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열반 ④ 선사들의 열반송 열두 편

선사들의 열반송 열두 편

 

열반송에는 선사들이 평생을 치열한 수행 속에서 얻은 깨달음이 농축돼 있다. 대 중에게는 자신의 공부와 수행을 되돌아보게 하는 거울과도 같다. 한국 불교의 큰스님들이 남긴 열반송들 가운데 열두 편을 뽑아 소개한다.

 

나옹 혜근(懶翁惠勤)선사(1320~1376)

나를 빼고 무엇이 열반과 부처를 이루겠는가? 우리가 돌아가는 곳, 그곳이 열반이다.

七十八年歸故鄕(칠십팔년귀고향) 칠십팔 년 고향으로 돌아가나니

天地山河盡十方(천지산하진십방) 이 산하 대지 온 우주가 다 고향이네

刹刹塵塵皆我造(찰찰진진개아조) 삼라만상 모든 것은 내가 만들었으며

頭頭物物本眞鄕(두두물물본진향) 이 모든 것은 본시 내 고향이네

 

태고 보우(太古普愚) 국사(1301~1382)

열반으로 가는 길은 오온의 이 세상에서 입었던 모든 옷, 심지어 내 몸까지도 벗어 던지고 떠나는 길이다.

人生命若水泡空(인생명약수포공) 삶이란 물거품과 같아 부질없는 것

八十餘年春夢中(팔십여년춘몽중) 팔십 평생이 일장춘몽 속이라

臨終如今放皮孱(임종여금방피잔) 이제 길을 떠나며 가죽 껍데기를 벗자니

一輪紅日下西峯(일륜홍일하서봉) 둥그런 붉은 해는 서산에 떨어지노라

 

청허 휴정(淸虛休靜) 스님 (1520~1604)

서산대사 청허 휴정 스님은 조선시대 꺼져가는 선을 중흥시킨 한국 선의 중흥조 이다. 구름이 실체가 없듯이 삶도 실체가 없다.

千計萬思量(천계만사량) 천 가지 계획 만 가지 생각

紅爐一點雪(홍로일점설) 붉은 화로 속 한 점 눈송이

泥牛水上行(니우수상행) 논갈이 소가 물 위를 가나니

大地虛空裂(대지허공렬) 대지와 허공이 갈라지도다

生從何處來(생종하처래) 생은 어디에서 왔으며

死向何處去(사향하처거) 죽어서는 어디로 가는가

生也一片浮雲起(생야일편부운기) 삶은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남이요

死也一片浮雲滅(사야일편부운멸) 죽음은 한 조각 구름이 스러짐이라

浮雲自體本無實(부운자체본무실) 뜬구름은 본래 실체가 없는 것

生死去來亦如然(생사거래역여연) 살고 죽고 가고 옴이 모두 그와 같도다

 

정관 일선(靜觀一禪) 스님 (1533~1608)

우리가 평생 한 말은 수미산을 넘을 만큼 많을 것이다. 그 말들 가운데 진실은 얼 마나 될까? 스님의 열반송에 그 답이 있다.

平生 愧口 (평생참괴구남남) 평생 입으로 지껄인 것 부끄러이 여기니

末後了然超百億(말후료연초백억) 이제야 깨달으니 백 억의 말 저편이네

有言無言俱不是(유언무언구불시) 말을 해도 하지 않아도 모두 다 아니니

伏請諸人須自覺(복청제인수자각) 엎드려 청하나니 그대들은 스스로 깨달아라

 

소요 태능(逍遙太能) 스님 (1562~1649)

서산, 경허, 청매 스님들과 함께 한국 선시의 독보적인 존재이다. 죽음 앞에 이른 노 수행자의 서릿발 같은 자기 성찰이 열반송에 스며 있다.

解脫非解脫(해탈비해탈) 해탈이 해탈이 아닌데

涅槃豈故鄕(열반기고향) 열반이 어찌 고향이겠는가

吹毛光 (취모광삭삭) 취모검 빛이 빛나고 빛나느냐

口舌犯鋒 (구설범봉망) 말을 내뱉으면 그 칼에 베리

 

진묵(震默) 대사(1563~1633)

여래의 경지에 오른 큰 불보살이라는 평을 받는 진묵 대사. 술을 곡차라고 부르는 것도 진묵 대사로부터 유래했다.

天衾地席山爲枕(천금지석산위침) 하늘을 이불삼고 땅으로 자리하고 산으로 베개 하고

月燭雲屛海作樽(월촉운병해작준) 달빛으로 촛불 켜고 구름으로 병풍치고 바다를 술통삼아

大醉居然仍起舞(대취거연잉기무) 크게 취해 거연히 일어나 신나게 춤을 추니

却嫌長袖掛崑崙(각혐장수괘곤륜) 긴소매가 곤륜산에 걸릴까 저어하노라

 

설봉 회정(雪峯懷淨) 스님 (1678~1738)

스님의 열반송에는 모든 삶의 자취로부터 벗어나려는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浮雲來無處(부운래무처) 하늘의 뜬구름 온 곳 따로 없으며

去也亦無 (거야역무종) 어디로 가는지 종적조차 없다

細看雲去來(세간운거래) 자세히 살펴보니 구름만 오고 가고

只是一處空(지시일처공) 구름이랄 것도 없이 허공일 뿐이다

 

경허 성우(鏡虛惺牛) 스님 (1849~1912)

걸림 없는 무애행을 실천한 경허 스님은 한국 근대 불교사에 선의 대물결을 일으 켰다. 단아한 귀품이 느껴지는 열반송을 남겼다.

心月孤圓(심월고원) 마음 달이 홀로 둥글어

光呑萬像(광탄만상) 빛이 삼라만상을 삼켰네

光境俱忘(광경구망) 빛과 빛의 경계를 함께 잊어버리니

復是何物(부시하물) 다시 어떤 물건이 있으리오

 

석우 보화(石友普化) 스님 (1876~1958)

열반송에는 자연에 대한 경건한 마음이 들어 있다. 하늘과 땅, 해와 달을 바랑과 소맷자락에 감추어두고 있다.

囊括乾坤方外擲(낭괄건곤방외척) 주머니에 하늘과 땅을 잡아넣어 시방 밖에 던져버리고

杖挑日月袖中藏(장도일월수중장) 소매 가운데에 해와 달을 따 넣어 감춰버림이라

一聲鍾落浮雲散(일성종락부운산) 종 한 소리 떨어지고 뜬구름이 흩어지니

萬朶靑山正夕陽(만타청산정석양) 일 만 푸른 산봉우리 이미 다 석양이네

 

춘성 춘성(春性春城) 스님 (1891~1977)

스님의 열반송은 거칠지만 힘이 드러난다. 스님에게는 무애행조차 붉은 화로 속 에 떨어지는 한 점 눈꽃처럼 부질없다.

八十七年事(팔십칠년사) 여든일곱 생 살았던 일이

七轉八倒起(칠전팔도기) 일곱 번 넘어지고 여덟 번 일어나는 것이네

橫說與堅說(횡설여견설) 횡설수설했던 그 모든 것이

紅爐一點雪(홍로일점설) 붉은 난로 속 한 점 눈이네

 

자운 성우(慈雲盛祐) 스님 (1911~1992)

본디 불성을 가진 사람의 성품은 착하고 깨끗하고 비어 있어 맑은 신령 그 자체이 다. 올 때의 그 성품, 평생 정진하면 갈 때도 그 성품이다.

眞性圓明本自空(진성원명본자공) 참된 성품은 원래부터 밝고 스스로 공하니

光照十方極淸淨(광조시방극청정) 신령스러운 빛이 사방 온 세상을 비추네

來與淸風逍遙來(내여청풍소요래) 올 때는 맑은 바람과 더불어 소요하며 왔고

去隨明月自在去(거수명월자재거) 갈 때는 밝은 달을 따라 소요하며 가네

 

퇴옹 성철(退翁性徹) 스님 (1912~1993)

평생 자신에게 정직하고자 했던 수행자의 모습이 열반송에 담겨 있다. 우리의 삶 은 여전히 자신과 남을 속이는 죄업의 연속이다.

生平欺狂男女群(생평기광남녀군) 일생 동안 미친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彌天罪業過須彌(미천죄업과수미) 수미산을 덮은 죄업이 하늘을 가득 채웠다

活陷阿鼻恨萬端(활함아비한만단) 산 채로 아비지옥에 떨어져서 한이 만 갈래나 된다

一輪吐紅掛碧山(일륜토홍괘벽산) 해가 붉음을 토하며 푸른 산에 걸렸다

 

정리|김리언(자유기고가) 본 원고는 『오도에서 열반까지』(진옹월성 저, 사유수 刊, 2014년) 등의 자료를 토대로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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