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담 대선사 법문

‘참나’를 찾는 공부를
열심히 하라

 

 

돈오심원개보장(頓悟心源開寶藏) 연생식득본래신(緣生識得本來身)
연화근발어니리(蓮花根發泥裏) 각소거진불염진(笑居塵不染塵)
돈오심원개보장(頓悟心源開寶藏) 연생식득본래신(緣生識得本來身)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서 자기 안에 있는 보배 창고를 열어젖히면 인연 따라서 나고 죽는 이 몸뚱이의 본래 몸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연꽃은 그처럼 깨끗하고 아름답게 피지만 뿌리는 저 밑에 썩어 문드러진 진흙 속에다 묻고 있습니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사람조차 그 몸뚱이 속에는 피와 오줌과 똥과 고름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 몸뚱이를 아낀답시고 보약을 먹이고 영양식을 먹인들 오래 살아봐야 백 년입니다. 그러는 동안에 사람들은 수없는 업을 짓고 그 업에 따라서 생사윤회를 할 뿐입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처럼 더러운 몸뚱이 속에 불생불멸한 불성이 안주하고 있습니다. 불에 넣어도 타지 않고 땅에 넣어도 썩지 않고 물에 넣어도 젖지 않는 소소영영(昭昭靈靈)한 주인공이 있어서, 그놈을 깨달으면 생사해탈하는 법을 부처님께서는 가르쳐주셨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 법을 모른 채 산다면 무량겁을 두고 보잘것없는 더러운 오물 주머니로서 죄만 짓다가 그 죄업에 따라 생사윤회를 하게 될 것입니다.
이 몸을 어떻게 위해야 제대로 위하는 것일까요? 부정한 방법으로 명예나 재산을 취하고, 잘 먹고 잘 입고 좋은 집에 사는 것이 이 몸을 참으로 위하는 일일까요? 그렇게 한세상 살다가 끝나는 것이라면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이 끝이 아니라 업에 따라서 또다시 새로운 몸을 받아서 살아야 하니 문제입니다. 수백 억만 생을 거치면서 윤회를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미원상한취원지(未圓常恨就圓遲) 원후여하이취휴(圓後如何易就虧)
삼십야중원일야(三十夜中圓一夜) 백년인사총여사(百年人事摠如斯)

사람들은 이지러진 달을 보고 ‘어서 빨리 둥근달이 되었으면. 왜 이렇게 날이 더디 가는가’ 하다가 완전히 보름달이 된 후 차차 이지러지면 ‘어쩜 이렇게 빨리 이지러져 버리는가?’ 합니다. 보름달이 될 때까지는 굉장히 더디게 둥그레지던 것이 한번 둥그레진 다음에는 금방금방 이지러져서 조각달이 되고 맙니다. 한 달 가운데 완전히 둥근 날은 단 하룻밤밖에는 없습니다.

백 년간 사람의 일이 모두 이와 같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낳아 온갖 정성으로 키워놓으면 그 자식이 결혼을 해서 또 자녀를 낳아 키웁니다. 그렇게 정성 들여 키운 자식이 오래오래 건강하고 좋은 일도 많이 하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으련만 어느새 주름살이 잡히고 허망하게 늙어서 병들어 지내다가 죽어버립니다. 세상에 한 가지도 우리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인생을 살아가야 할까요? 무엇을 믿고 살아야 할까요? 누구를 믿고 살아야 할까요?

밖에서 구한 것은 모두 부질없습니다. 잘 얻을 수도 없지만 설사 마음대로 얻었다 해도 오래토록 내 것일 수 없습니다. 언젠가는 저절로 물러가거나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는 식으로 결국은 놓치고 맙니다. 반면 내 안의 것은 바른 방법으로 열심히만 하면 반드시 얻을 수 있고, 한번 얻으면 누가 훔쳐갈 수도 없습니다. 열심히 잘 키워나가면 설사 이 몸뚱이를 버린다 하더라도 금방 또 새 몸을 받게 되고, 새 몸을 받으면 한번 얻은 것은 항상 거기에 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그 보배를 구하는 일만이 진정 우리가 생명을 바칠 만한 것이고, 우리의 모든 것을 투자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인연 따라 세속의 공부도 해야 하고 직장도 가져야 합니다. 하지만 그러는 가운데 자기 안에 있는 보물을 찾는 공부도 같이 해나가야 합니다. 그 공부를 해놓지 않으면 언젠가는 의지할 곳을 잃어버리고, 늙어서 너무너무 서글퍼져 살 수가 없게 됩니다.

다생원채기어친(多生怨債起於親) 막약다생불식인(莫若多生不識人)
향아불문여광제(向我佛門如廣濟) 무연진개대비은(無緣眞箇大悲恩)

다생겁래로 원수와 빚은 친한 데서 일어납니다. 사람을 알고 지내면 친하게 되고 친함이 생기면 그것이 언젠가는 변해서 원수, 빚쟁이가 됩니다. 그래서 원수와 빚쟁이를 만나지 않으려면 사람을 알고 지내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사람을 안다는 것은 사람 사이의 인연을 말하는 것입니다. 무위법(無爲法)/무루법(無漏法)의 인연(법을 믿고 권하고 듣고 실천하는 등 법에 있어서의 인연)이라면 몰라도, 유루법/유위의 인연은 모두 다 원수로 변합니다.

우리 불문에서는 무연자비(無緣慈悲)로 중생을 널리 제도합니다. 남에게 보시를 하되 인연이나 정에 따라 행하는 보시는 참다운 보시가 아닙니다.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이에게 무주상(無住相)으로 보시해야지, 유주상(有住相)으로 보시를 하면 결국은 빚을 만드는 셈이고 원수를 맺는 올가미가 되는 격입니다. 나에게 많이 받은 사람이 원수가 되지, 전혀 인연 없는 사람은 원수가 되는 법이 없습니다. 무주상으로, 조건 없이 베풀고 그 베푼 것조차 잊어버려야 합니다. ‘이것을 네게 주었으니까 너는 내게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 평생 이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된다’ 하는 마음으로 베푼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상대는 받으면서도 겉으로만 고맙다 할 뿐 속으로는 딴생각을 하게 마련입니다. 많이 받아먹은 놈일수록 나중에 배은망덕한 놈이 되고 나를 해코지하기 쉽습니다. 남에게 줄 때는 무심(無心) 속에서 주어야 하고 조건 없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무주상보시입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인과법으로 이루어집니다. 인과법은 지극히 과학적이고 컴퓨터보다도 더 정확합니다. 그 정확하다는 컴퓨터도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천하 못 믿을 것이 되지 않습니까. 영원토록 추호도 어김이 없는 것은 인과법입니다. 한 생각도 벌써 과보로 나타나고, 말 한마디도 과보로 나타납니다. 행동으로 한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따라서 한 생각이 일어날 때 퍼뜩 돌이켜서 이 뭣고로 돌아와야 합니다. 이 뭣고란 ‘참나’를 찾는 공부요, 참나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진묵겁(塵墨劫) 전, 우리는 모두 비로자나 법신불과 똑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러던 존재가 한 생각 일어나는 그 무명 때문에 이처럼 업투성이인 중생이 되고 만 것입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일어나는 한 생각만 잘 단속하면 본래의 비로자나불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근원을 다스리지 않고 어찌 지엽적인 문제에만 매달려 있습니까. 행주좌와어묵동정(行住坐臥語默動靜) 간에 항상 이 뭣고가 끊어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제발 좀 성을 내라고 해도 성을 안 내고, 제발 좀 욕심을 가지라고 해도 안 되는 것입니다. 이 뭣고, 처음에는 잘 안 되고 재미도 없지만 자꾸 하다 보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법희선열을 느끼게 됩니다. 전단향을 피우면 십 리 밖까지 그 향내가 풍기는데, 이 뭣고를 한 사람은 마음의 기쁨이 넘쳐흐르고 얼굴이 환해집니다. 또 그 사람을 본 사람마다 환희심을 내게 됩니다. 그 사람이 간 곳에는 항상 선신이 옹호하고, 꼭 탐욕심을 내지 않더라도 무엇이 필요하다 생각하면 저절로 그것이 찾아옵니다.

이 뭣고를 열심히 해서 마음에 욕심이 없는 사람은 항상 선신이 옹호해주기 때문에 꼭 필요한 것이 저절로 공급됩니다. 대통령 주위에 항시 경호원이 따라다니듯 참선하는 사람에게는 선신이 늘 따라다니고 지켜줍니다. 먹을 것, 입을 것, 잠잘 곳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시시각각 이 몸뚱이는 늙어가고 있습니다. 아무리 이 몸뚱이를 백 가지, 천 가지 방법으로 위해봤자 금방 허망하게 늙어갑니다. 그러니 이만큼이라도 젊었을 때 시간을 아껴서 열심히 이 뭣고를 해주기 바랍니다. 과거에 지은 죄를 깨끗이 참회하며, 앞으로 남은 인생에 죄 짓지 말고 열심히 이 뭣고를 하십시오.

탐착몽중일립미(貪着夢中一粒米) 실각금대만겁량(失却金臺萬劫糧)
무상찰라실난측(無常刹那實難測) 호불맹성급회두(胡不猛省急回頭)

꿈속에 쌀 한 톨을 탐착하다가 만겁 동안 먹고도 남을 양식을 잃어버리는구나. 무상함은 잠깐이라 헤아릴 수 없으니, 어찌 뼈아프게 반성해서 우리 마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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