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까야 산책 17|출세간(出世間)의 다섯 가지 음식 (2)__이중표

출세간(出世間)의 다섯 가지 음식 (2)

 

지난 호에는 출세간의 5가지 음식 가운데 선식(禪食)과 원식(願食)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번 호에서는 나머지 염식(念食), 팔해탈식(八解脫食), 희식(喜食)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염식(念食)이란 사념처(四念處) 수행을 의미한다. 욕탐을 버리고 선정(禪定)을 닦아 무아(無我)를 깨닫고 원(願)을 일으킨 사람은 그 원을 실현하기 위해서 무아를 체화(體化)하는 수행을 해야 하는데, 사념처는 무아를 직접 체험하고 자기화하는 수행이다. 붓다는 『잡아함경(610)』에서 사념처를 세 가지로 통찰할 것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세 가지 통찰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통찰하는 것일까? 『잡아함경(609)』과 이에 상응하는 S.N. 47. 42. Samudaya1)에서는 사념처의 집(集; samudaya)과 몰(沒; atthagama)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음식(食; āhāra)이 쌓이면(集; samudaya) (身; kāya)이 쌓이고, 음식이 멸하면(滅; nirodha) 몸이 사라진다(沒; atthagama). 이와 같이 신집(身集)을 따라 관(觀)이 머물고, 신멸(身滅)을 따라 관(觀)이 머물며, 신(身)의 집(集)과 멸(滅)을 따라 관(觀)이 머물면, 곧 의지하여 머물 바 없게 되어 모든 세간에 취할 것이 영원히 없게 된다.

(觸)이 쌓이면 수(受)가 쌓이고, 촉이 멸하면 수가 사라진다. 이와 같이 집법(集法)에 따라 수(受)를 관(觀)하여 머물고, 멸법(滅法)에 따라 수(受)를 관(觀)하여 머물며, 집(集)하고 멸(滅)하는 법(法)에 따라 수(受)를 관(觀)하여 머물면, 곧 의지하여 머물 바 없게 되어 모든 세간에 취할 것이 영원히 없게 된다.

명색(名色)이 쌓이면 마음(心; citta)이 쌓이고, 명색이 멸하면 마음이 사라진다. 이와 같이 집법(集法)에 따라 마음(心)을 관(觀)하여 머물고 멸법(滅法)에 따라 마음(心)을 관(觀)하여 머물며, 집(集)하고 멸(滅)하는 법(法)에 따라 마음(心)을 관(觀)하여 머물면, 곧 의지하여 머물 바 없게 되어 모든 세간에 취할 것이 영원히 없게 된다.

억념(憶念; manasikāra)이 쌓이면 법(法)이 쌓이고 억념이 멸하면 법이 사라진다. 이와 같이 집법(集法)에 따라 법(法)을 관(觀)하여 머물고, 멸법(滅法)에 따라 법(法)을 관(觀)하여 머물며, 집(集)하고 멸(滅)하는 법(法)에 따라 법(法)을 관(觀)하여 머물면, 곧 의지하여 머물 바가 없게 되어 모든 세간에 취할 것이 영원히 없게 된다.2)

세 가지 관법(觀法)이란 신(身), 수(受), 심(心), 법(法)이 어떻게 집기(集起)하고 어떻게 멸(滅)하는가를 관(觀)하고 집(集)과 멸(滅)을 함께 관(觀)하는 것이다. 즉 몸은 음식을 섭취함으로써 음식이 집기한 것임을 관하고, 음식을 섭취하지 않으면 몸도 사라짐을 관한 다음, 음식을 취하면 집기하고 음식을 취하지 않으면 없어지는 몸이란 무상한 것임을 관하는 것이 신념처(身念處)의 세 가지 관법이고, 고락(苦樂) 등의 느낌[受]은 대상과 접촉할 때 생기고 접촉하지 않으면 사라짐을 관해 느낌이란 접촉에 의해 생기고 사라지는 무상한 것임을 관하는 것이 수념처(受念處)의 세 가지 관법이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이란 이름과 형태[名色]로 존재화된 대상이 있을 때 나타나고, 이것이 없으면 사라지는 무상한 것임을, 바꾸어 말하면 유위(有爲)를 조작하는 마음의 무상함, 즉 ‘제행의 무상’을 관하는 것이 심념처(心念處)이고, 모든 법은 마음의 기억작용[憶念:manasikāra]에 의해 기억된 것이 모여서 구성된 것임을 관해 그 실체가 없다는 사실을, 다시 말해서 ‘제법(諸法)의 무아(無我)’를 관하는 것이 법념처(法念處)이다.

사념처는 이와 같이 신수심법(身受心法)이 무상하게 조건에 따라 쌓이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해, ‘제행(諸行)은 무상(無常)’하고 ‘제법(諸法)은 무아(無我)’이기 때문에 이들을 자아로 취착할 경우 ‘일체는 괴로움일 뿐’이라는 사실을 자각하는 수행법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사념처의 수행을 통해 일체가 괴로움이라는 사실의 자각이 있을 때 추구하게 되는 진정한 가치가 괴로움이 없는 세계, 즉 열반이다. 따라서 소위 삼법인(三法印) 또는 사법인(四法印)은 사념처 수행을 통해 드러난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우리는 어떻게 사념처를 수행할 때 이와 같은 사실들을

명증적(明證的)으로 체험할 수 있을까? 사념처는 주관과 객관을 분별하는 상태에서 주관으로 생각되는 것[內]과 객관으로 생각되는 것[外]을 관찰하고, 주관과 객관의 상호관계를 관찰해 주객의 분별이 허구이고 모순임을 깨닫는 수행법이다. ‘무상(無常)’과 ‘무아(無我)’는 바로 이러한 허구의 자각이다. 그리고 주객이 분별된 상태에서 허구를 가치로 추구할 때 그것은 결코 우리에게 행복이라는 진정한 가치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의 자각이 ‘일체개고(一切皆苦)’의 자각이다.

신념처(身念處)에서 음식의 쌓임(食集)이 몸의 쌓임(身集)이라 했을 때, 음식은 객관이고 몸은 주관이다. 그런데 이 주관과 객관을 통찰하면 주관은 객관에 의해 유지되고 있음이 드러난다. 나의 몸이 아니었던 음식을 내가 먹으면 나의 몸이 된다. 그리고 나의 몸속에 있던 세포나 분뇨나 땀 등은 나의 몸을 벗어나면 객관이 된다. 내신관(內身觀)이란 이렇게 자신의 몸을 관하는 것이라 할 수 있고, 외신관(外身觀)이란 자신의 몸을 중심으로 몸이 되기 전의 음식과 나의 몸에서 배설된 분뇨, 땀 등을 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내외신관이란 객관이 주관이 되고 주관이 객관이 되는 주객의 상호관계와 그로 인한 주객의 무분별성(無分別性)

통찰하는 것이다. 주관적 존재와 객관적 존재가 대립하고 있다고 생각되던 존재의 세계에서 자신의 몸을 통찰함으로써 주객이 구별될 수 없는 연기하는 법계(法界)를 발견하는 것이 신념처(身念處)다. 우리는 신념처 수행을 통해 이와 같은 법계를 깨닫고 나의 몸이라고 취할 것이 전혀 없음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신념처 수행을 통해 자신이 망념으로 취착하고 있는 몸은 무상한 것임을 자각함과 동시에 무아임을 체득하게 되는 것이다.

수념처(受念處)도 마찬가지다. 고락(苦樂)의 성질을 가진 존재가 대상으로 존재하고 그 존재로부터 그 성질을 느끼는 감정이라는 존재가 있어서 고락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대상 접촉을 통해서 고락의 감정이 발생하고 있음을 관찰해 나의 느낌이라고 취할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깨닫는 것이 수념처다.

명색(名色)과 심(心)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에서의 마음(心)은 식(識)을 의미하는데,3) 우리가 대상을 이름과 형태로 분별하는 의식, 즉 마음은 대상 없이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에 대한 의식 현상임을 관찰해, 나의 마음으로 취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깨닫는 것이 심념처(心念處)다.

마지막으로 법(法)이란 십이입처(十二入處)가 보여주듯이 의(意)의 대상, 즉 객관의 총체이다. 이 법들은 전술한 바와 같이 모두 마음의 작용에 의해 법으로 규정된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을 관찰해 제법(諸法)이 무아(無我)임을 깨닫는 것이 법념처(法念處)다.

이와 같이 사념처는 신(身), 수(受), 심(心)의 무상함과 마음에서 연기한 법(法)의 무실체성(無實體性: 無我)을 체득하는 수행법이며, 주객(主客)의 대립 상태에서 연기하는 법계의 실상을 깨닫는 수행법이다. 다시 말해서 신(身)은 오온의 색(色)을 의미하고, 수(受)는 수(受)를 의미하고, 심(心)은 상(想), 행(行), 식(識)을 의미하고, 법(法)은 마음에서 연기한 것을 의미하므로, 사념처는 오온을 통찰해 그 실상을 깨닫는 수행법이라고 할 수 있다.

사념처는 오온의 실상을 깨닫는 수행법이고, 그 과정에서 오온의 실상을 깨달아가는 과정에 8단계의 해탈을 얻게 되는데, 이것이 팔해탈이다. 다시 말해서

사념처의 수행을 통해 오온이 무상하고 무아임을 깨달아가는 과정이 구차제정(九次第定)이며, 이 과정에서 팔해탈을 얻게 된다. 오온(五蘊)은 행(行)에 의해 조작된 유위(有爲)다. 따라서 유위를 멸하고 무위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행을 멸진해야 한다. 사념처는 오온을 통찰해 오온이 행에 의해 조작된 유위임을 깨닫는 수행이며, 구차제정은 신구의(身口意) 삼행(三行)을 차례로 멸진하는 수행이다. 붓다는 『잡아함경(474)』에서 구차제정의 수행을 통해 삼행이 멸하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초선(初禪)을 바르게 수행할 때 언어(言語)가 적멸(寂滅)하고, 제이선(第二禪)을 바르게 수행할 때 각관(覺觀)이 적멸하고, 제삼선(第三禪)을 바르게 수행할 때 희심(喜心)이 적멸하고, 제사선(第四禪)을 바르게 수행할 때 출입식(出入息)이 적멸하고, 공입처(空入處)를 바르게 수행할 때 색상(色想)이 적멸하고, 식입처(識入處)를 바르게 수행할 때 공입처상(空入處想)이 적멸하고, 무소유입처(無所有入處)를 바르게 수행할 때 식입처상(識入處想)이 적멸하고, 비상비비상입처(非想非非想入處)를 바르게 수행할 때 무소유입처상(無所有入處想)이 적멸하고, 상수멸(想受滅)을 바르게 수행할 때, 상수(想受)가 적멸한다. 이것을 점차로 제행(諸行)이 적멸(寂滅)한다고 한다.

이 경에서 언어(言語)는 구행(口行)을 의미하고, 출입식(出入息)은 신행(身行)을 의미하고, 상수(想受)는 의행(意行)을 의미한다. 그리고 구차제정은 삼행(三行)을 순차적으로 적멸(寂滅)하는 수행법이다. 구차제정을 닦아 삼행을 순차적으로 멸하는 과정에 8단계의 해탈을 체험하게 되는데, 이것이 팔해탈(八解脫)이며, 열반은 팔해탈을 성취함으로써 느끼는 행복이다. 이와 같이 사념처를 수행함으로써 팔해탈을 성취해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출세간의 5가지 음식 가운데 염식(念食), 팔해탈식(八解脫食), 희식(喜食)이다.

(身), 수(受), 심(心)의 무상함과 마음에서 연기한 법(法)의 무실체성(無實體性: 無我)을 체득하는 사념처는 오온의 실상을 깨닫는 수행법이다. 오온의 실상을 깨달아가는 과정에 8단계의 해탈을 얻게 되는데, 이것이 팔해탈이다. 열반은 팔해탈을 성취함으로써 느끼는 행복이다. 사념처를 수행함으로써 팔해탈을 성취해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출세간의 5가지 음식 가운데 염식(念食), 팔해탈식(八解脫食), 희식(喜食)이다.

1) S.N. Vol. 5, p.184

2) 대정장 2, p.171b

3) 『잡아함경(55)』에서는 ‘名色集則 識集’이라고 한다. 따라서 ‘心集’은 ‘識集’을 의미한다.

 

이중표│전남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대학원 불교학과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불교학연구회 회장을 지냈다. 현재는 전남대 철학과 교수로 있으면서 동 대학 호남불교문화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아함의 중도체계』, 『근본불교』, 『붓다가 깨달은 연기법』 등이 있으며, 『불교와 일반시스템 이론』, 『불교와 양자역학』, 『맛지마니까야』 등의 번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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