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생명의 존엄성 사이|제왕나비의 비밀__양병찬

제왕나비의 비밀

 

제왕나비는 매년 9월 남쪽에 있는

멕시코 중부의 상록수림으로 이동하기에 앞서

로키산맥 동쪽에 수백만 마리씩 떼지어 모인다.

 

 

 

 

 

 

생생한 오렌지색과 아름다운 무늬 덕분에 제왕나비(Danausplexippus)는 생명의 미학적 아름다움(aesthetic beauty)의 두드러진 예로 손꼽힌다. 그러나 자연계라는 곳이 으레 그렇듯, 제왕나비의 피상적 아름다움은 그들의 생애 주기(life cycle)와 생화학, 그리고 그러한 형태와 기능을 갖게 된 이유를 좀 더 깊이 이해함으로써 무한히 향상된다.

매년 캐나다와 미국 북부에 가을이 다가오면, 수백만 마리의 제왕나비들이 고된 원정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북부의 혹독한 겨울철에 살아남기 위해, 그들은 자연계에서 가장 긴 여행 중 하나를 떠나야 한다. 그 내용인즉 무려 4,000km를 날아 남쪽의 따뜻한 지역으로 이주하는 것이다. 그건 그렇게 작고 연약해 보이는 피조물에게는 너무 먼 거리여서, 그들에게 ‘특별한 세대’의 탄생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성체 제왕나비는 평균 수명이 고작 4주(週)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남쪽 여행이 임박하면 므두셀라 세대(methuselah generation)라는 특공대가 등장하는데, 이들은 부모나 조부모보다 거의 열 배나 더 오래 산다.

최대 8개월 동안 사는 므두셀라 세대에게는 ‘오래 산다’는 특권과 ‘유전자를 다음 해까지 보존한다’는 책임이 있다. 북쪽의 숲과 들과 초원에 가을이 찾아오면, 여행 준비가 시작된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데다 자전축이 23도 기울어져 있으므로, 북반구에 내리쬐는 태양빛이 약해져 기온이 떨어지고 식량은 부족해진다. 9월 초가 되면, 어린 나비들은 낮의 길이가 짧아짐을 감지하고 꿀을 잔뜩 먹기 시작하는데, 이는 지방층을 여분으로 쌓아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높이기 위함이다. 기온이 감내할 수 없는 수준에 근접하면, 그들은 힘차게 날갯짓을 하며 날아오른다. 그것은 무작위적인 남쪽 여행이 아니다. 하루에 100km씩 비행하는 동안, 5억 마리의 나비들이 특정한 지역을 정확히 겨냥하기 때문이다. 그들 중에서 경험이 있는 나비는 한 마리도 없지만, 수천 년 동안 그들의 목적지는 늘 똑같았다.

매년 직면하는 도전을 해결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겠지만, 제왕나비는 시간과 별을 가이드로 이용해 숙련된 조종사로 진화했다. 그들은 로키산맥 동쪽의 출발점에서 시작해 미국 중심부의 대평원을 횡단해 남쪽의 습지로 여행한다. 그 과정에서 장거리 여행자들이 흔히 겪는 위험과 맞닥뜨리는데, 질병과 감염병, 악천후, 폭풍우는 기본이고, 수천 마리가 포식 조류(predatory bird)의 먹이가 되어 연례 여행을 접게 된다.

그러나 이처럼 벅찬 거리와 위험에도 불구하고, 매년 수백만 마리의 제왕나비들이 멕시코 중부의 심장부에 있는 상록수림의 작은 장소에 도착한다. 이보다 이동거리가 짧지만, 로키산맥 서쪽에 사는 제왕나비들도 비슷한 방법을 이용해 캘리포니아 남부에 안전하게 착륙한다.

마치 18세기의 탐험가들처럼, 제왕나비들은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의 위치와 생체 시계(internal clock or biological clock)를 가이드로 이용한다. 시간만 알면, 태양을 이용해 남쪽으로 방향을 정하기는 쉽다. 북반구의 경우 태양은 정오에 늘 정남쪽

에 위치하는데, 이 시간을 낮 12시로 정할 수 있다. 그런데 시계가 있다면, 당신은 하루 중 다른 시간에도 남쪽으로 방향을 잡을 수 있다. 시침(時針)으로 태양을 가리키면, 시침과 12시 사이가 정남쪽을 가리키게 되기 때문이다. 제왕나비는 이 기술의 정교한 버전을 이용해(이것을 시간 보정 태양 나침반[time-compensated Sun compass]이라고 한다), 장거리를 이동하는 동안 줄곧 남향(南向)을 유지한다.

제왕나비들은 정교한 눈을 이용해 태양의 위치를 측정하는데, 그들의 눈은 햇빛의 편광(polarization)을 탐지함으로써, 심지어 흐린 날에도 구름을 꿰뚫어볼 수 있다. 또한 그들은 스펙트럼 기울기(spectral gradient)를 이용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 기울기로 인한 하늘의 색깔은 태양과의 거리에 의존한다. 태양과의 거리에 따라 하늘의 색깔이 다른 것은 상이한 파장의 햇빛이 대기 중에서 각각 다르게 산란되기 때문인데, 일몰과 일출 때 하늘이 빨갛게 물드는 원리도 이와 동일하다.

제왕나비가 보유한 생체 시계는 더욱 교묘하다. 생체 시계는 자연계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며, 매우 오래된 진화의 발명품(evolutionary invention)이라고 여겨진다. 생체리듬(circadian rhythm)은 생체 시계의 작동을 필요로 하며, 가장 간단한 세균에서부터 가장 복잡한 포유류에 이르기까지 생물권의 어디에서나 발견된다. 생체 시계는 태양 자외선의 파괴적 효과를 보호하기 위한 형태로 진화했을 수 있다. 생물의 DNA가 손상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시점은 복제될 때이므로, 세포분열을 어두운 시간으로 한정하는 것이 유리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구의 자전에 동조된 생체 시계가 필요하다.

최근까지 제왕나비의 생체 시계는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뇌 안에 있을 거라고 가정되었다. 그러나 매사추세츠대학교 의과대학의 신경과학자들은 2009년 실시한 실험에서, 제왕나비의 생체 시계가 더듬이라는 섬세한 구조체 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제왕나비의 생체 시계가 특이한 장소에 위치하는 이유는 알 수 없다. ‘더듬이에 내장된 생체 시계에서 보내는 시간 정보’와 ‘눈에서 보내는 태양의 위치에 관한 정보’라는 두 가지 정보가 뇌의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전문 영역에서 결합해, 멕시코 중부를 향해 장거리 여행을 하는 동안 남쪽을 지

속적으로 겨냥하도록 해주는 것으로 보인다.

목적지에 도착한 후 다섯 달 동안, 몇 안 되는 멕시코의 계곡들은 10억 마리 나비들의 보금자리가 된다. 그들은 전나무 숲에 엄청나게 모여들어, 숲 전체를 온통 장엄한 오렌지빛 단풍으로 물들인다. 그러나 제왕나비의 이주는 생물의 보금자리가 고정된 장소가 아님을 보여주는 강력한 사례다. 그들의 보금자리는 (생존에 필요한) 일정 조건을 갖춰야 하며, 조건이 달라지면 목적지를 바꾸게 된다.

제왕나비는 생물학의 깊은 진실을 환기시키는 좋은 사례다. 그것은 ‘동물의 형태와 기능은 외부 요인과 떼어서는 이해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제왕나비의 행태와 생화학은 그들의 서식처, 다른 수많은 동식물들의 행태, 태양계의 역학에 의해 추동되는 계절 변화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지구의 자전축이 기울어지지 않았다면 우리가 아는 제왕나비가 존재할 수 없음을 알고, 나는 생물의 경이로움과 하찮음을 동시에 느꼈다. 자전축이 기울어지지 않으면 계절이 없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계절적 이주라는 진화의 명령(evolutionary imperative)도 없을 테니 말이다. 지구의 자전축이 기울어진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음에 틀림없다. 그것은 지구의 형성 과정의 유물이며, 그 역사는 45억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참고로, 목성과 수성은 거의 기울어지지 않은 데 반해, 천왕성은 아예 모로 누워 태양 주위를 데굴데굴 굴러가는 형국이다.

이는 일련의 흥미로운 질문들을 제기한다. 지구를 그렇게 당혹스러울 만큼 풍부하고 복잡한 생태계의 보금자리로 만든 요인은 뭘까? 생명의 진화에 필요한 최소한의 요소들은 뭐고, 이 요소들은 지구를 제외한 우주 전체에 얼마나 퍼져 있을까? 제왕나비, 전나무, 인간이 탄생한 것은 물리법칙의 필연적 결과일까, 아니면 존재할 확률이 매우 낮은 보금자리에 의존할까? 참고로 생명의 보금자리인 지구와 그 생태계는 우리 은하의 드물고 독특한 변두리에 있으며, 우리 은하는 관측 가능한 우주에 존재하는 수십 억 개의 은하계 중 하나일 뿐이다.

 

 

 

 

제왕나비가 스펙트럼 기울기를 이용해 태양의 위치를 확인하는 원리

장파장(녹색광, 왼쪽)은 태양반구(solar hemisphere)를 지배하고,

단파장(자색광, 오른쪽)은 반대쪽 태양반구(anti-solar hemisphere)를 지배한다.

 

 

 

 

 

 

 

 

 

이것은 제왕나비의 머리를 확대한 것으로, 길고 분절된 더듬이,

두 개의 분절된 눈, 돌돌 말린 주둥이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이 세 가지는 제왕나비의 가장 중요한 감각기관이다.

 

 

 

 

 

 

제왕나비는 생물학의 깊은 진실을 환기시키는 좋은 사례다. 그것은 ‘동물의 형태와 기능은 외부 요인과 떼어서는 이해될 수 없다’는 것이다. 지구의 자전축이 기울어지지 않았다면 우리가 아는 제왕나비가 존재할 수 없음을 알고, 나는 생물의 경이로움과 하찮음을 동시에 느꼈다. 자전축이 기울어지지 않으면 계절이 없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계절적 이주라는 진화의 명령(evolutionary imperative)도 없을 테니 말이다.

 

출처 브라이언 콕스, 『경이로운 생명』, p. 16~19

양병찬│서울대학교 경영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고, 진로를 바꿔 중앙대에서 약학을 공부했다. 약사로 활동하며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과 포항공대 생물학연구정보센터의 지식리포터 및 바이오통신원으로, 『네이처』와 『사이언스』 등에 실리는 의학 및 생명과학 기사를 실시간으로 번역·소개하고 있다. 주요 번역서로는 『자연의 발명』, 『매혹하는 식물의 뇌』, 『물고기는 알고 있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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