬 옮김,

동아시아 刊, 2019

 

 

인간이 아닌 동물에게도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과 추함에 대한 감각이 있을까. 인간은 동물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에 대한 우월성을 주장하기 위해 수많은 ‘인간 고유의 권능’을 증명하는 실험을 해왔지만, ‘인간에게만 고유한 것’을 찾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동물들도 자식을 잃은 슬픔에 눈물을 흘리고, 마음에 들지 않는 파트너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필사적으로 도망을 치고, 허허실실 웃기도 하고, 영차영차 집을 짓고, 서로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선물을 나누기도 한다. 인간 고유의 것이라고 믿었던 수많은 인간적 특질은 동물에게서도 결국 발견되는 경우가 많았다. 『아름다움의 진화』는 ‘연애의 주도권을 둘러싼 성갈등의 자연사’라는 흥미로운 부제를 달고 있다. 나는 아름다움의 진화를 읽으며 ‘동물에게도 페미니즘이 있었구나!’라는 감탄을 금치 못하며 즐거운 상상에 빠졌다. 인간과 동물이 공유하고 있는 것 중 가장 마음에 든다는 생각도 들었다. 동물도 인간처럼, 인간도 동물처럼, 여성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분투하고, 진화해왔구나! 그것이 단지 ‘동물도 인간처럼 감정이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진화의 산물’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만국의 피메일(Female)이여, 단결하라! 모든 동물의 역사는 젠더 투쟁의 역사다!”라는 슬로건도 흥미롭다. 페미니즘을 생각할 때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만 생각했던 것이 부끄러워진다. 인간과 비인간 동물은 엄연히 다르다고 생각했던 우리의 편견, “비인간 동물들 사이에서 자행되는 강제 교미와 인간의 강간을 같이 취급하는 것은, 인간의 강간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맥락을 가려버릴 수 있는 위험이 있다”라는 편견. 동물들도 성적 불평등을 이겨내기 위해 끊임없이 진화해왔다는 강력한 가설을 증명하는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동물의 인권뿐 아니라 동물의 지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 ‘그들도 우리처럼’ 더 나은 사랑을 꿈꾸고, 억압과 폭력이 없는 세상을 꿈꾸고 있었다니. 너무도 반갑고 아름다운 사실이다.

어떤 종의 오리는 32cm라는 평균적인 암컷의 몸길이보다 훨씬 긴, 42cm라는 어마어마한 길이의 페니스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암컷의 생식기는 구불구불하고 험난해 나아가기 어렵게 진화했다. 이것은 강제 교미를 시도하는 수컷에 대항해 어떻게든 그것을 막아내려고 했던 암컷 사이의 치열한 군비 경쟁의 결과라고 한다. ‘알파 수컷이 모든 것을 가진다’고 알려진 동물들 사이에서도 이런 ‘암컷들의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선택’이 빛을 발한다. 강압적인 우두머리 수컷을 피하고 싶어 하는 침팬지 암컷은 자신이 선택한 수컷을 데리고 달콤한 밀월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화려한 구애 행동으로 유명한 바우어새야말로 ‘암컷이 선택한다’는 페미니즘적 가설을 온몸으로 증명한다. 수컷은 강압적으로 달려들지 않고 구애 행동을 통해 암컷의 환심을 사려 한다. 이때도 비상탈출구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암컷이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강압적으로 자행되는 데이트 폭력을 피하기 위한 암컷의 영리한 선택이다. 이렇듯 동물들도 인간처럼, 여성 쪽의 선택이 더욱 존중받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도 흥미롭다.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동물이 성적 자기결정권과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 나름의 전장에서 싸우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동물의 진화사는 젠더 투쟁의 역사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미투 운동은 서로의 차이를 좁히고 평등해지는 방향으로 인간이 진화해가고 있다는 사실의 증거가 아닐까. 가부장제의 옹호자들은 ‘페미니즘이 자연발생적이고 생물학적인 차이를 부인하며, 남성의 지위를 끌어내리고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페미니즘은 여성의 권리 주장을 위해 만들어진 허상에 불과하다는 소리다. 그러나 저자 리처드 프럼은 이런 식의 가부장제 논리에 정면으로 맞선다. 동물들조차도 각자 나름의 성적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 투쟁해왔는데, 어떻게 페미니즘이 허상일 수 있는가. 인간도 동물처럼, 동물도 인간처럼, 성적 자율성, 자율적 선택권을 지켜내기 위해 투쟁해온 것이 바로 진화의 역사다. ‘여성의 선택’은 진화를 통해 증명된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유인원인 보노보와 침팬지의 경우, 암수의 몸집 차이가 25~35%가량이지만, 인간 남성의 체구는 여성보다 고작 16%가량 클 뿐이다. 게다가 인간의 송곳니는 다른 영장류에 비해 유난히 작다. 인간은 물리력과 폭력으로 상대를 소유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최대한 줄이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다. 바로 ‘여성의 선택’을 통해서. 양성 간의 평등을 지향하려는 노력, 여성이 성적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한 싸움은 태곳적부터 이어져내려온, 과학적인 진화의 결과다. 페미니즘은 ‘유별난 여성들의 권리 주장’이 아니라, 진화의 역사 속에서 과학적으로 증명되는 성적 자율권 산물이 아닐까.

동물이 성적 자율성을 위해 투쟁하는 쪽으로 진화하면서 비로소 ‘아름다움’이야말로 파트너를 선택하는 최고의 기준이 되었다. 데이트 폭력을 마음껏 행사할 수 없게 된 바우어새 수컷은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무대를 준비하고, 수컷들끼리 군무를 춤으로써 아름다움을 마음껏 발산한다. 인간들 또한 서로의 마음에 들고자, 필사적으로 아름다움을 가꾼다. 남성들의 아름다움이 점차 섬세하고 여성스러운 쪽으로 진화해가는 것도 장기적으로는 ‘여성들의 선택’이 낳은 결과인 셈이다. 이 책을 읽다 보니, 생존 자체에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마침내 성적 자율권을 얻기 위해 투쟁하는 존재들이 ‘계속 사랑하기 위한 타협안’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맥락에서 ‘아름다움을 가꾼다는 것’은 단순한 외모지상주의가 아니라 우리가 계속 서로를 사랑하기 위한 우아하고도 지혜로운 타협안이 아닐까.

 

 

 

 

2. 자신과 닮은 신을 믿는 인간

『인간화된 신』

레자 아슬란 지음,

강주헌 옮김,

세종서적 刊, 2019

 

 

영화 <어벤저스> 시리즈를 보면서 ‘왜 하나같이 초인적인 영웅들은 신을 닮았을까, 그리고 왜 신은 인간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존재들을 이상화한 이미지로 구현되는 것일까’ 하는 물음을 던져보았다. 인간-초인-신은 본래 하나의 이미지가 아니었을까. 인간과 신 사이를 매개해주는 존재가 영웅이나 초인이라면, 신은 인간이 마침내 도달하고자 하는 이상향으로서 마치 밤하늘의 별처럼 늘 우리 머리 위에서 빛나지만 결코 닿을 수 없는 존재가 아닐까. 인간은 신들의 이미지를 창조하고 상상할 때, ‘내가 되고 싶은 또 하나의 나’의 모습을 투사하는 것이 아닐까. 레자 아슬란은 인간화된 신에서 우리가 ‘종교적 인간(Homo religiosus)’인 이유는 ‘초월성(transcendence)’, 즉 물리적 세계 너머에 존재하는 것을 실존적 차원에서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를 마침내 눈에 보이는 존재로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예술 작품을 창조하는 인간의 욕망이기도 하고, 영화나 소설을 통해 우리가 꿈꾸는 이상이기도 하다. 내가 지금 당장 실현할 수 없을지라도 언젠가 마침내 도달하고 싶은 이상향을 신의 이미지로 형상화하고, 그것을 소설이나 영화나 그림의 이미지로 재현하는 것. 그것 또한 신을 꿈꾸며 결국 인간의 이상적 이미지를 그리는 종교미술의 열망과 닮았다.

 

궁극적으로 바빌론 유수에서 잉태된 유일신은 아케나텐이 숭배하던 추상적인 신이 아니었다. 차라투스트라가 상상한 생명을 주는 순수한 정령도 아니었다. 그리스 철학자들이 썼던 것처럼 무형의 실체도 아니었다. 바빌론 유수에서 탄생한 신은 새로운 종류의 신, 즉 단일하면서도 인격화한 신이었다. 인간의 모습을 하지 않았지만 인간을 자기 형상대로 만든 단일한 신이었다. 또 인간의 좋고 나쁜 감정과 특성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영원하고 분할되지 않는 신이었다. – 『인간화된 신』 중에서

 

<어벤저스>의 슈퍼히어로에 열광하면서 우리는 ‘내가 되고 싶었으나 결코 되지 못한 존재’에 대한 낭만적 향수를 느낀다. 더 강해지고 싶고, 누구도 날 건드리지 못하게 하고 싶고, 아름답고, 완벽하며, 사랑스러운 신. 그것은 바로 우리가 꿈꾸는 자신의 이상적 셀프 이미지이며, ‘인간화된 신’을 숭배함으로써 문명은 더 화려하고 편리하고 강력하게 발전해왔다. 이 책은 현실에서 할 수 없는 일들을 만능의 ‘신’이 대신 처리해주는 기적을 경험하기 위해 인간은 보이지 않는 ‘신’이라는 존재를 믿고 헌신해왔음을 증언한다. 저자는 인간에게는 신을 인간화하려는 본능적 욕망이 숨어 있으며, ‘인간화된 신’이 거의 모든 종교의 핵심을 이룬다고 주장한다. 그리스 신화가 끊임없이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부활하는 이유, <어벤저스> 같은 슈퍼히어로물이 끊임없이 확대재생산되는 이유도 바로 ‘인간을 닮은 신의 이미지’를 눈앞에서 보고자 하는 우리의 열망 때문이리라. 우리는 ‘신이 되지 못한 인간’의 강박적 욕망을 신적인 이미지에 투사하는 행위를 잠시 멈추고, ‘신은 본래 우리를 닮은 어떤 것’으로 창조되었음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저자의 말처럼, 더욱 평화롭고 원초적인 형태의 영성을 되찾기 위해. 우리 자신을 ‘신이 되지 못한, 너무 많이 모자란 존재’로 폄하하지 않고, 강박적 신의 이미지로부터 벗어나, 이 세상 모든 것에서 신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범신론적 사유로 한 걸음 나아가고 싶다.

정여울 작가. 저서로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월간정여울-똑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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