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인공지능|TV 부처와 인공지능 부처 (1)__석봉래

TV 부처와 인공지능 부처 (1)

석봉래

미국 앨버니아 대학교 니액 연구 교수

백남준(白南準, 1932~2006)은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로 널리 알려진 설치 예술가다. 그는 TV 같은 전자제품과 비디오 이미지를 이용해 현대 기술의 상업적 이미지와 기술 문명에 대한 인간의 경험을 결합하고 있다. 그의 작품 중에 「TV 부처」(1974, TV Buddha)라는 작품이 있다. 이 작품에는 작은 부처 좌상이 있고 그 앞에 TV 한 대와 비디오카메라가 놓여 있다. 즉 부처님이 TV를 시청하는 것인데 이 TV에는 그 자리에서 비디오카메라로 촬영된 부처님 자신의 이미지가 나타나 있다. 즉 부처님이 자신의 이미지를 TV로 시청하고 있는 장면을 연출한 작품이다. 필자는 이 작품을 직접 관람할 기회가 있었는데 불교의 고고한 정신세계가 상업적 정보 통신 문화와 마주하고 있는 장면이 매우 놀라웠다. 도도히 이어져온 불교의 정신세계와 새로운 기술로 무장한 상업 문명이 맞대면을 하고 있는 장면은 마치 무사 두 명이 결투를 벌이려고 하는 순간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 작품은 부처의 자세가 TV로 대변되는 기술 문명을 통찰하고 다스리는 느낌을 주었다. 부처가 TV와 대화를 하거나 스스로를 바라보면서 명상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TV와 비디오가 백남준 작가가 활동한 20세기의 기계적 상업 문명의 화두였다면 이제는 인공지능(人工知能, Artificial Intelligence, 인간의 지적 능력으로 해결할 만한 정도의 복합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개발된 정보처리 체계)으로 대변되는 정보 통신 산업이 인간 생활에 가장 영향력을 미치는 신기술이 아닐까 한다.

백남준 작가가 오늘까지 작품 활동을 했다면 아마도 인공지능 체계인 알파고(Alpha Go: 바둑 경기에 특화된 인공지능 체계)나 왓슨(Watson: IBM에서 개발한 인공지능 체계)에서 영감을 얻어 작품 활동을 하지 않았을까 한다. ‘TV 부처’가 지나가고 이제는 ‘인공지능 부처’가 나올 법한 시대가 된 것이다. 알파붓다(Alpha Buddha) 같은 체계가 나와서 저명한 스님들과 선문답을 하고 불경 해석을 하는 경쟁을 벌이는 일이 생길까? 알파고와 이세돌 기사가 만나서 대결했듯이 알파붓다와 원효대사가 만나서 불경을 놓고 토론한다면 누가 이길까? 이런 경쟁적 구도는 사실 흥미를 돋우기는 하지만 인공지능에 대한 차분한 이해를 돕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정신생활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불교와 현재 과학기술의 대표 격이 되는 인공지능과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불교와 인공지능 사이에는 무슨 연결 관계가 있을까? 이 둘은 공생할 것인가? 그리고 인공지능 부처가 가능하기나 한 것인가?

놀랍게도 불교와 인공지능의 접점은 생각보다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인공지능을 장착한 로봇 승려가 이미 만들어졌다고 한다. 중국 베이징의 용천사(龍泉寺, Longquan Temple)에는 샨어(Xian’er, 二)라는 로봇 승려가 있다. 샨어는 이 절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안내해주고 불경을 찾아서 읽어주는 일을 하는 로봇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일본에는 페퍼(Pepper)라는 장례를 진행하는 승려 로봇이 있다고 한다. 비용도 많이 들고 절차가 복잡한 일본식 장례를 이 로봇은 매우 저렴한 비용으로 잘 진행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불교도 인공지능화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인공지능과 기계의 생각

많은 미래학자들과 경제학자들은 미래의 산업을 4차 산업혁명을 통한 혁신과 효율성으로 설명한다. 이러한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정보 통신의 발전을 통한 융합과 연결이다. 일상적 삶에서 4차 산업은 사물인터넷(IoT, Internet of Things, 일상 용품을 무선 인터넷을 연결해 상호 연동과 종합적 통제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나 스마트 기능(기계의 본래적 기능에는 없는 다양한 기능들을 통신망을 통해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의 확장이라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휴대전화나 가정용품의 스마트 기능은 무선 통신망을 통해 원거리 서버에 다양한 정보를 축적하고 이를 여러 상황에서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있게 해준다. 단순한 예를 들자면 하루 섭취한 음식의 양과, 수면 시간과 걸은 거리의 정보들이 손목시계 같은 장치를 통해 유선으로 전송되면 이들이 종합되어 냉장고와 쇼핑 패턴과 건강 정보로 통합된다. 그리고 이것이 사용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이용되고 타인에게도 전달될 수 있다. 미래는 컴퓨터가 도움을 주는 똑똑한 기계의 세상인 것이다. 이러한 복잡한 정보를 효과적으로 처리하는 기계의 세상은 정보를 매우 빠른 속도로 정리하고 처리하는 컴퓨터와 컴퓨터의 능력이 극대화된 인공지능의 세상인 것이다. 알파고가 바둑의 천재를 이기고 로봇이 의사의 진료나 수술을 대신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인공지능의 미래는 놀라운 신세계인가 아니면 인간이 기계의 노예가 되는 달콤한 지옥인가?

2017년 한 신문사가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는 인공지능, 생명공학, 사물인터넷, 로봇공학 등이 미래의 성장을 이끌 새로운 산업으로 드러났는데 이들이 가져올 부작용도 조사되었다. 이런 부작용에는 양극화, 대량 실업, 인간 가치의 하락, 그리고 기계의 인간 지배 등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새로운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생활뿐만 아니라 마음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기계화와 자동화가 인간에 도움을 주고 삶을 편리하게 해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인간을 기계적 방식에 암묵적으로 동화되게 만든다. 텍스트 메시지와 이메일을 사용하면서 장문의 긴 편지를 쓰는 일이 줄어들었다. 생각은 짧고 기억은 단편화되었으며 오랫동안 집중하고 느낄 수 없는 피상적인 경험만 늘게 되었다. 소셜 미디어(Social Media)나 온라인 미디어(Online Media)를 사용하면서 실제로 얼굴을 맞대고 느꼈던 인간관계의 깊은 측면들이 이제는 컴퓨터 스크린의 사진과 해시태그(hashtag)로 장식된 짧은 메시지로 바뀌었다. 인간관계는 #인간관계#가 되었다. 편리하고 빠르게 소식을 나눌 수 있지만 번뇌와 고통에 빠질 확률은 낮아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조급함과 자기를 과시할 욕심 때문에 그 확률이 더 높아지는 것이 아닌가 한다. 내 마음이 어떤지를 돌아보기보다는 기계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무의식적으로 더 살피게 된 시대가 되었다.

중국 고전 『장자(莊子)』의 「천지편(天地篇)」에 보면 기계 사용을 거부하는 농부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 농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기계를 가진 사람은 항상 기계로 일하게 되고 기계로 일하는 사람은 기계와 같은 마음을 갖는다. 기계와 같은 마음을 가지면 순수함이 없어지고 마음에 불안이 생기고 도(道)를 살릴 수 없게 된다.” 기계를 사용하면 기계의 마음이 생긴다는 농부의 말은 많은 점을 시사한다. 얼마 전에 「구글은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가(How is Google changing the way we think)?」라는 글이 미국의 신문 기사와 온라인 포럼에 올라온 적이 있다. 실제로 인터넷과 디지털 미디어가 인간의 두뇌 기능과 사고 기능에 미치는 것과 관련한 연구는 심리학과 신경과학 분야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단적인 예를 들자면 2011년 『사이언스(Science)』라는 저명한 학술지에 실린 논문(「기억 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구글, Google Effects on Memory」)에 따르면 구글과 같은 온라인 매체를 자주 사용하는 학생들은 그렇지 않은 학생들보다 단기 기억에 많이 의존하지만 심도 있는 비판적 사고에 필수적인 장기 기억 능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구글과 같은 온라인 매체를 자주 이용하다 보면 주어진 문제를 깊이 생각하기보다는 생각 자체를 외부 기계로 돌리는 인지적 하청(cognitive outsourcing) 작업 습관이 생긴다. 스스로 생각하고 고민하기보다는 기계에 떠넘기는 일이 반복된다. 휴대전화에 전화번호를 저장하고 다니다 보면 친구들의 전화번호를 기억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전화번호 같은 것은 단순한 정보이니 그렇다고 해도 심도 있는 내용들은 온라인 매체에 떠넘기는 것은 걱정스러운 현상이다. 언제든 구글에서 정보를 찾을 수 있으니 메모를 하거나 생각을 깊이 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기계를 사용하면서 기계의 마음을 갖는다는 것은 바로 이런 변화를 말하는 것이리라.

기계의 사용을 통한 생각과 마음의 변화는 단지 구글의 사용에만 국한되는 현상은 아니다. 전자메일(email)과 카카오톡(Kakao Talk), 트위터(Twitter), 페이스북(Facebook) 등등이 우리 생활에 깊이 파고들고 있으며 이들도 우리 생각과 마음에 영향을 미친다. 처음에 많은 사람들은 이런 온라인 체계를 단순한 매체(medium)로 생각했다. 이들은 연락과 소통을 위한 도구라는 것이다. 그 말은 맞다. 이들은 일정한 목적 달성을 위한 편의적 도구이다. 하지만 곧 이들이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전달되는 내용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형식과 내용 그리고 도구와 사용을 구분하려는 사람들을 충격에 몰아넣는다. 형식은 내용이 되고 도구는 사용에 영향을 미친다. 미디어 이론으로 유명한 캐나다의 철학자 맥루한(Herbert Marshall McLuhan, 1911~1980)은 “매체가 곧 의미다(The medium is the meaning)”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같은 내용이라도 온라인 매체로 전달되는 것과 손으로 쓴 편지로 전달되는 것은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느낌을 넘어서서 그 내용도 달라진다. 그런데 이제는 매체가 의미를 넘어서서 우리의 생각 방식도 바꾸고 있다. 그래서 필자는 온라인 매체의 사용을 통해 단기 기억의 약진과 장기 기억과 심도 있는 사고의 쇠퇴를 보면서 “매체가 생각이다(The medium is the thought)”라는 주장을 하고 싶다. 온라인 매체는 우리의 사고뿐만 아니라 글쓰기 패턴도 바꾸었다. 예전에는 손 편지를 보내 의사를 전달했지만 이제는 그런 시대는 지난 것 같다. 소식을 전하고 마음을 나누는 것이 너무 편리해졌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깊이 있는 내용을 가진 글쓰기가 퇴화되고 있다. 글쓰기의 역사는 아마 텍스팅(texting)이 개발되기 전과 텍스팅이 사용된 후로 나누어질 것이다. 텍스팅이나 이메일을 하면서 누구도 길고 아름답게 예를 갖추어 글을 쓰지 않는다. 이런 정중한 글쓰기는 너무 촌스러워졌다. 아니 불가능해졌다. 더불어 생각도 진중하게 혹은 신중하게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단편적으로 분산되는 경향이 강해졌다. 이제 우리는 은연중에 기계의 마음을 가지고 느끼고 생각하고 쓰게 되었다. 이렇게 우리는 21세기를 기계의 마음으로 살고 있다.

__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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