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본 아름다운 우리 절|안성 청룡사·칠장사__우태하·윤제학

광대의 집 청룡사,
의적의 집 칠장사

 

‘절’을 달리 이르는 말은 여럿입니다. 사찰(寺刹), 사원(寺院), 불사(佛寺), 불우(佛宇), 사우(寺宇), 범우(梵宇), 범찰(梵刹)… 그리고 절집. 시대와 맥락의 차이에 따라서 이런 말들이 생겨났을 텐데, 개인적으로는 ‘절집’이라는 말이 가장 마음에 듭니다.
‘절’이 부처님을 모시기만 하는 곳이라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절 또한 사람이 사는 곳입니다. 물론 세간의 우리와는 사는 방식이나 모습이 다른 스님네들의 집이긴 합니다만, 그곳은 언제나 세간 사람들에게 열려 있습니다. 세간과 절연된 출세간이라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요즘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받는 ‘템플스테이’는 이 시대의 부름에 응답하는 절집의 한 존재 방식일 것입니다.
억불의 시대였던 조선에서도 불교는 살아 있었습니다. 오히려 불교라는 종교의 존재 이유를 곡진하게 보여줍니다. 세상으로부터 손가락질받는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의 기댈 언덕이었던 것입니다. 경기도 안성에는 그런 절이 두 곳이나 있습니다. ‘청룡사’와 ‘칠장사’입니다.
안성 ‘남사당 바우덕이’는 안성 유기와 함께 안성을 대표하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대중 연예 집단이라 해야 할 안성 ‘남사당’의 근거지가 바로 청룡사였습니다. 장터와 마을을 떠돌며 봄부터 가을까지 춤과 노래를 팔아 연명하던 그들을 겨울 동안 거두어준 곳이 청룡사였던 것입니다. 청룡사를 본거지로 한 남사당패들은 다시 봄이 오면 청룡사에서 준 ‘신표’를 들고 안성 장터와 마을 곳곳을 돌며 기예를 팔았습니다. 당시의 아슬아슬한 세상은 외줄타기의 신명으로나마 위로받아야 했습니다.
한편 안성 ‘칠장사’는 조선 중기의 의적 임꺽정[?~1562(명종 17)]과 인연이 깊은 절입니다. 전해오는 얘기에 따르면, 갖바치 출신으로 당시 생불로 추앙받던 병해대사가 임꺽정을 제자로 거두었던 곳이 바로 칠장사였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병해대사는 실존했던 인물이 아닙니다. 벽초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에 나오는 얘기가 사실처럼 유통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임꺽정과 칠장사의 인연마저 허구인 건 아닙니다. 칠장사 극락전의 목조 불상은 임꺽정이 스승 병해대사를 위해 조성했다고 전해오는데, 충북대 연구팀이 불상 밑부분에서 나온 ‘봉안 임꺽정(奉安 林巨正)’이라고 쓰인 삼베 조각 등의 연대를 측정한 결과 1540여 년(±100년)으로 밝혀져 임꺽정과 칠장사의 관계가 사실이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렇다 해도 절에서 도적질을 장려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벽초가 주목했던 것은, 임꺽정을 도적으로 내몬 지배층의 가렴주구라는 당대의 모순과 그 모순을 외면하지 않았던 절집의 ‘아파하는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절은 집입니다. 세상이라는 고통의 바다에서 지친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안아주는 집, 피난의 집, 안심의 집입니다. ‘절집’은 그런 집입니다. 모두의 ‘우리 집’입니다.

 

사진│우태하(항공사진가), 글│윤제학(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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