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제스트 심리 공감|슬퍼할 권리를 누릴 수 있을 때 살아갈 힘 얻어

슬퍼할 권리를 누릴 수 있을 때
살아갈 힘 얻어
『제대로 슬퍼할 권리』

 

패트릭 오말리·
팀 매디건 지음,
정미우 옮김,
시그마북스 刊, 2018

생후 9개월 된 아들을 잃은 상실의 고통을 경험한 저자 패트릭 오말리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오랫동안 슬픔에 관한 상담과 교육을 해왔다. 이 책은 저자 자신의 슬픔과 수많은 내담자들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슬픔의 단계 이론이 어떻게 슬픔을 극복하도록 압박하며, 슬픔을 극복하지 못했을 때 느끼는 죄책감과 수치심이 어떻게 애도자들의 고통을 악화시키는지 알려주며, 슬픔이 사랑에서 비롯된 당연한 감정이라는 사실과 슬픔과 공존하는 방법을 일깨워준다.

 

 

나는 슬픔의 단계(정신과 의사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1969년 저서 『죽음과 죽어감』에서 소개한 5단계를 가리키는 것으로, 불치병 환자는 부정(denial), 분노, 타협, 상실감(우울), 수용의 과정을 겪는다는 내용)가 현실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최소한 일반적으로 알려진 대로 엄격하고 고정된 방식으로는 적용되지 않았다. 나는 또한 경험을 통해 중요한 교훈을 배웠다. 슬픔의 단계와 같은 이론들은 오히려 유족들에게 상처를 준다는 사실이다. 그런 이론들은 (…) 사람들에게 족쇄를 채우는 격이었다. 그것은 인위적으로 부당하게 고통의 시간표를 규정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유족들은 그들의 경험이 알려진 이론과 일치하지 않을 때는 상실의 고통 외에도 자기회의, 자기비판, 수치심으로 괴로워했다. __p. 38
슬픔이 사랑의 한 기능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은 나의 내담자들에게도 항상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 그 감정은 비록 고통스러울지라도 망자를 기리는 것이었다. 긍정적인 것이었다. (…) 예전에 나는 이런 질문들로 괴로웠었다. “나의 내담자들은 뭐가 잘못된 걸까?” “나는 뭐가 잘못된 걸까?” 내담자들도 나도 잘못된 것이 아무것도 없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우리는 미치지 않았다. (…) 내담자들은 질문하곤 한다. “얼마나 오래 슬퍼하게 될까요?” 나는 되묻는다. “얼마나 많이 사랑하셨나요?” __p. 76~77

“슬픔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이야기되어야 한다. (…) 우리가 슬픔과 슬픔의 이야기를 수용하는 것은 인생의 덧없음을 깨닫게 해주기 때문에, 슬픔을 이야기하는 경험은 특히 중요하다. 그러나 현대의 빠른 속도는 우리에게 그러한 경험들을 무시하게 만든다. (…) 나는 사람들에게 “당신이 아이에게 생명을 주었을 때, 언젠가 맞을 죽음도 준 것이다”라고 말한다.” __p. 93
상실의 슬픔에 빠진 사람은 그들의 슬픔에 관련해 소통하려 하고 공유하려는 경향이 많으며 또한 여건만 된다면 외부의 도움을 기대한다. 반면 우울증은 소외되는 것이다. 슬픔에서는 슬픔이나 분노와 같은 감정들이 확대되는 반면 우울증은 감정이 무감각해진다. 우리가 봤듯이 슬픔은 대단히 긍정적일 수 있다. 반면 우울증은 종종 자기혐오와 열등감을 동반한다. __p. 126
(…) 긍정적 사고 운동은 사람의 생각을 엄격하게 자기 검열하도록 권장하는데, 문제는 그렇게 검열된 생각들이 원론적인 낙관론과 행복론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부정적인 생각은 당연히 피하고, 몰아내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결과는 인간성의 아주 중요한 부분을(우리의 진정한 감정과 감정적인 고통) 저 아래 지하로 몰아내는 것이다. 행복, 희망, 낙관론은 긍정적인 것이 되었다. 반면에 슬픔, 분노, 외로움, 우울, 두려움은 부정적인 것이 되었다. 부정적인 것은 나약함, 더 심하게는 정신적 질환을 의미하게 되어버렸다. __p. 199~200
대부분의 사람은 (특히 젊은 사람들은) 가슴 아픈 상실을 겪지 못했다. 그들은 애도하는 사람을 만나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긍정의 문화나 다른 곳에서 들었던 말에 의존하게 된다. 만약 당신에게 누군가 “그는 더 좋은 곳에 가셨어요”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후에 다른 곳에 가서 그 말을 똑같이 반복하기 쉽다. 애도자의 기분을 나아지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그와 함께 있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처음부터 저절로 알기란 힘들다. __p. 213
가장 일반적인 상투적인 표현들을 세 개의 그룹으로 나누어보았다. 첫 번째 그룹은 슬픔에 시간표가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시간이 약이야.” (…) “슬픔을 종결짓길 바라.” 다음 상투적인 말들은 우리가 가진 긍정의 문화의 산물이다. “강해져라.” “돌아가신 분도 네가 슬퍼하는 걸 원치 않아.” “생산적인 일을 하며 바쁘게 사는 게 중요해.” “지나간 일에 젖어 살면 안 돼.” “네가 가진 좋은 것들에 감사해야 해.” (…) 마지막은 종교적으로 상투적인 말인데, 신앙심이 깊은 사람은 슬퍼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신은 우리가 감당할 만큼의 시련을 준다.” (…)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어.” “그는 더 좋은 곳으로 갔을 거야.” __p. 235~236

정리│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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