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본 아름다운 우리 절|경주 함월산 골굴사__우태하·윤제학

함월산 달빛 머금은
선무도(禪武道)로
다시 태어난 절

 

 

신라의 서울이었던 경주의 동쪽은, 포항의 호미곶(영일만의 동북쪽 끝)에서 울산의 화암(울산만의 동남쪽 끝)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버티어 섰습니다. 그 산줄기에서 가장 높은 산이 가운데에 있습니다. 석굴암을 품은 토함산(745m)입니다. 토함산에서 북쪽으로 약 7km(직선 거리) 정도 떨어진 곳에 함월산(494m)이 있습니다. 토함산이 태양과 태양의 빛이 빚어내는 풍광을 토해내고 머금는다면, 함월산은 서라벌의 밤을 휘영청 밝히는 달을 품은 듯합니다.

인도의 불교 성지를 순례해본 사람이라면 아잔타와 엘로라 석굴 그리고 부처님 입멸 후 제1차 결집을 했던 칠엽굴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아잔타와 엘로라의 압도적 규모, 화려함과 정교함에 비해 칠엽굴은 소박한 자연 그대로입니다. 그 극적 대비가 잊을 수 없는 인상을 더욱 강화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토함산 석굴암과 함월산 골굴사는 대조적입니다. 익히 알 듯이 석굴암(국보 제24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은 360개의 넓적한 돌로 원형 천장을 만든 인공 석굴입니다. 자연스러우면서도 근엄한 본존불은 신라 불교 예술의 정점에서 이루어진 세계의 걸작입니다. 이에 비해 골굴사는 자연 그대로에 약간의 인공을 더했습니다.

골굴사는 함월산 자락의 암벽에 새긴, 통일신라 후기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하는 마애여래좌상(보물 제581호)을 맨 위에 두고 그 아래에 12개의 자연 굴을 법당으로 삼은 석굴사원입니다. 겸재 정선이 그린 것으로 알려진 그림에 나타난 골굴사의 모습은 석굴 앞에 기와를 얹은 목조 전실을 둔 형태입니다. 조선 후기까지도 골굴사는 수행 공간으로 존재했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이로 미루어볼 때 석굴암이 예경 중심이었다면 골굴사는 수행 중심의 공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봅니다.

골굴사의 창건은 기림사의 역사와 궤를 같이합니다. 1500여 년 전 천축국에서 온 광유성인이 기림사와 함께 골굴사를 창건했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골굴사는 선무도(禪武道)의 본산으로 정체성이 새로워졌습니다. 조선 후기 이후 잊힌 골굴사는 태고종의 사설 사암으로 명맥을 이어오다가 1990년대 초반부터 기림사 주지를 지냈던 적운 스님이 중창해 조계종 사찰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골굴사는 석굴사원의 이채로움과 선무도의 특별함에 매료된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고 합니다. 특히 방학 기간에는 템플스테이에 참가하는 청소년들이 많다고 합니다. 반가운 일입니다. 조신(調身)·조식(調息)·조심(調心)을 지향하는 선무도가 현대 사회의 문제에 대응하는 불교의 한 처방으로 자리하기를 소망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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