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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전생의 옛 끝은 우주의 시원

이각범

본지 발행인

 

우리들 전생의 옛 끝은 우주의 시원(始原)에 닿아 있다.

우주는 무(無)1)에서 시작했으므로 우리들의 전생 또한 무에서 시작했다.

이것은 모든 유위법(有爲法)에 예외 없이 해당된다.

우주는 아직도 팽창하고 있다. 우주가 팽창하는 속도는 빛의 속도보다도 빠르다. 물리학자들이 우주의 나이를 계산할 때 빛의 속도를 기본 단위로 원용하는데, 빛의 속도보다도 빠른 팽창 운동이 우주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우주에 대 해 탐구해야 할 과제가 그만큼 많다는 것을 알려준다.

 

1) 무(無)란 없음이 아니라 현 시공체계(時空體系)에 존재하지 않는 존재를 말한다. 우주를 만든 시원은 시간 도 없고, 공간도 없는 에너지의 집합체였다. 이때의 에너지 총량은 현재 전체 우주의 에너지 총량과 일 치해 에너지(총량) 불변의 법칙은 우주의 탄생 전과 후에 같이 적용된다. 색불이공(色不異空) 공불이색(空 不異色)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의 이치가 우주의 있고 없음을 초월해 관통한다.

 

우리의 전생 또한 그 시작을 알 수 없다. 이는 “우주가 생기기 전에 무엇이 있었을 까” 하는 질문이 성립할 수 없는 이유와도 같다. 우리가 지각하는 시간의 흐름은 우 주가 생겨나면서 만들어진 시공체계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고 사는 이 시공체계는 마치 잘 갈아놓은 대리석 위에 펼쳐진 네모반듯한 카펫 같은 것이 아 니다. 시간은 공간에 연동되어 있다. 우주의 공간 어느 곳에 위치하느냐에 따라서 시 간은 전혀 다른 속도로 흐른다. 우주 공간의 어느 한편에는 주름 잡히고 뒤틀어진 곳 이 있어서, 그곳에는 시간의 흐름이 뒤바뀌기도 한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블랙홀은 바로 시공체계가 리셋(reset)하는 곳이다. 우리가 경험했던 과거가 우리의 미래가 되 고 우리의 현재가 되기도 하며, 동시에 그 반대가 되기도 한다. 미래 블랙홀 속의 나 는 과거의 나와 실시간 교신하기도 한다.

이러한 연고로 이 넓은 우주 속, 또 영겁의 세월 속 우리의 작은 마음에 점 하나 찍 을 곳이 없다.

 

과거심 불가득(過去心 不可得),

현재심 불가득(現在心 不可得),

미래심 불가득(未來心 不可得)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언젠가 존재했던 별들이 죽으면서 내보낸 물질들이 모 여서 새롭게 생성된 것이다. 우리 지구도 언젠가는 죽으면서 새로운 별의 탄생을 위 해 스스로의 몸을 내어놓게 될 것이다. 우리들 자신 또한 많은 생명이 죽어가면서 내 어놓은 에너지로 살아가고 있다. 우리들의 현생은 많은 전생의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른 것이다. 우리들 스스로 앞으로 태어날 많은 생명을 위해 죽을 것이며, 다시 생 을 얻는 윤회의 과정을 반복할 것이다.

지금까지 우주 전체의 나이를 24시라고 할 때 인류의 탄생은 23시 59분쯤에 해당 한다고 한다. 따라서 우리는 인간이 아닌 존재로 산 많은 전생 경험을 가지고 있다.

우리 모두는 우주의 중심이다. 우리 모두는 우리의 자유의지에 의해서 태어났다.

앞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 역시 우리의 자유의지에 의해서 태어나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우주의 중심에 자리 잡은 자유인(自由人)이다.

그리고 이생을 마감하고 긴 윤회의 길에서 새로운 생을 찾아 나설 것이다.

 

살아 있는 작은 미물에게도 자비심을 가지라는 가르침은 우리가 과거에도 그것이었 고, 앞으로 미래에도 그것일 것이므로 동체대비(同體大悲)의 깨달음을 행하라는 뜻이 다. 굳이 따로 아상(我相)을 내어 보시하는 마음을 내라는 뜻이 아니라 머무르는 곳 없이 마음을 내라는 뜻이다.

우주에는 중심이 따로 없다. 별이 새롭게 탄생하면 확장하는 우주의 외연에 위치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별이 우주 내부에 있으면서 우주 전체가 확장할 뿐이다. 우주 의 어느 곳에 위치해도 그곳을 중심이라고 할 수도 있으므로 우리 모두가 위치하는 곳이 바로 우주의 중심이다.

우리 모두는 우리의 자유의지에 의해서 태어났다. 우리 모두는 간절한 마음으로 치열한 경쟁을 뚫고 기적같이 이곳에 태어났다. 앞으로 우리가 새롭게 태어나는 단 계에서도 우리는 자유의지로 새로운 삶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는 우주의 중심에 자리 잡은 자유인(自由人)이다. 그리고 이생을 마감하고 새로운 생을 찾아 나서는 긴 윤회의 여정(旅程)에 나서게 될 것이다.

우리가 오고 가는 윤회의 길은 마치 올림픽 때마다 진행되는 성화 봉송 경로와 같 다. 그리스 올림피아의 헤라 신전에서 채화된 성화가 여러 길과 여러 단계를 거쳐 최 종적으로 올림픽 메인 스타디움의 성화대에 점화되는데, 그 많은 봉송 주자들이 들 고 뛴 불 중 어느 불이 메인 스타디움에서 타고 있는 불인가를 찾기 어려운 것처럼 과거 전생 중에서 어느 생이 나의 현재 생과 연결되는가를 찾기가 어렵다. 그 많은 단계를 연결해 마침내 메인 스타디움에서 타오르는 불이 가리키는 바는 제법무아(諸 法無我)이다.

2019년 1월호 『불교문화』는 일반 불자를 포함한 대중의 지대한 관심 대상인 ‘전생 은 있는가’를 정식 주제로 내걸고 진지한 토론을 촉발하려는 목적으로 기획되었다. 우리에게도 ‘윤회와 전생’에 대해 설화 형태로 많은 문헌이 있고, 최근 서양에서는 직전 전생과 만난 경험에 대해 꽤 많은 사례가 소개되고 있다. 이러한 논의 속에서 조심스러운 것은 불교가 신비주의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직전 전생 과의 만남을 굳이 부정하지 않는다. 그 전생을 경험하고 그 전생의 현존재(Dasein)를 생생하게 인식하는 사람에게 굳이 개인의 특수한 경험을 무시하라고 이야기하는 것 은 무모한 것이다. 다만 불교에서 말하는 전생이란 바로 직전의 전생만이 아니라 우 주의 시원(始原)과 연결되는 전생 전체를 의미하는 것이다.

불교는 종교라는 테두리에 묶어두기에도 무리가 있는 과학이다. 현대물리학의 발 전으로 부처님께서 설하신 경전 속의 그 많은 가르침이 과학적 진리 위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이러한 밝혀짐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현대물리학은 과학적 추론과 이를 증명하는 실험이라는 방법론을 통해 존재하는 대상에 국한해 존재와 운동의 원리를 밝힌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과학이 발전하지 않은 이미 그 오래전 시절에 설하신 것임에도 오늘날 현대 과학의 이론에 전혀 모순 되지 않는다. 부처님은 각고의 수행과 종국의 선정(禪定)으로 과학이 탐구하는 대상 과 차원을 뛰어넘으며, 존재의 경계를 벗어나는 궁극적 진리를 밝히셨다. 부처님이 제시하신 바는 존재에 착(着)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있고 없음을 벗어난 수승한 경 지이다.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

여로역여전(如露亦如電)

 

“전생은 있는가”라는 주제는 분석하고 따지거나 경험적 사례를 모아서 밝힐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그럼에도 대중이 갖고 있는 지대한 관심에 대해 지식의 편린(片 鱗)이나마 편집하여 제시함으로써 “전생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생각의 소재를 제시하고자 했다. 불교경전 중에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전생에 관한 부분들을 모아 보기도 하였다. 부처님의 말씀은 그때그때, 장소에 따라 사람들의 근기를 살피셔서 펼치신 방편설이다. 그러한 연고로 부처님께서는 대열반을 앞두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의 말을 기록으로 남기지 말라”는 당부를 하셨다. 그럼에도 그 방대 한 말씀을 후대에 전해, 많은 중생들이 반야선을 타고 깨달음의 저 언덕에 도달할 수 있도록 10대 제자와 아라한들이 경전을 펴낸 것은 자신의 몸을 불태우는 것 같은 중 대한 결심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위대한 스승이신 석가모니불께서 경책하신 바대로 경전의 자구 (字句) 하나하나에 얽매이지 말고, 부처님께서 최후로 남기신 가르침인 자등명 법등 명(自燈明 法燈明)하며 전생을 바라보는 우리 스스로의 등불을 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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