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 세상 읽기|마크 아그로닌의 『노인은 없다』 외__정여울

창조적인 노년,

아름다운 나이듦을 꿈꾸다

『노인은 없다』

아름답게 나이 드는 일은 왜 이토록 어려운 것일까. 아무리 부지런히 노후 준비를 해도, 아무리 열심히 건강관리를 해도, 우아하고 기품 있게 늙어가는 것은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만 내려지는 축복인 것 같다. 사실 노인 문제는 우리 사회의 모든 불평등과 불균형의 문제들과 맞물려 있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노인 인구는 급증했지만, 노인들의 일자리 문제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또한 지하철 무료 이용이나 노약자석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여러 가지 불화는 노인들 스스로의 인식 개선도 필요함을 보여준다. 분명한 것은 노인 문제는 국가의 복지정책에만 맡겨둘 수 없다는 것이다. 외부의 힘에 의지할 때 인간은 나약해지고, 자발성을 잃게 되며,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최근에 쏟아지는 ‘나이’와 ‘노년’에 대한 책들을 보면 우리 곁의 암울한 현실과는 달리 분명한 희망의 씨앗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과학자들은 끊임없이 ‘나이듦 자체를 막을 수는 없지만, 신체 나이의 노화를 지연시킬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는 것을 밝혀내고 있고, 인문학자들은 ‘정신의 노화를 막기 위한 무형의 문화적 자산’을 만드는 것이 바로 끊임없이 배우고자 하는 인간의 열망임을 밝혀내고 있다.

『노인은 없다』는 의사가 쓴 희망적인 노년에 관한 안내서다. 노인정신의학 전문의 마크 아그로닌 박사는 “나이 든다는 것은 쇠퇴하는 것이 아닌 성장한다는 것”이라고 선언한다. 육체적인 노화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지만, 전체적인 기능은 여전히 안정적이며, 삶의 어떤 측면은 오히려 개선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경제적 능력이 있을 때만 노년은 행복할 수 있다’는 세간의 인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적극적으로 관찰하고 배려할 수 있는 인식 능력이 있으면, 아름다운 노년을 위해 꼭 엄청난 부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노년에 대한 공포를 이겨내고 노년을 더욱 보람 있게 살아갈 수 있는 다양한 정신적 힘을 젊었을 때부터 기르는 것이다. 육체적인 퇴보는 막을 길 없지만, 정신의 능력은 오히려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 아름다운 노년의 희망이다. “정신적인 능력 중에서, 경험을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나 정보를 통합하는 능력, 즉 ‘지혜’라고 보면 좋을 만한 능력은 오히려 노년에 들어 더 발달하기도 한다.” 저자는 아름다운 노년을 위한 최고의 정신적 힘으로서 ‘회복탄력성’을 제시한다. 회복탄력성은 상처로부터 스스로 나아질 수 있는 능력이며, 외부의 조력 없이 스스로 자신의 삶을 더 낫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이기도 하다.

“회복탄력성이 생기면 스스로의 능력과 가치, 자존감을 행사하고 증명할 방법이 눈에 들어온다. 역경 속에서의 이런 성공은 가장 고귀한 존엄의 실천이다. 이는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최고의 행동이며, 노년에 활기를 불어넣고 원기를 회복시킨다. 회복탄력성을 발휘할 때 우리는 삶의 목적을 행동으로 옮긴다. 단순히 생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뭔가 긍정적인 행동을 하고, 이 세상과 우리 자신을 위한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다.”

– 『노인은 없다』 중에서

회복탄력성을 기른다는 것, 그것은 상처를 입더라도 그 상처를 분노나 복수의 에너지로 쌓아두지 않는 것이며,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힘을 자기 안에서 발견하는 용기를 쌓아가는 것이다. 노년을 ‘쇠락’이 아닌 ‘성장’의 계기로 삼기 위해서는 우리가 저마다 ‘창조적인 노화’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노인정신과 의사인 코헨은 ‘창조적인 노화’의 모델을 제시하면서, 노년기의 삶을 건강하게 보내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외부 조건과 관계없이, 모든 노화가 진행되는 과정 중에도 높은 목적의식, 성취의식이 존재한다’는 사실임을 발견한다. 목적의식과 뚜렷한 성취의식이 높은 사람들은 외부의 유혹과 위협에 굴하지 않고 자신만의 창조적인 노화를 경험할 수 있다. ‘창조적인 노화’의 길을 제시한 코헨은 나이듦의 어두운 측면이 아니라 나이가 들면서 오히려 늘어나는 ‘가능성’에 주목했다. “즉 나이가 들었음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성취하는 것들에 주목”함으로써, 창조적인 노화는 가능해지는 것이다. 노년을 ‘쇠락’이 아닌 ‘성장’의 기회로 삼기 위해서는 나이듦에 깃드는 축복과 감사의 계기들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나이듦 그 자체가 창조성의 촉매가 되기 위해서는, 경험을 그저 ‘기억’으로만 저장해두는 것이 아니라 경험 속에서 ‘지혜’를 발견하고 자신의 경험에 창조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해석 능력이 중요하다. “창조성은 모든 나이에, 모든 조건에서 일어날 수 있지만, 나이가 주는 경험의 풍요로움이 창조적 가능성을 엄청나게 확장시킨다.”

 

 

 

나이에 묻은 편견과

오해를 넘어,

나이를 사랑하기

『나이 없는 시간』

 

이 책의 저자는 ‘나이듦 안에 있는 젊음’을 발견하려 노력한다. 나이 들면서 지혜로워지는 것 또한 아무나 누릴 수 있는 특권은 아니지만, 나이 드는 과정 속에서도 자기 안의 젊음을 잃지 않는 것은 더욱 어려운 과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시간과 함께 놀이를 하는 법’을 제안한다. 젊어 보이기 위한 절망적인 노력을 계속하기보다는, 시간 그 자체와 놀이를 할 수 있는 길, 즉 인생을 좀 더 아름답고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자기 안의 길을 발견하라는 것이다.

저자는 삶 속에서 ‘시간과 함께 축제를 벌일 수 있는 길’을 찾아보자고 조언한다. 그냥 ‘킬링타임’이라고 할 만한 그런 사소한 소일거리가 아니라, “우리가 기꺼이 다듬으면서 구성하고 재구성하는 시간”에 대한 애착을 느껴보자는 것, “즐거움을 얻기 위해 함께 노는 시간”을 늘려보자는 것이다. “노화와 흘러가는 시간으로부터 자신을 떼어놓을 수 있는 즐거운 무언가를 재발견”하는 사람이야말로 늙음 속에서 젊음을 발견하는 지혜를 가진 사람들이다.

“우리는 시간에 잠겨 있으며, 이따금씩 몇몇 순간을 향유한다. 우리는 스스로를 시간에 투사하고 시간을 재발명하며 시간과 함께 논다. 훌쩍 흘러가는 시간을 놓쳐버리기도 하지만 우리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시간은 우리 상상력의 원료다. 반면에 나이는 지나간 나날을 상세히 설명하는 방식이자 세월의 흐름을 한 방향으로만 이해하는 관점이다.”

– 『나이 없는 시간』 중에서

숫자로 셈할 수 있는 기계적 시간이나 의미 없이 흘러가버릴 수도 있는 시간을 ‘크로노스의 시간’이라고 한다면, 자신만의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시간, 그 시간 속에서 삶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시간을 ‘카이로스의 시간’이라고 한다. 아름답게 나이 들어가는 것을 넘어, 늙어감 속에서도 젊음을 발견하는 길은, 바로 이 ‘카이로스의 시간’을 늘리는 것이다. ‘한국식 나이’로 따지면 내가 두 살 어린데, 이런 식으로 한두 살만이라도 어려 보이기 위한 가망없는 노력을 계속하는 것은 ‘크로노스의 시간’에 붙잡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나이조차 의식하지 못한 채 나를 진정으로 기쁘게 해주는 열정의 대상에 빠져서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사람은 바로 ‘카이로스의 시간’을 사는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시간은 자유를 뜻하지만 나이는 제약을 뜻한다.” 그는 나이가 가하는 제약에서 벗어나 시간의 아름다움을 향유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탐색하는 삶을 꿈꾼다. 은퇴를 두려워하며 어떻게든 사회적 노동에 집착하는 것은 ‘크로노스의 시간’에 사로잡혀 있는 마음의 상태를 반영한다. 은퇴를 ‘사회적 죽음’과 동의어로 받아들이며 어떻게든 은퇴 기한을 늦추려는 절망적인 노력을 계속하기보다는 은퇴의 시간과 동시에 ‘진정한 해방’의 기회를 찾을 줄 아는 사람, 나이를 고민하지 않고 자신만의 시간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찾는 사람이 바로 ‘카이로스의 시간’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이다.

또한 나이 먹는 것을 ‘부정’하는 어떤 행위도 결국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아름다운 노화의 지름길이기도 하다. “나는 나이를 먹는다, 그러므로 나는 살아간다. 나는 노화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 그것이 바로 ‘죽음’이 아니라 ‘살아 있음’의 증거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늙으면 죽어야지!’라고 투덜거리면서 즐겁지 않은 삶을 증오하는 것보다 훨씬 나은 길이다. “죽기 5분 전까지만 해도 라 팔리스 씨는 아직 살아 있었다.” 바로 이것, 즉 우리가 정말 한 줌의 재로 사라지기 전까지는 우리는 어디까지나 ‘살아 있는 상태’임을 주목하는 것. 나이듦에 대해 투덜거리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음 그 자체에서 눈부신 광휘를 보는 것이야말로 ‘크로노스의 시간’을 넘어 ‘카이로스의 시간’을 창조하는 비결이 아닐까.

 

 

정여울 작가. 저서로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월간정여울-똑똑』 등이 있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17 − eigh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