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찾기 | 찰나가 영원이 되어 다시 일상으로, 스포이드__박예슬

찰나가 영원이 되어 다시 일상으로

스포이드

아름다움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지나치기 쉬운 일상의 곳곳, 어디나 아름다움은 존재한다.

강릉에서 유년기와 학창 시절을 보내고,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김혜정 씨는 얼마 전 “집에 바다를 들였다”고 알려왔다. 무슨 말인가 싶어 혜정 씨의 집을 찾아 거실에 들어섰을 때 그 말을 완벽히 이해할 수 있었다. 혜정 씨의 거실 소파에 바다 풍경을 가득 담은 쿠션이 놓여 있었고, 그 쿠션 상표에는 ‘주문진읍 해안로’라는 주소가 적혀 있었다. 일상의 풍경을 담아 소 품을 만드는 디자인 프로젝트 ‘스포이드(spuiiit)’의 고민이 담긴 결과물이었다.

“강릉에서 살 때는 고향이라는 개념도 없었고, 애틋한 것도 없었는데 거길 떠나와 서울 살이 를 하다 보니 때때로 문득 강릉이 그리워져요. 강릉 살 때는 바다가 지척이어서 마음이 답답할 때 걸어가서 바다를 보고 오고 그랬는데, 서울에선 바다를 볼 수 없잖아요. 휴가를 내서 당일 로 다녀오기도 하는데 그리움이라는 게 쉬이 가시질 않더라고요. 얼마 전 이사하면서 소품을 사려던 차에 이 쿠션 커버를 발견했어요. 주문진 해안로에서 찍은 사진을 쿠션 커버로 제작했 더라고요.”

스포이드는 일상 속에서 볼 수 있는 무늬를 발견하고, 라이프스타일 소품 안에 일상의 풍경 을 담백하게 담아내는 이희정, 김도경 디자이너 2인의 프로젝트다. 그야말로 너무나 소소해서 지나치기 쉬운, 삶 속에 숨어 있는 풍경을 촬영하고 주소와 함께 아카이빙하는 작업을 하고 있 다. 스포이드가 찾은 일상의 풍경은 쿠션, 코스터 등의 패브릭 소품뿐만 아니라 마스킹 테이 프, 휴대전화 케이스 등 휴대하기 좋은 소품으로 제작되어 다시 일상에 스며든다.

“평소에 생활 속에서 무늬를 찾고, 사진 찍는 걸 즐기는 편이었어요. 동네 패턴으로 제품을 만들고 싶다는 아이디어를 모아 제안서를 제출했고, 그 아이디어가 ‘사회적경제 아이디어 대회 위키서울’ 실행팀에 선정되어 서울시의 지원을 받게 되었어요. 흔히 볼 수 있는 익숙한 패턴들 로 제품을 만들면 예쁘겠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그렇게 시작했던 첫 작업 이후로,

종로에서는 전통과 근대의 모습이 공존하는 동네를 패턴으로 잘 담아낼 수 있을까, 강릉에서 는 자연의 영향을 많이 받는 생활 풍경을 수집하면 어떤 것들이 만들어질까 하는 궁금증으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답니다.”

2015년에 본격적으로 출발한 스포이드가 일상의 아름다움을 처음 기록한 곳은 당시 두 디자 이너의 주거 공간 겸 작업실이 있던 ‘성북’이다. 스포이드만의 시선으로 기록된, 그 동네에 이런 무늬가 있었나 싶은 감각적이고 세련된 패턴들은 성북 예술동의 리플릿에 활용되었다. 그다음 스포이드가 찾은 지역은 서울의 오래된 도시 ‘종로’다. 누하동, 가회동, 소격동 등 근대적 건축물 이남아있는서촌,북촌등종로일대의골목길을누비며기록한작업은에코백,손수건등의소 품으로 다시 탄생했다. 이어 찾은 강릉에서는 대관령의 안개, 항구의 생기, 일렁이는 바다 풍경 이 스포이드의 시선을 잡아끌었고, 쿠션 커버, 패브릭 포스터 등 일상에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소품에 그 풍경을 담았다. 놓치기 쉬운 찰나가 영원이 되어 다시 일상에 자리 잡은 것이다.

“스포이드의 제품들은 일종의 시리즈 개념으로 제작되고 있어요. 매번 콘셉트를 잡고, 나름 의 패턴 조합을 이리저리 맞춰가며 만들어요. 지금까지는 지역이나 계절을 각 시리즈의 테마 로 해서 콘셉트를 잡고, 제품군을 구성해왔어요. 색감이 어울리고, 함께 사용할 때 조합이 예 쁜지 꼼꼼하게 살펴 시리즈를 구성하고 있어요. 2년의 기간을 거쳐, 제품으로 선택하는 패턴의 기준이 조금씩 변하고 있는데 초기의 독특한 패턴에서 무난하고 편하게 잘 어우러지는 패턴으 로 바뀌어가고 있어요. 점점 질리지 않고 편안한 패턴들이 좋더라고요. 저희의 작업이 지역에기여한다거나, 지역을 상징적으로 담아내는 것은 아니에요. 저희는 그야말로 일상에서 찾고 꺼낸, 동네의 어딘가 그 자리에 원래 있던 것들을 발견하는 것뿐이에요.”

거창한 의미가 아니라 그저 좋아서 풍경을 찍고, 그 풍경을 담아내고 있다는 이희정 디자이 너의 솔직한 말에, 고향 바다 풍경을 집에 들여놓고 행복을 느끼는 혜정 씨가 떠올랐다. 소소 한 작업이 누군가에게 기쁨이 될 수 있다니, 얼마나 멋진가.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저희의 고민은 조금씩 변하고 있어요. ‘패턴으로 어떤 제품을 만들어 볼까’에서 시작해서, 패턴과 같이할 수 있는 패브릭 인테리어, 우리가 제안하고 싶은 감성과 무 드에 대해서도 관심이 커지고 있어요. 인터뷰가 책에 실릴 즈음에는 지금 열심히 만들고 있는 새로운 제품들도 공개될 것 같은데, 딱 이런 취지에 부합하는 제품들일 거예요. 여름 인테리어 에 어울리는 제품들을 준비하고 있으니 기대해주세요. 내년이면 만 3년이 넘어가는 스포이드 는 ‘어떤 공간을, 어떤 디자인을 만들어가고 싶은지’ 제안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되고 싶어요.”

어쩐지 잔잔하면서도 편안한 기분이 드는, 스포이드의 작업 결과물을 보면서 생각했다. 아 름다움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지나치기 쉬운 일상의 곳곳, 어디나 아름다움은 존재한다. 스포이드는 바쁜 일상에서 숨을 돌려야만 만날 수 있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 아름다움을 다시 곁에 두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평소보다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오면서 만나 는 익숙한 풍경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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