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생명의 존엄성 사이|식물, 허투루 건드리지 마라__양병찬

과학과 생명의 존엄성 사이
격월로 연재하는 <과학과 생명의 존엄성 사이>에서는 약사이며 과학 전문 번역가인 양병찬 선생이 식물과 새, 곤충 등 생명에 관한 흥미로운 최신 연구 결과를 소개한다.

 

식물, 허투루 건드리지 마라
– 그들도 나름의 신경계를 이용해 통증 신호를 전달한다

 


○ 우마미(うま味)를 이용해 통증 신호를 전달하는 메커니즘
일본 사이타마대학교(埼玉大學) 대학원 이공학연구과(理工學硏究科)의 도요타 마사츠구(豊田 正嗣)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식물이 ‘손상되었다’는 감각을 전신에 전달하는 메커니즘을 해명했다.
① 식물이 손상되면, 세포에서 우마미(감칠맛)의 원천인 글루탐산이 유출된다.
② 글루탐산은 잎맥에 발현된 두 가지 글루탐산 수용체와 결합한다.
③ 전신성 장거리·고속 칼슘 신호가 발생한다.
④ 관다발을 경유해 칼슘 신호를 전달받은 원거리 잎은 국소적인 손상 정보를 감지해,
장차 다가올 공격에 대비해 저항성을 상승시킨다. (참고 1)


동물의 신경세포는 글루탐산을 이용해 서로 대화한다. 흥분한 세포가 글루탐산을 분비하면, 주변의 세포에서 칼슘이온의 물결이 일어난다. 이 물결은 다음 세포로 계속 릴레이되어, 신경세포들 간의 장거리 의사소통을 가능케 한다. 그런데 그게 동물의 전매특허가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뇌 없는 식물도, 일종의 신경계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벌레가 당신을 깨물려고 할 때마다, 당신은 손바닥을 파리채처럼 휘두른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식물들은 그런 럭셔리한 도구를 갖고 있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놀라지 마시라. 과학자들에 따르면, 식물도 나름의 대책을 마련했다고 하니 말이다. 그것은 혁신적인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으로, 동물의 신경계와 똑같은 신호(전기신호)를 이용해 당면한 위험을 다른 신체 부위에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과학자들은 식물이 곤충 애벌레의 미세한 발가락 움직임까지 감지해, 기민하게 방어적으로 반응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참고 2) 모든 과학적 발견들이 그렇듯, 그들은 식물이 중력을 감지하는 방법을 연구하다가 우연히 이 사실을 발견했다.
과학자들은 칼슘 신호 전달이 중력 감지에 관여할 것으로 생각하고, 애기장대(Arabidopsis)의 유전자를 조작해 칼슘 수준이 상승할 때마다 형광(fluorescence)을 발(發)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형광현미경을 이용해 식물의 거동을 관찰할 때, 흥미로운 현상이 발견되었다. 중력은 차치하고, 조직 손상에 반응해 칼슘 수준이 극적으로 상승하는 것이 아닌가!
이는 식물이 추가적인 손상에 반응해 가드를 올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식물에게 촉감을 느끼는 신경이라도 있는 걸까?
모든 것은 글루탐산(glutamate)이라는 화합물과 함께 시작된다. (학창 시절 생물학 시간에 배운 아미노산이다.) 곤충에게 깨물렸든 예리한 물체에 베었든, 모든 종류의 손상은 글루탐산 분비를 초래한다. 글루탐산은 수용체를 활성화해 칼슘 기반 신호(calcium-based signal)를 촉발한다. 이 신호는 식물의 전신으로 퍼져 나간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칼슘 신호는 식물의 관다발계(vascular system)라는 녹색 고속도로를 불과 1~2분 만에 주파한다. 그리하여 방어 호르몬을 활성화하는데, 이 호르몬은 먼 곳에 있는 잎으로 하여금 임박한 침입에 대비하게 한다.
침입자를 알아차린 식물은 그들을 응징하기 위해 무기를 사용하는데, 식물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무기는 화학무기다. 식물은 특별한 화학물질을 생성해 맛없거나 소화가 안 되거나 심지어 독성을 띤 잎을 만든다. 그러나 이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화학물질을 만드는 데도 에너지가 들어가기 마련이다. 따라서 귀중한 에너지가 낭비되는 것을 막기 위해, 억제물질(deterrent substence)의 생성 장소는 공격받는 잎과 그 주변의 잎으로 국한된다. 최소한의 물질로 곤충에게 겁을 주어 쫓아낼 수 있다면, 굳이 전면전을 펼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식물은 매우 치밀하고 계산적이다. ‘문제 해결에 필요한 자원의 최소량은 얼마인가?’가 최대 관심사이므로, 굳이 사생결단을 하고 침략자에게 덤벼들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잎사귀 한두 개를 맛본 곤충이 먹기를 포기하고 날아가버리면 그만이다. 이 같은 계산과 전략은 거의 대부분 성공한다.
무릇 모든 살아 있는 존재에게 내부적 의사소통은 필수적이다. 세포들 간의 의사소통은 위험을 회피하게 해주고, 경험을 축적하게 해주며, 자신의 몸 상태와 환경 여건을 파악하게 해준다. 식물이 이런 중요한 메커니즘을 보유하지 않을 리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뇌가 없어서 곤란할 거라고? 사실, 뇌는 내부적인 의사소통의 필수조건이 아니다. 식물생리학자 스테파노 만쿠소가 『매혹하는 식물의 뇌』에서 말한 것처럼, 식물은 내부적 의사소통의 달인이다. (참고 3)
이러한 과정을 좀 더 잘 파악한다면, 과학자들은 식물의 신호 전달을 모니터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언젠가 식물의 커뮤니케이션을 조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만 생각할 게 아니다. 등산을 하거나 들판을 거닐다 식물을 스쳐 지나갈 때는, 그들이 바짝 긴장한다는 사실을 늘 명심하기 바란다. 식물 허투루 건드리지 마라.

동영상 : https://youtu.be/LeLSyU_iI9o
참고문헌 : 1. www.saitama-u.ac.jp/topics_archives/2018-0904-1014-19.html
2. science.sciencemag.org/content/361/6407/1112
3. 스테파노 만쿠소,『매혹하는 식물의 뇌』
출처 : http://www.sciencemag.org/news/2018/09/plants-communicate-distress-using-their-own-kind-nervous-system

○ 이번 호를 끝으로 <과학과 생명의 존엄성 사이> 연재를 마칩니다.

양병찬│서울대학교 경영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고, 진로를 바꿔 중앙대에서 약학을 공부했다. 약사로 활동하며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과 포항공대 생물학연구정보센터의 지식리포터 및 바이오통신원으로, 『네이처』와 『사이언스』 등에 실리는 의학 및 생명과학 기사를 실시간으로 번역·소개하고 있다. 주요 번역서로는 『자연의 발명』, 『매혹하는 식물의 뇌』, 『물고기는 알고 있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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