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죽음이란 무엇인가

 

특집

죽음이란 무엇인가

 

 

 

 

 

프롤로그

삶과 죽음은 하나다

이각범

본지 발행인

 

 

삶과 죽음은 항상 같이 있다. 마치 동전의 앞뒷면처럼 맞붙어 있다. 모든 살아 있 는 것들은 죽음을 향해 가고 있고, 삶의 종이를 넘기면 그 뒷면에 있던 죽음이 따라 온다. 우리 모두는 영겁 동안 반복해서 도는 삶과 죽음의 수레바퀴 위에 있다.

죽음은 곧 이별이다. 사랑하는 가족, 친지, 조국과의 이별이며, 무엇보다도 자기 자 신과의 이별이다. 어떠한 권력도, 어떠한 부도, 명예도, 이름도, 기억도 가져갈 수 없 는 이별이다.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죽음은 어디에 있는가?” 여러 제자들이 각기 다른 대답을 했다. “죽음은 호흡지간에 있습니다”라고 한 제자가 대답하자 부처님께 서는 그 답변이 옳다고 하셨다. 죽음은 언제 어디서나 올 수 있고 우리의 삶과 같이 가고 있다.

삶이란 시간으로 존재하고, 죽음 또한 시간으로 다가온다.

죽으면 다 놓고 가야 한다. 6근을 통하여 얻은 감각과 그 감각을 가공해 만들어낸 지식 또한 다 놓고 가야 한다. 이 엄청난 이별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그것이 자기 자신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인 것을 잊은 채, 남의 일로 치부하며 살아가 고 있다. 사람들이 보고 듣는 죽음은 남의 죽음이며, 정작 자신의 죽음은 보고 듣지 못하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모든 존재는 반드시 죽는다. 우리는 모두 사람의 몸을 받아 태어났지만 이 몸 자체가 허망한 존재라는 것을 머리로만 이해할 뿐 깨닫고 받아들이려 하지는 않는다. 이 몸, 나아가 “나”라는 상(相)이 허망함을 정면으로 대면하지 못한다. 일상 생활에 집착하면 할수록 ‘죽음’은 아득한 미래의 일, 남의 일이 되고 만다.

사람들이 흔히 시간을 죽인다(killing time)라고 말하는데 시간을 죽일 때 그 사람은 살아있는 것인가, 아니면 죽어 있는 것인가.

그 반대로 그 사람이 나라는 것에 집착해서 열정적으로 살지만, 그 때문에 시샘하 고 분노하고 슬퍼하고 기뻐하고, 그렇게 이끌려 살아갈 때 그 사람은 살아있는 것인 가, 죽어 있는 것인가.

‘죽음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살아있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된다.

정말로 죽는 날이 정해져 있다면 우리는 오늘을 다른 날들과 다르게 살아갈까? 죽 음이 오기까지 매 순간을 어떤 마음으로 지낼까? 지금 직업상 하는 일을 삶의 한 부 분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며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할 수 있을까? 지금 함께 있는 사람 들과 시간을 보낼까? 지금 하는 이야기들을 할까? 미세먼지가 와서 싫고 공기가 맑 아져서 좋을까?

자신의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한다는 것은 삶과 죽음이 하나임을 깨닫는 것이 다. 그것은 주체적으로 살 수 있는 선택권을 갖는 것이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고 하더라도 오늘은 한 그루의 나무를 심겠다”고 한 어느 유명 인사의 에세이처럼 삶 에서 부여받은 일을 평상심으로 하는 것이 죽음과 삶에 대해 특별한 상(相)을 내지 않 는 일일 것이다. 어느 지혜로운 여성은 같은 질문을 받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 는 평소에 하던 일을 열심히 할 것이다. 가족을 위해 저녁을 짓고 가족들과 오붓하게 식사를 할 것이며, 어질러진 방을 치우고 내 물건들을 정리해 놓을 것이다. 평소와 다름없이 가족들과 인사하고 잠자리에 들어 조용히 다가올 죽음을 기다릴 것이다.”

내일 죽는다고 할지라도 앞에 있는 사람을 보고 미소 지을 수 있고 그 사람들을 위 해 평소하던 일을 할 수 있다면 그는 삶의 변화무쌍함에 대해 여여(如如)하다 할 것이다.

모두들 행복하기 위하여 열심히 살지만 그렇게 얻은 행복은 집착하는 ‘자기’가 사 라지는 순간 같이 사라진다. 진정한 행복이란 기적처럼 얻은 이 생에서 삶과 죽음을 관통하는 본래 모습을 깨닫는 일일 것이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생사의 윤회 속에서 한 번의 생이 다인 줄 알고 집착하는 중생 을 고통의 바다로부터 건져내시고자 부처님은 출가하셨다. 바른 깨달음을 이루신 부 처님께서 모든 이들에게 일깨워주신 최후의 가르침은 몸소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드 신 일이다.

부처님께서는 열반에 드시기 전 마지막 당부로 다음과 같은 법문을 하셨다.

비구들이여 나는 너희들에게 이르리라.

모든 것은 변화하느니라.

불방일(不放逸)하여 정진하라.

죽음은 말이나 글로써 이해하거나 깨달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바른 깨달음만이 삶과 죽음을 정면으로 대할 수 있게 한다. *

 

* 2019년 『불교문화』 1월호는 전생을 특집으로 발행하였다. 불교에서 조차 ‘전생’을 지나간 생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나 직전의 전생을 지금의 생과 직접 연결하여 해석하려고 하는데, 이런 오해를 불식시키고자 『불교문화』의 발행인으로서 어쩔 수 없이 프롤로그를 쓰게 되었다.

1월호에서와 똑같은 이유로 ‘죽음’에 관해 특집을 내는 2월호에서도 프롤로그를 쓰게 되었다. 불교에서 죽음에 관해 말할 때 흔히 사후체험 정도의 차원에서 생각하는 경향을 많이 보기 때문이다. 2월호 특집의 내용에서도 신비주의로 의 환원이라는 우(愚)를 피하려고 노력하였으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소지가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펜을 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쓰는 과정에서 죽음을 말이나 글로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아직 깨닫지 못한 필자가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 원고 제출을 망설였다. 약 보름 동안의 망설임 끝에 이 글의 마지막, 굵은 글씨로 쓴 두 줄의 문장으로 이글을 마감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죽음

오진탁

한림대학교 인문대학 인문학부 철학전공 교수

 

불교의 죽음 이해에서 중요한 용어가 바로 생사윤회와 열반이다. 생사윤회와 열 반은 불교적 죽음관의 핵심일 뿐만 아니라 부처님 가르침의 근간을 이루고 있으므 로, 불교 이해와 불교의 역사적 전개에 있어서도 핵심적 역할을 수행했다. 붓다의 출 가 동기, 깨달음의 구체적 내용, 그리고 열반의 의미를 자세히 검토한다면, 불교의 죽음 이해가 보다 분명하게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싯다르타 왕자가 왕궁을 버리고 출가해 수행의 길에 들어선 목적은 죽음의 문제 를 풀기 위한 것이었다. 출가를 만류하는 부왕에게 “죽음이 없는 길을 알려주면 출 가하지 않겠다”고 싯다르타는 말하기도 했다. 출가한 이후 오랫동안 진리를 추구했 던 그는 어느 날 진리를 찾을 때까지 결코 일어서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고 나무 밑 에 계속 앉아 있었다. 다음 날 이른 아침 동트는 하늘에서 샛별이 반짝일 때, 고타마 는 자신을 무수한 삶에 걸쳐 가두었던 감옥이 부서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무명이 감옥을 지키는 간수였다. 무명 때문에 먹구름에 가린 달과 별처럼 그의 마음은 미혹에 휩싸였던 것이다. 미혹의 파도에 가려 우리는 실재를 주관과 객관, 자아와 타아, 존재와 비존재, 삶과 죽음으로 잘못 나누었다. 이렇게 차별하는 마음으로 인해 잘못 된 소견, 즉 감정, 갈망, 집착, 삶과 죽음의 감옥이 생겨났다. 붓다는 무명(無明), 참된 본성에 대한 무지가 바로 생사윤회의 고통으로 떨어뜨리 는 근본 원인임을 깨달았다. 마음의 미혹을 끝내는 것이 곧 생사윤회를 벗어나는 것 이고, 이를 위해서는 우리 마음을 참된 본성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랜 정진 끝에 어느 날 새벽 마침내 깨달음을 얻고 외친 첫 마디가 “나는 불사(不死, Amrta)를 얻 었다”는 말이었다. 불사의 산스크리트 원어 ‘아므리따’는 한문 불교권에서 불사로 번 역했지만, 무사(無死), 비사(非死)로 옮길 수도 있다. 붓다는 보리수나무 아래 앉아 “죽 음은 없다(無死)”, “죽음은 죽음이 아니다(非死)”는 사실을 깨달았다. 보리수나무 아래 앉기 전까지 고민하게 만들었던 죽음이 알고 보니 실재하는 게 아니라 우리 의식이 만들어낸 허구에 불과했다. 죽음의 순간 우리가 맞을 죽음은, 우 리가 생각했던 그런 식의 “죽음이 아니다(非死)”. 다시 말해 그런 “죽음은 없다(無死)”는 뜻이다. 죽음이 있다는 착각에 지금 살아 있다는 생각을 떠올리게 되고, 지금 살아 있다고 착각하는 순간 죽음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삶과 죽음은 인연의 결 과일 뿐이지 실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붓다는 말한다. 붓다가 깨달음을 얻은 다음 “나 는 죽지 않는다(不死)”, “죽음은 죽음이 아니다(非死)”, “죽음은 없다(無死)”고 외친 것은 삶과 죽음은 우리 의식이 꾸며낸 허구, 인연에 따라 일시적으로 결합된 것에 불과하 다는 선언이었다. 붓다가 깨달은 다음 처음으로 제시한 교리가 고집멸도(苦集滅道) 사성제이다. 고제 (苦諦)는 사람들이 삶에서 느끼는 고통, 집제(集諦)는 고통의 원인, 멸제(滅諦)는 고통이 없어진 상태, 도제(道諦)는 고통을 없애는 방법. 붓다가 태자 시절에 생로병사의 고통 을 사문유관(四門遊觀)할 때 직접 보고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찾기 위해 출가했고, 깨달음을 얻자마자 첫 설법에서 사성제 가르침을 통해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법을 제시했다.

“삶과 죽음의 진리를 알고자 한다면, 우주에 단 한 가지 변치 않는 법칙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모든 것은 변하고 모든 것은 덧없다.

생사의 끝없는 순환에서 벗어나는 단 하나 유일한 길은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따라서 붓다는 생로병사를 극복하기 위해 출가했고 깨달음의 순간에도 불사를 얻 었다고 선언했으므로, 죽음 수용과 극복은 불교 가르침의 핵심인 것이다. “삶과 죽음 의 진리를 알고자 한다면, 우주에 단 한 가지 변치 않는 법칙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모든 것은 변하고 모든 것은 덧없다. 생사의 끝없는 순환에서 벗어나는 단 하 나 유일한 길은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불교의 죽음 이해를 제시하기 위해서는 죽음과 열반의 개념 차이를 먼저 명확히 해야 한다. 붓다고사의 정의에 따르면 ‘죽는다’에 해당하는 팔리어는 ‘kalam karoti’ 이다. ‘kala’는 시간을 의미하는데 인간의 생명과 관련해 수명의 길이를 말한다. ‘kalam karoti’는 자신이 부여받은, 이 세상에 머물 수 있는 육체의 시간을 마친다는 뜻이다. 불교에서는 죽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심폐사와 뇌사 같은 육체 중심의 죽 음 이해와 어떻게 다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수명(호흡), 체온, 그리고 의식 세 가지가 육신을 버릴 때 육신은 쓰러져 마치 아무 감각 없는 나무처럼 된다.” (『잡아함경』) 우 리의 생명은 수명(호흡), 체온, 그리고 의식 세 가지를 갖추고 있다. 호흡, 체온, 그리고 의식이 육신으로부터 벗어날 때 이를 죽음이라 일컫는다. 살아 있을 때에는 호흡, 체 온, 의식 세 가지가 서로 분리되지 않지만, 호흡이 다하면 체온이 떨어져 육신이 차 갑게 되고 이숙식(아뢰야식)이 몸을 떠나게 된다. 호흡이 멈추고 심장 박동이 정지하면 서 육신은 기능이 다하게 된다. ‘어떤 순수하고 미묘한 마음(subtle mind)’이 육신에서 떠나면 몸의 9가지 구멍으로부터 시신은 부패하기 시작한다고 달라이 라마는 말한다. 열반은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난 적멸을 뜻한다. 열반의 세계는 불생불사이다. 따 라서 붓다의 죽음이란 붓다 육신의 죽음을 의미하고, 붓다의 입멸이란 붓다가 불생 불멸의 열반에 들어갔다는 뜻이다. 붓다는 자신의 육체를 오래된 낡은 집에 비유한 다. “세월이 지나면 집은 낡아 마침내 허물어지듯이 육신도 결국 죽게 된다. 집을 받 치고 있던 대지는 여전히 변함없듯이, 붓다의 육신은 죽었지만 마음은 대지처럼 안 정되어 있다.” (『불반니원경』) 붓다는 육신에서 벗어나는 길도 말한다. “생명이 있는 모든 중생은 죽는다. 수명은 반 드시 다하게 되어 업에 따라 인연의 과보를 받는다. 선과 악 각각에 결과가 뒤따른다. 복을 쌓으면 하늘세계로 올라가고 악을 지으면 지옥에 떨어진다. 도를 닦으면 생사의 과보를 끊고 열반의 세계로 들어가(… ) 윤회에서 벗어나 죽지 않게 된다.”(『별역잡아함경』) 누구든지 죽은 이후 업에 따라 과보를 받아 윤회하게 된다. 그러나 윤회, 죽음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해탈의 길 역시 붓다는 제시했다. 붓다가 출가한 것도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벗어나 열반을 얻기 위한 것으로, 깨달음이란 생사에 자유자재 한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오진탁 성균관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 대학원 철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림대 철학과 교수로 있 으면서 한국생사학협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삶, 죽음에게 길을 묻다』, 『마지막 선물』, 『자살예방 해법은 있다 : 죽음 이해가 삶을 바꾼다』 등이 있고, 번역서로는 『티베트의 지혜』, 『죽음으로부터 배우는 삶의 지혜』, 『한글세대를 위한 금강 경』,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등이 있다.

 

『티베트 사자의 서』에 나타난 죽음과 사후세계

지혜경

연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전문연구원

 

『티베트 사자의 서』는 죽음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언급되는, 죽음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는 책 가운데 필독서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8세기 티베트에서 불교의 화신 으로 알려진 파드마 삼바바가 구술한 내용을 그의 파트너인 요기니 예셰 쵸걀이 기 록한 책으로 14세기에 릭진 카르마 링파가 티베트 북부지방의 한 동굴에서 찾았다 고 전해진다.

 

해탈을 돕는 책

『티베트 사자의 서』는 단순한 사후세계에 대한 안내서가 아니라 죽음 이후 다시는 윤회하지 않고 해탈할 수 있게 도와주는 책이다. 이 책의 원제는 바르도 퇴돌(Bardo Thosgrol)로 그 의미는 ‘중음에서 듣는 것만으로 얻게 되는 해탈’이다. 바르도는 죽음 과 환생 사이의 중간계, 중간 상태, 중음을 의미하며, 퇴돌(Thosgrol)은 듣는 것으로 인한 해탈을 의미한다. 『티베트 사자의 서』라는 제목은 첫 영어 번역서 출판 때 새롭게 지어진 이름으로, 영어 제목은 사후세계를 다룬 책이라는 의미만을 제시하지만, 원 제목은 살아 있는 이들에게든 죽은 이들에게든 죽음의 순간을 해탈의 기회로 만들 수 있게 도와주는 책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들음을 통해서 해탈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책이기 때문에, 이 책은 죽은 자의 해 탈을 위해서 읽어주는 의례서이며, 살아 있는 이들에게는 죽음 이후의 과정을 상세 하게 설명해주어서 죽음의 두려움을 대비할 수 있게 도와주는 안내서이다. 불교에서 중간계/중음은 다음 생을 준비하는 이들이 거쳐 가는 세계이다. 그런데 『티베트 사자의 서』에서 설명하고 있는 중간계는 기존 한국 불교의 중간계/중음 상 태의 이야기와 많이 다르다. 한국 불교에서는 중음의 기간인 49일 동안 7명의 재판 관들에게 그동안 살면서 행해왔던 일들에 대해서 재판을 받는다. 7명의 재판관들에 게 7번의 재판을 받고나서 맨 마지막에 여섯 개의 세계의 문 중 하나를 선택해 나가 면서 세상에 다시 태어나게 된다. 자신이 지은 업에 의해 선택하게 되므로, 결국 업 의 결과대로 받게 된다. 반면 『티베트 사자의 서』에서 보여주는 죽음 후의 세계에는 재판관에 의한 심판이 맨 마지막 단계, 다시 환생하기 직전에만 나오며, 그 이전에는 중간계마다 해탈할 수 있는 기회가 끊임없이 주어진다. 환생의 선택에 대해서도 어 떻게 하면 업에 끌려서 저절로 선택하게 될 것을 최대한 막고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게 할지 계속 설명해주고 있다. 또한 『티베트 사자의 서』는 한국 불교와 다른 독특 한 중음/중간계의 분류 체계를 가지고 있다. 이 책에서는 죽음 이후의 중간계를 죽 는 순간의 중간계, 실재를 경험하는 중간계, 환생의 중간계의 셋으로 나눈다.

 

죽는 순간의 중간계(치카이 바르도)

죽음이란 ‘나’라는 하나로 묶여 있던 존재가 분리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는 영혼 과 육체의 결합이 분리되는 것을 죽음으로 본다. 『티베트 사자의 서』는 이 해체의 과 정을 좀 더 세분해, 의식이 육체와 분리되는 4단계와 의식이 거친 의식에서 순수 의식으로 분리되는 4단계, 이렇게 총 8단계로 설명한다. 죽음의 순간이 다가옴에 따라 의식은 신기루, 자욱한 연기, 반딧불, 촛불의 이미지를 보게 되는데, 그것은 지수화풍 사대가 의식과 순서대로 분리되는 과정이다. 이어서 달빛 밝은 하늘, 햇빛 찬란한 하 늘, 순수한 어둠을 거쳐 투명한 새벽 빛을 보게 되는 것은 의식이 네 단계를 거쳐 해 체되는 과정이다. 이렇게 모든 결합들과 끊어져 투명해진 의식이 정수리를 통해서 빠져나가는 것이 죽음이다.  죽는 순간의 중간계는 육체와 의식이 해체되고 의식이 몸에서 빠져나간 직후까지 를 말하며 보통 3일 또는 4일 반 정도 지속된다고 한다. 이 중간계에서는 투명한 밝 은 빛의 이미지를 통해 두 번의 해탈 기회가 주어진다. 첫 번째는 호흡이 완전히 멈 추고 30분쯤 지나서 투명한 아주 밝은 빛이 잠깐 나타날 때이다. 대부분 생전에 수행 을 하지 않은 이들은 이를 잘 알아채지 못하기 때문에 이들을 위해 그 빛이 나타나 기 전에 살아 있는 이들이 이 책의 기도를 읊으며 알려주어야 한다. 두 번째 기회는

 

『티베트 사자의 서』는 죽은 자의 옆에서 길 안내를 하며 죽은 자의 의식이 해탈할 수 있게 최대한 도와주려는 책이다.

흥미롭게도 이 책은 죽음을 모든 것으로부터의 단절이 아닌, 오히려 윤회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날 수 있는 틈새의 시기로 보고 있다.

 

의식이 숨골을 통해 빠져나가는 순간에 첫 번째보다는 조금 약해진 투명한 빛이 나 타나는데, 이 빛이 유지되는 시간은 죽음을 맞이한 이의 수행력에 따라서 짧기도 하 고 좀 길기도 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투명한 빛과 해탈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티베트 사자의 서』에서는 죽 음의 순간의 중간계에서 보이는 이 투명한 빛의 상태에 머물며 빛과 하나 되는 것을 해탈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책을 죽은 자를 위해서 읽어줄 때, 오랜 기간 수행하고 죽음을 맞이한 이에게는 그 빛과 하나 되라고 이야기해주고,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 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좀 더 설명해주라고 한다. “오, 고귀한 가문의 자손이여, 지금부터 하는 말을 잘 듣기 바라오. 지금 근원적인 실재의 순수하고 투명한 빛이 그대에게 비치고 있소. 그것을 알아차리도록 하시오. 오, 고귀한 가문의 자손이여, 그 빛은 본래 투명하게 비어 있는 그대 자신의 의식이 라오. (…) 그대의 본래 의식은 물질적인 실체가 없는 비어 있음이라오. 끊임없이 빛 을 발하며 진동하고 있는 비어 있음, 즉 그대의 각성된 의식이 곧 붓다의 진리의 몸 이라오. 그대의 의식과 투명하게 비어 있는 무한한 빛은 구별할 수 없다오. 그대의 의식은 태어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영원한 빛의 붓다, 아미타부처라오. 이 점을 확 실히 인식하도록 하시오.” 이처럼 죽음의 순간에 보이는 투명한 빛이 근원적 실재이면서 나 자신의 의식이 라는 것을 알 때 근원적 실재와 하나가 되어 그 안에 머물면, 죽은 자는 해탈에 이르 게 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의식은 다음 중간계로 이동하게 된다.

 

실재를 경험하는 중간계(초에니 바르도)

실재를 경험하는 중간계에서는 자신의 살면서 지은 업에 따라서 다양한 환상들을 보게 된다. 처음 7일은 자애로운 모습의 부처와 보살이 나타나며, 두 번째 7일은 무 서운 모습의 신들이 나타난다. 처음 7일 동안은 다양한 빛과 함께 부처와 보살이 나 타나는데, 개인의 업에 따라서 이를 두려워하고 피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다. 매일 매일 나타나는 불보살이 다르기 때문에, 신성한 빛도 매일매일 다르다. 여기에서 잘 못된 빛을 따라가게 되면, 육도(천상, 지옥, 아귀, 아수라, 인간, 축생)에 태어나게 된다. 이때 불보살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버리고 앞서의 가르침대로 불보살의 빛을 따라 불보살 과 하나가 되면, 해탈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처음 7일 동안 해탈을 얻지 못하면 이어 지는 이후 7일 동안은 무서운 신들과 마주하게 된다. 무서운 신들과 마주했을 때는 그들이 자애로운 불보살들의 다른 모습임을 알기만 하면 무서운 신들과 하나 되고 해탈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죽은 자에게 들려주 라고 한다. “자애로운 모습과 무서운 모습의 신들, 피를 마시는 헤루까 신들, 동물 머리를 한 여신들, 붓다와 보살들에게서 발산되는 무지갯빛 그리고 야마의 사자들은 모두 그대 의 의식이 만들어낸 환상이라오. 객관적으로 실체를 가지고 있는 존재는 하나도 없 소. 이 점을 확실히 이해한다면 그 순간 두려움과 공포가 사라질 것이오. 그리고 그 들과 하나로 결합하여 붓다가 될 것이오. 그러기 위해 그대는 그들에 대한 강한 믿음 을 갖고 이렇게 생각하시오. 이들은 나를 중간계의 어려움에서 건져주기 위해서 온 수호불들이다. 그러니 이제 이들에게 나를 맡기겠다.” 죽음의 순간의 중간계에서는 빛만이 보이기에 그 빛이 부처이고, 나의 의식임을 알고 하나 됨을 이루면 해탈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실재를 경험하는 중간계에서는 업 에 따라 다양한 신들의 모습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우선 그 실체가 무엇인지 정확히 인지하고 난 후, 그들이 모두 나의 의식이 만들어낸 환상임을 알고, 그들과 하나로 결합할 때 해탈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실재를 경험하는 중간계에서 이러한 가르 침을 듣고도 따르지 못해 해탈하지 못하면, 환생의 중간계로 나아가게 된다.

 

환생의 중간계(시드파 바르도)

환생의 중간계에서는 몸이 좀 더 구체화되고 몸에 대한 애착이 생겨서 전생과 내 생의 몸을 함께 갖는다. 전생의 몸은 이전의 업과 기억에 의해 구성되는 몸으로 4일반 동안 갖게 된다. 내생의 몸은 앞으로 갖게 될 몸에 대한 환상에 의해 구성되는 몸 이다. 여기에서 몸에 대한 애착을 내게 되면 내생의 몸에 대한 환상에 따라 환생하게 된다. 이 중간계에 머무는 동안 의식이 구성한 몸은 다양한 신통력을 갖게 되고, 이어 서 심판의 신을 만나 전생의 업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이때에도 이 모든 것이 의식이 만든 환상임을 알아차려야 해탈할 수 있다. 그러나 해탈하지 못하고 감정에 휩쓸려 애착을 내게 되면 이에 따라 환생과 윤회의 길을 가게 된다. 환생의 중간계에 는 죽은 이의 수행 정도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지만, 21일간 의식이 머문다고 한다. 이전의 중간계와 비교해볼 때, 환생의 중간계는 나에 대한 애착이 생긴다. 그래서 비록 이 모든 것이 결국 의식이 만든 환상임을 알아차리기 힘든 상황으로 가게 되더 라도, 해탈하는 방법이 있다. 의식이 자궁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으면 환생의 과정을 멈추고 해탈하게 된다. 자궁을 막는 법은 애착을 갖게 하는 이미지들 대신에 다른 이 미지, 예를 들어 신성한 존재의 이미지를 시각화하는 명상을 하거나 그것도 안 되는 경우에는 모든 것이 환상이라는 생각에 집중하는 명상을 한다. 이 방법으로도 자궁 을 막지 못하면 “모든 것이 내 마음이며 이 마음은 비어 있다. 마음은 태어나지도 않 고 소멸되지도 않는다”는 생각을 하면서 명상을 한다. 그럼에도 자궁을 막지 못한 단 계에 이른 자를 위해 이 책은 결국 죽은 자의 해탈을 포기하고, 자궁을 선택해서 더 나은 곳에 환생하는 법을 알려준다. 자궁을 선택해서 환생하는 법은 극락세계에 태어나는 법과 인간 세상에 태어나는 법이 있다. 좋은 곳에 환생하는 것을 돕기 위해 이 책에서는 업에 의해 보이는 세계 들이 어떤 세계인지 설명하고, 업에 의해서 무서운 악령들로부터 쫓기는 상황이 올 수 있음을 경고하며 급하게 선택하지 말라고 한다. 그리고 다음 생에 불국토/정토나 인간세계에 태어나는 방법을 알려준다.

 

죽음의 두려움을 해소하는 책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티베트 사자의 서』는 죽은 자의 옆에서 길 안내를 하며 죽은 자의 의식이 해탈할 수 있게 최대한 도와주려는 책이다. 심지어 환생의 중간 계에 이르렀을 때에도 자궁을 막아 환생을 막고 해탈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럼에도 환생을 할 수밖에 없는 이를 위해서는 가능하면 극락세계에, 정 안 되면 인간세계에 태어날 수 있게 도와주고자 한다. 흥미롭게도 이 책은 죽음을 모든 것으로부터의 단 절이 아닌, 오히려 윤회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날 수 있는 틈새의 시기라고 보고 있다. 죽음이 윤회가 아닌 해탈의 기회를 준다고 한다면, 같은 죽음인 안락사나 자살은 어떨까? 그 두 가지 죽음도 해탈의 기회가 될 수 있을까? 일반적 죽음과 달리 안락사 와 자살은 고통에 대한 강한 단절의 욕망을 근거로 하고, 고통으로부터 내가 자유로 워지고 싶다는 강한 자의식에서 기반한다. 강한 욕망과 강한 자의식의 업을 가진 의 식이 과연 죽음 직후, 내가 투명한 빛을 본다는 의식을 버리고, 나와 투명한 빛과 하 나임을 인지하고 두려움 없이 하나 됨을 추구할 수 있을까?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자 살이나 안락사는 자유의 길이 아니라 윤회의 길로 가기가 더 쉽다 하겠다. 『티베트 사자의 서』는 해탈의 희망을 가지고 죽음을 마주할 수 있게 도와준다. 죽 음 이후 의식이 겪게 되는 일들을 꼼꼼히 안내해주고, 수행을 열심히 하거나, 사후 이 책의 가르침을 들으면 해탈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그 방법을 제시해준다. 그래 서 죽음의 두려움을 느낄 때, 죽음에 대해 성찰하고자 할 때 읽어보면 좋은 책이다.

지혜경 연세대학교 철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철학박사).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박사 후 전문연구원을 거쳐 버지니아 대학교에서 방문학자로 한국의 종교, 일본의 종교 등을, 연세대에서도 강의했다. 현재는 연세대 인문학연구원 전문연구원이자 세계인문학포럼 사무국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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