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 세상 읽기|장 미셸 우구를리앙의 『욕망의 탄생』__정여울

‘끊임없는 모방의 욕망’을 넘어서

『욕망의 탄생』

 

나는 일방적인 주입식 강의보다는 다양한 질문과 의견을 교환하는 소통형 강의를 좋아한다. 강의 중간이나 마지막에 청중들의 질문이 많이 나오는 날엔 유난히 뿌듯해진다. 독자들의 마음이 담긴 다채로운 질문을 통해 청중에게 한 발짝 성큼 다가가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강의를 듣는 사람들의 솔직한 생각에 귀 기울이면, 한 사람 한 사람과 조금이라도 더 깊은 친밀감을 쌓아가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질의응답 시간이 되면 거의 예외 없이 나타나는 현상이 있다. 첫 번째 질문이 나오기 전에는 짧은 ‘침묵의 시간’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이럴 때 누군가 용기를 내어 첫 번째 질문을 하면 그때부터 우후죽순처럼 질문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질문을 하고 싶은 사람이 늘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침묵의 시간이 찾아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을 해도 괜찮을까’ 하는 조바심 때문일 수도 있고, ‘질문을 하면 내 생각이 그대로 드러나지 않을까’ 하는 부끄러움 때문일 수도 있다. 이럴 때 첫 번째 질문자가 나타나 용감하게 질문을 하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마치 파도타기를 하듯 그 사람의 용기에 전염되어 질문을 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모방 효과’다. 첫 번째 질문을 하는 것이 가장 큰 용기가 필요하고 그 이후에는 일종의 긍정적인 모방 효과가 나타나 저 사람처럼 나도 궁금증을 해결해야겠다는 결심을 유발하는 것이다.

 

나는 항상 욕망이 인간관계의 핵심이자 원동력이며 우리를 생(生)으로 이끄는 첫번째 운동이라고 생각해왔다. 수년의 연구와 임상을 거친 끝에 나는 우리를 인간이게 하고 하나로 모이게 할 뿐 아니라,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우리를 서로 닮은 존재로 만드는 것이 바로 욕망이라고 믿게 되었다. 욕망은 우리에게 생명을 불어넣고 감정을 일깨우는 만큼이나 우리 성격을 결정짓기도 한다. 그러나 욕망은 우리가 타인과 가까워지도록, 다시 말해 다른 사람들의 감정과 우정과 지지와 인정을 추구하게도 하는 반면, 경쟁을 일으키고 사랑만큼이나 증오를 유발하기도 한다. __『욕망의 탄생』 중에서

 

『욕망의 탄생』은 문학평론가이자 인류학자였던 르네 지라르의 ‘욕망의 모방’ 이론을 적용해 현대인이 앓고 있는 수많은 정신적 질병들을 치유하는 모색의 과정을 보여준다. 심리 상담을 통해 사람들의 정신적 고통을 치료해온 저자는 르네 지라르의 모방 이론을 탐구해 그 이론을 현대 사회의 여러 문제들에 적용해본다. 르네 지라르 이론의 출발은 인간의 욕망은 기본적으로 자연발생적이라거나 창조적이기보다는 모방의 열망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돈키호테가 중세 기사도 소설을 읽고 “나도 이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위대한 영웅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하며 허무맹랑하고도 위험천만한 여행을 떠나는 것도 기사도 소설에 대한 ‘모방의 욕망’ 때문이고, 이런 모방에서 ‘경쟁’이 초래되고, 경쟁 때문에 폭력이 일어나며, 폭력을 해결하기 위해 ‘희생양’을 찾는 방식으로 인간은 공동체를 유지해왔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이런 사례를 들어 ‘모방’과 ‘희생양’의 메커니즘을 보여준다.

부부는 두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들 스스로의 문제를 창조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제3자, 즉 희생양을 내세워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어쩌면 지금까지 부부간의 갈등을 해결해온 방식도 아이가 생길 때마다 조금씩 관계가 나아졌다는 ‘경험의 모방’이거나, 다른 부부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서 가져온 모방의 아이디어일 수 있다. 하지만 ‘셋째 아이’를 갖는 것, 즉 갈등의 희생양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결코 효과적이지 않았다. 아이는 자신의 탄생을 있는 그대로 축복받지 못하고 부모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될 위험에 처해 있었다. 아이는 아이로서 환영받고 사랑받을 권리가 있지만, 이 경우에는 아이가 얼어붙은 관계의 틈새를 메우는 접착제처럼 쓰인 것이다. 아이는 그 자체로 축복받거나 사랑받지 못하고 상징적이고 도구적으로 희생되어버렸으며, 두 사람은 결국 이혼함으로써 아이에게 커다란 상처를 주게 된다. 이렇듯 가족 안에서 욕망의 모방은 빈번하게 일어난다. 사랑과 이해, 배려와 존중의 분위기 속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그 가족의 모습을 미래의 인생에서도 모방하려고 애쓰게 되고, 학대와 폭력, 갈등과 공격의 분위기 속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그 부정적인 욕망을 모방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 쉽다는 것이다.

부모의 심각한 갈등은 아이에게 ‘상징적인 화재’였고, 아이가 집에 불을 지른 것은 그 상징적 화재의 ‘모방’이라는 해석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부모의 트라우마가 아이들에게 유전된다는 현대 심리학의 발견과 궁극적으로 동일한 해석이다. 그렇다면 이 끔찍한 모방의 연쇄 사슬을 어떻게 끊을 수 있을까. 작가는 모든 심리 치유의 최종 목표가 바로 “환자들을 지혜롭게, 그러니까 행복으로 들어설 수 있게 유도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치유의 지혜란 바로 “자신이 가진 것을 욕망하는 것을 배우는 것”, 즉 타인의 욕망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마음 깊은 곳에서 원하는 것을 발견하고 성장시키는 마음의 에너지다.

쇼핑 사이트나 광고를 자꾸 보면 필요하지도 않은 물품을 계속 구매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이미 샴푸가 있는데도 아름다운 머릿결을 자랑하는 모델의 모습을 보면 ‘나도 저런 머릿결을 갖고 싶다’는 욕망을 자극받게 되어 필요 없는 샴푸를 또 사게 되는 것처럼, 우리는 ‘저 멋진 사람과 비슷해질 수 있다’는 희망 때문에 헛된 모방 욕구에 소중한 시간과 돈을 낭비하곤 한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광고를 통해 ‘타인의 욕망을 모방하라’는 요구 속에 시달리고, 유명인들의 패션과 그들의 생각까지 모방함으로써 ‘진정한 나 자신이 되어가는 길’을 잃어버릴 위험에 처할 수 있다. 미디어에 시선을 두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모방의 욕구에 휘둘릴 가능성도 높아진다. 휴대전화를 오래 쳐다볼수록, 인터넷 서핑을 오래할수록, 우리는 더욱 ‘유명인의 삶을 모방하고 싶은 욕구, 자본주의의 소비적 쾌락에 돈을 지불하고 싶은 욕구’를 오래, 더 깊이 주입받게 된다. 그리하여 현대 사회에서 창조적인 삶이란 대중을 향한 모방 욕망과의 투쟁이다. 획일화된 대중이 되지 않는 것, 상업적 모방의 욕구에 시달리는 상품화된 대중이 되지 않는 것, 그리하여 내 머리로 철학하고, 내 가슴으로 사랑하고, 나만의 삶으로 세상을 가꾸어가는 용기를 잃지 않을 때 우리는 그 끊임없는 욕망의 도미노 효과로부터 마침내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욕망의 탄생』 장 미셸 우구를리앙 지음,

김진식 옮김,

문학과지성사 刊, 2018

 

 

내 머리로 철학하고, 내 가슴으로 사랑하고, 나만의 삶으로 세상을 가꾸어가는 용기를 잃지 않을 때

우리는 그 끊임없는 욕망의 도미노 효과로부터 마침내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정여울 작가. 저서로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월간정여울-똑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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