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 세상 읽기 에밀리 에스파하니 스미스의 『어떻게 나답게 살 것인가』 외__정여울

나다운 삶을 여는 열쇠,

의미가 필요한 시간

『어떻게 나답게 살 것인가』

 

심리학자들은 우울증을 ‘의미를 찾지 못한 슬픔’이라고 설명한다. 슬픔의 의미를 찾을 수만 있다면, 아무리 슬퍼도 그 의미를 깨달을 수만 있다면, 슬픔이 우울증으로 심화되지는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어떻게 나답게 살 것인가의 저자 에밀리 에스파하니 스미스는 행복을 추구하면 오히려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행복의 역설’을 이야기한다. 행복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의미를 추구할 것, 나아가 행복해지기 위해 무언가를 끊임없이 소유하기보다는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다양한 각도에서 노력할 것을 제안한다. 저자는 심리학을 공부하던 중 ‘행복을 좇는 사람은 도리어 불행해진다’는 연구 결과를 알게 되면서, 그렇다면 행복이 아닌 무엇을 추구해야 인간의 삶이 충만해질 수 있는지를 찾기 시작한다. 그녀는 조지 엘리엇, 빅터 프랭클, 아리스토텔레스, 석가모니 등 수많은 위인들의 삶과 함께 500명이 넘는 다양한 계층과 직업군의 사람들을 조사하고 연구한 결과, ‘행복’이 아닌 ‘의미’를 추구하는 삶이 진정 ‘나답게 사는 것’임을 알게 된다.

그런데 ‘온전히 나 자신으로 살아갈 용기’는 생각처럼 쉽게 우러나오지 않는다. 자꾸만 주변 상황에 휘둘리고, 무엇보다 타인의 시선에 영향을 받는 것이 우리의 ‘자기다움’이다. 저자는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소중한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사람들의 공통점을 분석하면서, 그들이 ‘행복한 삶’이 아니라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한다는 점을 발견한다. ‘행복 강박’에서 벗어나 ‘의미의 힘’으로 살아가는 지혜, 그 지혜를 얻기 위해 저자는 네 가지 핵심적 가치를 제안한다. 그것은 바로 ‘유대감, 목적, 스토리텔링, 초월’이라는 네 개의 삶의 기둥이다. 첫째, ‘유대감(Belonging)’은 나의 존재가 타인의 존재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에서 우러나오는 충만함이다. 주민 전체가 끈끈한 정과 서로를 향한 필요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미국 버지니아주의 탕헤르섬 사람들, SCA라는 단체를 만들어 중세시대의 역사와 문화를 재현하는 취미로 유쾌한 만남을 이어가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고립된 나’에 그치지 않고 ‘나와 함께 관심과 의미를 공유하는 존재들’과의 유대감을 통해 삶의 의미를 확장하는 사람들이다. 유대감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내 곁에 있는 사람에게 집중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신뢰와 지지, 공감과 연민의 가치를 실천함으로써 삶의 의미를 확장하게 된다.

둘째는, 인생의 ‘목적(Purpose)’이다. ‘목적’이 뚜렷한 삶을 사는 사람들은 ‘누구도 아닌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이며, 사는 이유가 거창하지 않더라도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 속에서 진정한 가치와 의미를 찾을 줄 아는 사람들이다. 어릴 때부터 동물을 사랑해서 동물원에서 일하는 자신이 바로 ‘천직’을 만난 것이라며 기뻐하는 사육사, 감옥에서 수감자들이 운동하는 것을 돕다가 출소 후에 헬스 트레이너가 된 전직 마약상.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직업을 통해 인생의 목적과 가치를 찾는 사람들이다. 셋째, ‘스토리텔링’은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힘이기도 하며, 타인의 삶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를 높여주는 가치관이다. 상처받은 이들이 모여 자신의 삶을 ‘이야기’로 풀어가는 모임 ‘모스(The Moth)’의 사례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상처 입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커다란 삶의 에너지를 주는지를 증언한다. 넷째, ‘초월(Transcendence)’이다. 초월은 나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기쁨을 가리킨다.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단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을 뛰어넘어 우주의 신비에 참여하는 희열을 느끼는 경험, 광활환 대자연의 아름다움에 압도되어 내가 이토록 아름다운 세계의 ‘일부’라는 것을 깨닫는 자기상실(self-loss)의 체험이야말로 ‘초월’의 가치를 실험해볼 수 있는 기회다. 일상의 족쇄에 갇혀 스케줄대로만 사는 삶이 아니라, ‘나’라는 한계를 뛰어넘어 존재하는 세계의 거대함을 이해하는 행위를 통해 우리는 영원의 가치, 초월의 가치를 향해 다가갈 수 있게 된다.

 

글자 속에 숨은 예술, 과학,

그리고 정신의 아름다움

『글자 풍경』

오래전 대영박물관에 처음으로 방문했을 때, 나는 인류문화유산 중에서 ‘글자’가 이루어낸 업적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새삼 생각해보게 되었다. 함무라비법전의 거대한 위용과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이 대영박물관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한 장면이었다. 나는 그 크기나 내용보다도 ‘글자들의 아름다움’에 넋을 빼앗겼다. 수메르 문자의 질서정연하면서도 은근한 여백을 담은 아름다움, 이집트 상형문자의 ‘글자’라기보다는 ‘그림’에 가까운 유머러스하고도 섬세하기 이를 데 없는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겼다. 글자 속에 ‘의미’뿐 아니라 ‘생의 아름다움’을 담을 수 있는 문자들이 바로 오랫동안 인류의 역사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잃지 않는 문자들임을 알 수 있었다.

유지원의 『글자풍경』은 수많은 서체들에 담긴 역사와 문화의 이야기들, 그리고 서체를 통해 의미가 더욱 선명해지고, 서체를 통해 삶의 구체적인 의미가 더욱 섬세하게 드러나는 지점들을 흥미롭게 드러내준다. 저자는 이를 ‘글자들의 생태계’라 부른다. 저자는 글자들이 저마다의 아름다운 세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이렇게 설명한다. “글자들의 숲, 종이들이 이파리처럼 나부끼고 먹의 묵향이 번지는 곳, 인쇄기가 덜커덕덜커덕 구슬땀을 흘리며 근대로 향하는 정신의 텍스트를 힘차게 찍어내는 곳, 싱싱한 생명의 피처럼 기계를 돌리는 기름 냄새가 풍기고, 기계의 견고한 육신이 장인들의 노동과 온기에 힘입어 삶의 온도를 생생히 유지하는 곳, 갓 떠낸 검은 잉크가 피부의 윤기처럼 반짝이며 그윽한 체취를 풍기는 곳, 활기가 넘치는 거리 위 네온이 반짝이는 곳, 지구상 다양한 양태의 정신들이 글자로 응결되어 맺혀 있는 곳(…).” 그러니까 글자들이 이루는 풍경은 곧 문명의 풍경이고, 인간의 정신이며, 삶과 예술과 철학이 만나는 지점이 아닐까 싶다. 저자는 문화나 역사의 차이도 서체를 통해 드러난다는 것을 몸으로 느낀 경험을 이렇게 묘사하기도 한다. “베네치아에 도착한 길에 평범한 연구소의 간판 하나와 마주쳤다. 탄성을 머금은 채 그대로 멈춰 서서 들여다봤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국경을 넘어 막 이탈리아에 도착한 직후였다. 내가 살던 독일의 일상에서는 보기 드문, 둥글고 밝고 비례가 우아한 글자들이었다. 그 글자들이 따뜻해 보이는 하얀 돌 위에 새겨진 채, 남쪽 나라의 화사한 태양 아래서 나른히 기지개를 펴며 몸을 늘이고 있었다. 여기, 이탈리아가 깃들어 있었다.” 독일의 꼿꼿하고 가지런한 서체와는 전혀 다른, 우아하고 유연하며 날아갈 듯한 이탈리아 서체 속에 ‘이탈리아다움’이 깃들어 있었다는 것이다.

글자를 다루는 것이 곧 정보를 지배하는 것이기에 동서고금의 역사를 통틀어 글자를 장악한 사람들은 주로 남성들이었지만, 글씨체의 역사에서 여성이 주도한 예외적인 두 문자문화가 바로 ‘한글’과 ‘히라가나’라는 점도 흥미로운 사실이다. 특히 ‘궁체’를 통해 한글의 아름다운 서체가 무궁무진하게 응용된 것을 생각하면, ‘언문’이라 핍박받던 한글이 오히려 그 글씨체의 진정한 주인공이었던 여성들을 통해 더욱 아름답고 화려하게 꽃피었다는 사실이 무척 뿌듯하다. 한글이 만들어진 초창기의 글씨체는 매우 남성적이고 네모반듯한 느낌을 주었는데, 궁녀들을 비롯한 수많은 여성들의 정성스러운 글씨체로 다듬어진 궁체는 한글을 더욱 우아하고 유연한 글자로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궁체의 섬세한 아름다움이 없었다면, 지금의 한글이 자아내는 다양한 아름다움과 실용성은 불가능한 꿈이지 않았을까.

타이포그래피, 즉 서체를 통해 드러난 인간의 욕망을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인간은 “우리 자신의 개성과 말투가 사람들의 눈에 보이고 읽힐 때 더 잘 표현되기를 바라서, 타인과 소통을 다각도로 더 잘하기 위해서, 더 아름답기 위해서, 더 기능적이기 위해서, 더 다양한 감정을 주고받기 위해서, 우리의 생각을 더 잘 전달하기 위해서” 서체를 만들어 쓴다고.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는 말도 있듯이, 훤칠한 신수, 아름다운 말씨, 반듯한 글씨, 뛰어난 판단력은 훌륭한 인격을 판가름하는 중요한 기준이었다. 지금도 ‘반듯한 글씨’를 향한 사람들의 호감은 여전하니, 신언서판 중에서도 특히 ‘서’는 글자체의 아름다움이 인간의 정신의 무늬를 반영한다는 것을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말 같다. 아름다운 글씨 속에서 아름다운 마음의 행로를 찾는 과정을 통해 삶을 더욱 풍요롭게 가꾸는 시간이 되기를 꿈꾼다.

정여울 작가. 저서로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월간정여울-똑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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