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책 읽기 세상 읽기|정현채의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 없는가』__정여울

아름다운 스러짐을
생각하다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 없는가』

 

정현채 지음,
비아북 刊, 2018

 

“죽음은 광대한 경험의 영역이다. 나는 힘이 닿는 한 열심히, 충만하게 살아왔으므로 기쁘고 희망에 차서 간다.

죽음은 옮겨감이나 또 다른 깨어남이므로 모든 삶의 다른 국면에서처럼 어느 경우든 환영해야 한다.”
– 스콧 니어링

 

비명횡사, 급사, 요절, 과로사 등 ‘죽음’과 관련한 단어들의 특징은 죽음에 대한 강렬한 공포와 부정적인 감정을 농축하고 있다는 점이다. 승하, 서거, 선종 등 특정한 사람의 죽음을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단어들 또한 죽음의 본래 의미보다는 죽음을 무언가 우아하고 격조 높은 그 무엇으로 ‘격상’시키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죽음을 표현하는 단어들에서는 대부분 죽음 ‘자체’를 현실적으로 묘사한다기보다는 죽음을 뭔가 ‘다른 것’으로 바꿔 부르려는 의지가 느껴진다. 요컨대 우리는 죽음을 묘사하면서도 죽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느낌이다. 죽음을 가리키는 수많은 완곡어법이나 자극적인 표현들 속에는 죽음을 좀 더 정직하고 꾸밈없이, 담백하고 냉철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인간의 공포가 묻어 있다. 하지만 죽음은 언젠가는 경험해야 하는 ‘삶의 소중한 일부’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무섭지만, 최대한 나중으로 미루고 싶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이 아닌 오직 나 자신이 마주해야만 하는 중요한 것. 그것이야말로 죽음에 대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진실이다.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 없는가』는 바로 이런 죽음의 불가피성을 좀 더 겸허한 마음으로, 좀 더 현실적인자세로 탐구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죽음학 전도사’ 정현채 서울대 의대 교수는 과학자의 눈으로 바라본 죽음의 세계를 보여준
다. 그 세계는 그저 차갑고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세계가 아니라 ‘육체적인 죽음이 곧 끝이 아니다’라는 뜻밖의 관점을 보여준다. 그는 의학 저널 『랜싯(Lancet)』을 비롯한 수많은 연구 논문을 통해 근사 체험 사례를 공부했고, 그럼으로써 죽음이란 사방이 꽉 막혀 있는 벽이 아니라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문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고 한다. 즉 죽음은 단순한 종말이 아니라는것, 죽음 이후의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자살하는 사람들도 크게 줄어들 것이며 말기 암 환자들을 비롯한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느끼는 공포도 현저하게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의사의 의무는 단지 사람을 ‘살리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뿐만 아니라 ‘죽음’의 의미를 제대로 사유하고 직면해 언젠가는 존엄한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것이라는 자각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2018년 초 갑작스럽게 암 진단을 받은 뒤 두 번의 수술과 항암 치료를 받으며 죽음이 바로 ‘나 자신의 문제’라는 자각과 함께 이 책을 더욱 절실한 마음으로 준비하게 된다. 그는 암 투병 이후에 오히려 더욱 활발하게 대중 강연을 다니며 ‘어떻게 존엄하게 죽을 것인가’라는 매우 중요한 문제를 사람들과 함께 고민하고 있다. 우리에게 ‘존엄하게 죽을 권리’가 누구에게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우리는 오히려 삶을 더욱 소중하게 여기게 되지 않을까. 죽음을 피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지만 죽음에 대한 생각 자체를 피하는 것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고민의 과정을 삭제해버리는 정신의 나태함이 아닐까.

 

“나는 과학자인 데다 무신론자라서 그런 것들에 마음을 닫았었죠. 내세라든가 임사 체험 같은 거요”.
“하지만 25년간 호스피스에서 일하는 동안 기적적으로 살아난 사람들을 많이 봤어요. 그들의 체험담
이 놀랍도록 비슷한 걸 보면 그냥 우연일 수는 없죠. 게다가 그들이 이런 체험을 할 때는 뇌가 새 이미
지를 만들 수 없을 때죠. 이건 반대자들도 동의해요.”
– 정현채,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 없는가』 중에서

 

저자는 죽음을 직시하게 되면서 오히려 더욱 활기차고 겸허하게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고 고
백한다. 연구실 비품이나 자료를 학교의 의학역사문화원에 기증하기도 하고, 매년 다섯 번씩
이나 헌혈을 하고, 원하는 이들에게 자신의 강의 노트를 무료로 복사해 주기까지 한다. 그는
장기 기증 서약서와 유언장, 자신이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되면 기도 삽관이나 연명 의료를 하
지 말라는 내용의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쓰고, 자신의 장례식에 쓸 음악을 USB에 담아두었으
며, 수의 대신 무명옷을 입히고 화장해 바다에 뿌려달라는 사전장례의향서도 만들어놓았다고
한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기만의 죽음관을 가지라’고 격려한다. 그것은 아름답고 존엄
하게 죽을 권리를 찾는 것이 인간의 소중한 권리임을 직시하는 따스한 조언이다. 오히려 일찍
부터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적극적으로 고민하는 것이 더 좋은 삶의 자세다. ‘어떻게 아름답게
죽을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우리는 오히려 삶의 한순간 한순간을 소중히 여기는 겸허함을 배우
기 때문이다.
저자에게 죽음은 벽이 아니라 문이고, 소멸이 아니라 옮겨감이다. 즉 죽음은 사방이 꽉 가로
막힌 밀폐된 공간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향해 뚫린 문이며, 단순한 육체적 소멸이 아니라 또
다른 정신적 차원을 향한 옮겨감이다. 죽음의 과정 자체를 모두 병원과 의사가 관장하게 되면
서 ‘죽음에 대한 선고권’은 물론 죽음을 향한 온갖 처치들이 의학의 통제권에 들어오게 되면 어
떻게 될까. 수많은 사람들은 집이 아닌 병원에서 ‘객사’에 가까운 죽음을 맞게 된다. 의료진 역
시 환자의 죽음을 ‘삶의 필연적 과정’으로 보기보다는 ‘의료의 패배이자 실패’로 보는 시각이 일
반화되어 있다. 이렇게 되면 그 누구도 죽음을 있는 그대로 직시할 수 없게 된다. 모두가 죽음
을 직시하고 직면하기보다는 죽음을 회피하고, ‘실패’라고 여기고,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그래도 삶’이라고 착각하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존엄하고 아름답고 품위 있게 죽어갈 권리는 점점
요원해지게 되지 않을까.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는 죽음의 의미에 대해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문장을 남긴다. “인간
의 육체는 영원불멸의 자아를 둘러싼 껍질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죽음은 존재하지 않으며,
다른 차원으로의 이동이 있을 뿐이다.” 저자 또한 이 말에 동의한다. 그는 근사 체험을 환각이
나 소망투사(Wishful thinking)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시선에 의문을 제기한다. 근사 체험은 단
순한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앎’의 차원이라는 것이다. 근사 체험은 ‘뇌의 오작동’이 아
니라 다른 차원으로의 이동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으며,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는 차가운
과학 중심주의적 시선으로부터의 탈피를 의미할 수도 있다. 저자는 존엄한 죽음 아름다운 죽
음을 위해 ‘늙어감’에 대한 예찬과 죽음에 관한 올바른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죽음은 인
간의 정신이 성장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왜 “짐승에 대해서는 안락사가 허용되는데, 무슨 이유로 인간은 안 되느냐”는 문제 제기, 스
위스에서는 연간 약 6만 명의 사망자 중 대략 1,600명가량이 안락사를 택한다는 사실 등을 종
합해보면 우리는 ‘죽음에 대한 사유’ 자체를 피함으로써 ‘더 아름답게 죽을 권리’로부터 멀어지
고 있었음을 뼈아프게 깨닫게 된다. 이 책의 부록으로 붙어 있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하
기’를 작성하다 보면 죽음의 의미가 비로소 실감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삶에 대한
포기’가 아니라 ‘아름답게 살 권리’만큼이나 소중한 ‘아름답게 죽을 권리’를 지키는 일의 시작임
을 알게 된다. 이제 우리에게도 아름답고 품격 있게 죽을 권리, 그저 의미없이 ‘당하는 죽음’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주체적으로 ‘맞이하는 죽음’의 시간이 다가오기를.

 

정여울|작가. 저서로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월간정여울-똑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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