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에서 온 편지|가진 것을 줄이면 ‘행복’이 보일 때가 있다__김산들

 

가진 것을 줄이면 ‘행복’이 보일 때가 있다

“가끔 ‘꿈’도 정리할 필요가 있다. 내가 가진 많은 물건을 하나둘 정리하다 보면 삶은 단순하고 편안해진다. 사용하지 않고 쌓아두기만 하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난감해지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것처럼 내가 가진 많은 꿈도 하나둘 정리하다 보면 단순하게 행복해질 때가 있다. 꿈을 사용하지 않고 매일 열망만 하다 보면, 우리는 매번 꿈에 목말라 불안과 절망을 느낀다. 적어도 내 꿈이 편안한 행보이기를 바라며, 필요 없는 꿈은 훌훌 털어버리고 단순해지는 것도 삶의 무게를 줄이는 한 방법이리라.”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과 함께 자전거 산책에 나섰다. 햇살이 길게 늘어지는 저녁녘의 고즈넉한 풍경은 세상 모든 평화가 이곳에 다 녹아드는 듯하다. 세 아이는 졸망졸망 내 앞을 쌩하고 앞만 보고 달려간다. 물론 중간중간 자전거를 멈추고 눈에 들어오는 특별한 무언가를 유심히 관찰하기도 했다.

세상의 모든 부모가 그렇듯 자신의 아이들을 보면서 젊었던 과거와 현재의 일,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저 아이들은 미래에 어떻게 살아갈까? 우리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물려줄까? 내 젊음은 이대로 사라지는 것인가? 이곳에서 이루고자 하는 일은 진정 내가 원하는 일인가?

이런저런 여러 상념에 젖다 보면 현실의 나를 돌아보게 된다. 사람은 남과 비교하는 존재인지 나도 어쩔 수

없이 남과 비교한다. ‘나도 왕년에는 하고 싶었던 일도 많았고, 지금 당장 이루고 싶은 일도 많은데…, 남들은 벌써 이런저런 일 다 하고 사는데…’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이런 나를 부러워한다. 자연에서 세상 다 가진 듯 아이들을 키우며, 자상한 남편과 유기농 먹을거리에, 소위 ‘이상적인 가정’을 꾸린다며 다들 부럽다고들 한다. 우리는 이렇게 ‘현실의 나’보다 ‘다른 이의 삶’과 비교하는 상대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다.

“에이! 지금 못하면 다음 생에라도 할 수 있겠지. 그냥 다음 생에 하고 싶은 일, 다 하기로 하고, 지금은 이 아이들과 함께하는 생을 즐기자고!” 순간 이렇게 마음을 돌려 잡는다. 생에 대한 ‘체념’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현실 받아들이기’를 한다. 일단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리고 마음도 가볍고 행복해진다. 나를 부정하면서 더 많은 것을 원하고, 더 좋은 것을, 더 많이 갖지 못해 불안하던 마음이 멀어진다. 있는 그대로 가진 것만으로도 사실 다 살아갈 수 있고, 행복해질 수 있다. 많이 먹는다고 더 행복해지는 게 아닌 것처럼, 많이 갖는다고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다. 그냥, 내게 필요한 것만 있어도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걸 우리는 잊고 산다.

자기에게 주어진 생을 묵묵히 사는 생명체를 보면, 작은 곤충이든, 큰 가축이든 더 큰 욕심을 내지 않고 그저 살아가기만 한다, 그게 모든 생명체의 숙명이니…. 그런데 인간은 그게 아닌가 보다. 가진 게 없다고 얕잡아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남을 누르고 이겨 쟁취하면 삶이 풍요로워지는 듯한 이들도 있다. 물론 인간의 사고 능력은 동물과 달라 삶의 방향 또한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좋은 에너지를 왜 다른 곳에 쓰지 않는 것일까? 남과 비교하며 무엇인가를 쟁취하기 전에, 내가 이 세상에 좀 더 영향력을 발휘해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게 만드는 초월적 에너지를 쓰는 것은 어떨까? 모두가 동참하며 공감하는 공생적 삶을 말이다. 행복이란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내 주변과 사회적 관계, 그리고 함께하는 공간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개인 하나하나의 동참과 공감이 필요하다.

요즘은 이런 생각이 든다. 나에게만 집중하던 젊음의 에너지를 나와 자연, 미래의 후손에 집중하자고. 마치 해바라기가 자랄 때는 해만 바라보며 치열하게 크다 씨가 붙어 무거워질 때는 땅만 보는 땅 바라기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후손에게 물려줄 자신의 유산이 미래를 위한 단단한 버팀목이 될 수 있게 좀 더 세상을 향한 시선을 키워야 할 때라는 걸 느낀다. 실천하고 동참하며 보호할 가치가 꿈의 일부가 될 수 있도록 우리도 공생하는 꿈을 한번 키워보면 어떨까?

단순한 현상을 이야기하자면, 요즘 유튜브 먹방 채널을 보면 우리나라 현대인이 가진 문제가 집중된 듯하다. ‘30만 원어치 연어 먹방’, ‘10마리 치킨 먹방’, ‘10봉지 라면 먹방’, ‘캡사이신

매운 냉면 먹방’ 등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극단적이고도 거대한 먹방을 선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이런 모습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낀다고들 한다. 왜? 이렇게 대리만족까지 느끼게 될 정도로 이런 현상이 대중화되었을까?

우리가 불행하고도 불안한 삶을 살기에 식사하는 모습마저 위안이 되는 건 참 슬픈 일이다. 가족과 함께, 사랑하는 누군가와 함께, 마음 맞는 가까운 지인과 함께, 소소하지만 일상의 대화를 이어가며 식사하는 즐거움을 우리는 언제부턴가 잃어가고 있다.

또 엄청난 식사량이 주는 포만감은 인간의 이기와 환경 파괴를 절대적으로 보여준다. 10마리 튀긴 닭을 먹는 동안, 어떤 이는 한 끼 식사를 하지 못해 굶는 이도 있을 것이고, 10마리 닭이 시장에 나오는 동안, 지구는 더 온난화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연어를 기르기 위해 양식하는 바다는 오염으로 바다 생물이 살지 못하는 불모지가 되며, 먹방 진행에 사용한 위생 장갑은 쓰레기가 돼 어느 바다로 흘러가는지 생각 없이 우리는 소비하기만 한다. 인간이 가진 그 좋은 에너지를 과하게 쓰는 곳에만 집중하며 소비하는 게 안타깝기만 하다. 개인의 이익 앞에서 공생해야 하는 참모습은 뒤로 가버린 채, 더 많이 먹고, 더 많이 예뻐지고, 더 좋은 옷을 입어야 행복한 줄 아는 게 요즘의 현실이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행복의 문제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도 아니고, 과하게 소비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나만 행복하면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나와 사회, 나와 자연, 나와 지구와 관련한 모든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될 때 우리의 행복도 서서히 회복된다. 아이들의 미래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걱정해야 하며, 그 대책을 세우고, 함께 교육하며 지켜가는 게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작은 행복의 실천이다. 요즘은 그렇다. 내가 이루지 못한 욕망을 뒤로하고, 인간과 자연, 생태계와 환경을 내 일처럼 걱정하며 실천하는 소소한 일상이 더 많은 행복을 가져다준다. 결국 행복한 삶은 욕심을 버리고 다 함께 공생하며 나누는 삶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로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김산들│스페인에서 언어와 도자기를 공부했다. 스페인 관련 블로그(www.spainmusa.com)를 운영하면서 여러 방송 매체에 스페인 정보를 제공, KBS 다큐 <공감>, <인간극장>, EBS 세계견문록 <스페인 맛에 빠지다> 등에 출연했다. 현재 해발 1,200m 스페인 고산평야에서 친자연적인 삶을 살면서 한국과 스페인의 일상과 문화를 글로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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