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절, 그 숲|평창 상원사__남효창

상원사에서 채집한
식물들의 지혜

 

 

작은 한 그루 나무에서 웅장한 나무로 자란다는 의미는 단순한 부피 증가가 아니고, 그렇다고 단단하고 튼튼해지는 의미만도 아니며, 수없이 많은 꽃과 열매를 맺는 것도 아니다. 한 그루 오래된 거목으로 자란다는 것은 세상을 보는 방식이 달라진다는 의미다.

나무는 빛을 통해 에너지를 가름하고, 빛을 통해 이미지를 찾고, 빛을 통해 다른 생물들과의 소통을 위한 언어 수업을 받는다. 나무는 숲이란 자연에서 필수적으로 배우고 깨달음을 얻는 실제적 생물이다. 빛은 나무에게 건강한 육체와 건강한 영혼과 정신을 갖도록 권장한다. 나무는 빛으로 몸을 튼튼하게 가꾸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얻고, 언제 어느 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어느 방향으로 나뭇가지를 뻗어내야 하는지를 판단하는 정보로 활용한다. 나무가 먹고 살 수 있는 포도당과 과당이란 기본적인 음식의 재료와 몸을 구성하는 섬유질을 만들 수 있는 것도 빛에 의해서만 가능한 일이며, 나무가 자신이 사는 사회가 어떻게 작동되고, 자신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그리고 서서히 자신의 내부 세계와 만나게 하는 것도 빛의 역할이다. 그러니 빛은 나무에게 에너지(energy)와 삶에 필요한 핵심 정보(information)를 제공하는 셈이다. 빛을 통해 얻은 에너지와 정보를 바탕으로 나무들은 숲이란 관계 안에서 자신의 삶을 이끌어낸다.

나무는 자기 정체성을 화려한 꽃잎으로 환심을 사고, 어떤 생명체도 외면하기 힘든 매혹적인 향기로, 달콤한 당분으로 주변에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이는 동물들의 고유한 체취나 털의 다양한 색깔의 기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모든 것은 자신의 정체성과 존재감을 드러내는 행위이다. 그것이야말로 그들이 이 땅에 존재할 수 있는 강력한 생존 수단이다. 그들이 부리는 놀라운 기교는 곧 그들의 영혼과 정신을 이끌어낸다. 나무의 영혼과 정신은 잠시 빌려 사용하고 있는 자신의 온몸으로 흐른다. 사람의 혈관과 같은 도관과 가도관을 따라 필요한 곳 어디든지 자신의 정체성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그러한 실체를 드러낸 것이 바로 다양한 형태의 줄기와 가지 그리고 뿌리들이다. 주체성을 통해 고유성이 탄생하게 된다. 그렇다. 우리가 어디서 어떤 나무를 만나든지 간에 나무들 각각은 고유한 존재이며, 어쩌면 영원히 또다시 만나지 못하는 유일무이한 단 한 번의 만남이란 것을 인식하며 상원사의 나무들을 만난다.

나무는 빛을 통해 얻은 정보로 자신의 삶의 법칙을 규정한다. 그 법칙 중 가장 심오한 꽃과 나무의 가지 뻗음의 법칙을 상원사의 나무들에서 읽는다.

나무의 가지 뻗음은 지수법칙(law of exponent) 또는 기하학적 도형(a geometrical figure)으로 발달한다. 그 결과, 해를 거듭할수록 나뭇가지의 숫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하나의 가지로 시작한 나무가 20년 후에는 약 50만 개의 가지가 되고, 2개의 가지로 시작했다면 약 100만 개의 가지를 만들게 된다. 또 3개의 가지로 시작하면 약 150만 개의 가지가 만들어진다. 그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놀라운 상황은 지금부터다. 한 살을 더한 21년째는 무려 50만 개 가지가 100만 개의 가지로 불어나고, 150만 개는 300만 개가 된다. 상원사 주변엔 100년생 전나무들이 즐비하게 살아 있다. 100년생 전나무는 도대체 가지가 몇 개인 걸까? 계산해보면 ‘기하급수의 힘’을 비로소 실감하게 된다. 예를 들어보자. 누군가가 우리에게 10억 원을 한 번에 받을 것이지, 아니면 첫날 1,000원을 받고, 그다음 날은 1,000원의 두 배, 또 그의 두 배씩 해서 한 달 30일간 받을 것인가를 제안한다면 우리는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까? 당연히 후자다. 후자가 10억의 1,000배가 많은 돈이다. 나뭇가지의 나뭇잎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가지에 10개의 잎을 만들어낸다고 가정해보자. 100년 후에는 인간이 셈할 수 있는 수 개념을 넘게 될 것이다. 계산할 필요성이 없겠지만, 다행스럽게도 나뭇잎은 침엽수나 활엽수나 때가 되면 떨어지기에 천문학적인 개수가 나타나지 않을 뿐이다. 여기서 나무의 기하학적 생장 법칙에서 벗어나, 나무는 무엇을 얻기 위해서 복잡한 생장을 하며, 그 결과 우리는 무엇을 상상하고 유추해볼 수 있을까? 나무가 왜 높은 곳을 향해 기하학적 논리로 자라야 하는지는 분명하다. 빛이 있는 충분한 공간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아래에 있으면 빛을 많이 볼 수 없을 뿐 아니라 가지를 뻗을 충분한 공간 확보가 어렵다. 따라서 환경 조건에 따라 충분한 가지를 만들어내기 전에 많은 부분 가지들은 죽어서 발생되지 않게 된다.) 그리고 최소한 우리는 나무의 나뭇가지 총 개수를 알게 되면 나무가 몇 년을 살았는지 나이를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정확한 지수법칙에 의해 가지가 규칙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전나무와 같은 침엽수는 활엽수에 비해 가지의 뻗음이 대체로 단조롭게 발달하기 때문에 셈하기가 어렵지 않다. 나무마다 차이는 있지만 뻗어나가는 가지들은 매우 복잡한 형태로 공간을 활용한다. 하지만 다양하고 복잡하게 뻗어나가는 나무의 가지들은 한결같이 하나의 목적이 있다.

잎의 수와 면적을 어떻게 하면 극대화할 것인가이다. 더 자세히 보면, 복잡한 형상으로 가지가 뻗어가지만, 결국은 처음 시작한 단순한 상태로 나아간다. 마치 다양성을 통한 단순성의 효율화를 추구하는 듯하다. 본래의 단순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극도로 복잡한 양상의 가지들을 만들어낸다. 많은 가지를 뻗어내고 높이 자랄 수 있는 전략에 성공한 나무들은 그만큼 시련과 고통을 감내해야 했던 부분이 있었다. 들풀을 생각해보고, 높이 자라지 못하는 키 작은 관목류의 나무들을 생각해보면, 높이 자라는데 성공한 나무들을 이해하게 된다. 

높이 자라는 나무는 크게 두 가지의 문제를 극복해야 했다. 첫째, 땅에서 높은 곳까지 물을 운반해야 하는 문제, 둘째, 높이 올라갈수록 기온이 낮아지고 건조해지는데 따른 이의 극복 문제였다. 이런 점에서는 땅 가까이 자라는 들풀이나 키 작은 관목들은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키 큰 나무들은 왜 지상으로부터 중력을 역행하는 방향으로 높이 자라야만 했을까 하는 질문이 생긴다. 지상에서 멀어질수록 물 운송이 어려워지고, 기온이 낮아지며, 더 건조해진다. 그럼에도 나무들이 높이 자라는 것을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높은 곳을 점령하면 빛을 활용하는 면에서 매우 유리하기 때문이다. 높은 공간에서 넓은 면적으로 하늘을 점령하고, 많은 잎들을 만들어내 필요한 양분을 생산하는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나무의 겨울눈(冬芽, winter bud)1) 위치가 지표에서 25cm보다 높은 곳에 있는 식물을 정공식물(挺空植物)2)이라 한다. 지상 표면에서 2m 이상 높이에도 겨울눈을 만들어낼 수 있는 식물을 대형 지상식물이라고 하고, 25cm~2m 사이의 식물을 소형 지상식물이라 한다. 지상으로부터 땅속에 있는 물을 높이까지 빨아올릴 수 없거나 높이에 따른 추위와 건조 상황에 견딜 수 없는 식물들은 나무가 되지 못한다. 들풀들은 이러한 상황을 견딜 수 없어 겨울이 오기 전에 줄기나 가지가 지상에서 사라지는 전략으로 살아가는 식물이다. 단풍나무와 전나무와 다르게 진달래나 고추나무가 작게 자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지상에서 몇 미터 올라갈수록 그들이 생장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위 낮은 키의 관목들은 높이 자라지 못하는 대신, 땅에서부터 여러 줄기로 자라는 형태를 취하게 되었다. 관목이 무엇이고 교목이 무엇인지를 인지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왜 그들이 그러한 모습과 모양을 취하고 사는지에 대해 아는 것이 그들을 느끼고 반응하는 생명체로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된다.

꽃은 아름다움의 상징이다. 특히 야생에서 피는 꽃은 더 그렇다. 그래서 사람들은 많은 번거로움에도 불구하고 애써 들판에서 꽃을 찾고, 산에서 꽃을 찾는 즐거움을 기꺼이 만끽한다. 꽃이 좋아 꽃을 쫓아본 사람들은 안다. 꽃들의 형태가 얼마나 무궁무진하고, 아리송하고 불규칙적으로 나타나는지, 그 때문에 꽃을 공부하는 것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는 꽃들 입장에서 생각하면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꽃으로 생존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기발한 아이디어로 고유성과 정체성을 개발하지 못하면 매몰찬 자연에서 생존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꽃들이 살아가는 환경이나 사는 조건이 안락하고 좋은 경우에는 꽃들은 단조로워지고 스스로 내성을 가질 필요가 없어진다. 하지만 아무리 다양한 변화를 추구해야만 하는 꽃이라 하더라도 위에서 언급한 가지 뻗음의 법칙성과 규칙성이 있듯이, 꽃에도 그 규칙성을 발견하게 된다. 즉 모든 꽃의 기본 설계도면에는 다음과 같은 4가지의 규칙이 있다. 첫째, 꽃은 배열(配列)을 중시한다. 둘째, 꽃은 항상 대칭성을 추구한다. 셋째, 꽃은 완전성을 기한다. 그리고 끝으로 꽃은 항상 최상의 안정성을 추구한다는 설명이 식물세포 내 DNA의 염기에 기록되어 있다. 이 규칙성을 발견하게 되면, 아무리 복잡하게 보이는 꽃들이라 하더라도 그들의 서로 다른 모습을 식별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속씨식물의 꽃을 자세히 보면, 꽃은 강하게 튀어나온 화축(花軸)이라 불리는 곳에 앉아 있다. 환상(원형)의 위치에, 변형된 잎 기관의 여러 형태가 항상 같은 배열로 형성된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꽃은 방사형, 좌우대칭형 그리고 좌우상칭형으로 피게 되는데, 방사형은 대칭면이 2개 이상이며, 좌우대칭형은 대칭면이 2개이고, 좌우상칭형은 대칭면이 1개이다. 꽃 모양이 어떠하든 균형을 중시한다. 꽃은 완전화, 불완전화, 양성화, 단성화로 구분한다. 이 분류의 기준은 인간의 관점에서 나눈 것이다. 꽃 입장에서는 각자 꽃의 형태가 완전성과 완벽성에 기인하는 것이다. 꽃잎과 꽃받침이 없는 불완전화로 피는 꽃은 그 자체가 완전하다는 점이다. 모든 꽃의 부분(조직)들은 신장을 하고, 그에 따라 화축은 원뿔 또는 구 모양으로 자란다. 확장을 통해 원형이나 원반 모양의 불룩한 형태로 발달하는 이유는 완전성을 기하기 위함이다.

일반적인 경우에 화피(花被)3)는 꽃받침과 꽃잎을 일컫는다. 이 둘은 위치와 형태와 색깔로 구분된다. 항시 암술은 꽃의 정중앙에 있다. 암술을 중심으로 가장 바깥에 위치하는 꽃받침은 초록색으로 나타나는 게 일반적이며, 형태는 꽃의 종류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꽃받침은 안쪽의 꽃 조직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자신의 역할이 끝난 다음에는 떨어지지 않고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으며, 산딸나무4)나 누리장나무5)와 같은 경우에는 꽃받침으로 수분을 도와주는 동물들을 위한 친절한 안내표지판 역할을 하게 된다. 꽃잎은 꽃받침 안쪽에 위치하며 대부분 화려한 색깔을 띠며, 형태는 꽃받침보다 더 다양하다. 당을 필요로 하는 수많은 곤충들이 쉽게 찾아오게 하기 위한 또 다른 안내판이다. 그사이 자신의 목적인 수분이 이뤄지고 수정이 완료되면 꽃잎은 곧 떨어진다. 꽃잎과 꽃받침의 숫자는 대부분 같은 개수로 발생한다.

 

       

식물들 중에 홀로 자라는 것이 있는가 하면, 여러 개체가 함께 무리지어 자라는 식물이 있다. 예를 들어보자. 으아리(Clematis terniflora)와 큰꽃으아리(Clematis patens)는 비슷한 식물이다. 같은 속에 속한다. 하지만 으아리는 군집을 이루고 사는 습성이 있지만, 큰꽃으아리는 독립된 생활을 한다. (꽃이 아름다워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심어 화단이나 식물원에서 가꾸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자연 상태에서는 그런 습성을 보인다.) 군집을 이뤄 사는 으아리 같은 종들은 꽃의 크기가 대체로 작고, 큰꽃으아리 같은 종들은 하나의 꽃이 크게 나타난다. 꽃이 작은 식물은 군락을 이뤄 함께 자라는 것이 매개자에 눈에 잘 띄게 되며, 큰 꽃을 피우는 식물은 혼자 피어도 무리 없이 매개자의 눈에 잘 보이게 된다. 큰꽃으아리 종소명이 파텐스(patens)인데, 이는 꽃이 둥근 접시 모양이란 뜻이다.

식물이 만든 다채로운 색상의 꽃들과 풍성한 향기는 우리 눈을 즐겁게 한다. 하지만 식물 입장에서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따져 생각해보면, 식물의 내면세계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식물들의 이러한 표현은 건강한 자손을 얻기 위한 노력에서 온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왜 식물은 복잡하고 어려운 유성생식으로 자손을 남기려 온갖 노력을 다하는 것일까? 생물들에게 유성생식으로의 진화는 생존에 필수불가결한 선택이다. 서식하고 있는 환경이 시시때때로 요동치며 어떻게 얼마만큼 변화할지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이 연출되기 때문이다. 여름의 장마철은 매년 불규칙적이고, 비가 오는 시기와 빗물의 양을 예측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겨울철 추위 또한 얼마나 어느 정도 길게 이어질지를 예측할 수 있는 생물이 없으며, 꽃샘추위 역시 얼마의 기간 동안 이어질지 예측이 어렵기 때문에, 성급하게 꽃을 피웠다가 받아들여야 하는 피해는 식물들에게 가혹한 일이 된다.

이러한 변덕스럽고 불안정한 기후에 대처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혼란스러운 기후와 날씨 변화에 견뎌낼 수 있는 저항성을 갖는 것이다. 그중에서 다양한 유전자를 확보하는 일이 식물에겐 가장 강력한 자기방어가 된다. 다른 유전자와 유전물질을 교환하는 것은 이러한 이점뿐만이 아니다. 생명체의 수명이 길어질 수 있다는 점과 병원체의 공격으로부터 저항할 수 있는 내성이 강해진다는 점, 그리고 각종 기생생물로부터의 저항성이 강해진다는 점들이다. 결국 꽃이 존재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병원체에 대한 저항성을 기르는데 있다. 각종 미생물의 공격을 이겨내는 길은 오로지 다양한 유전적 정보를 얻어 그에 대항할 수 있는 능력이 유일한 수단이다.

나무는 자신의 과거를 압축해서 씨앗에 담아놓는다. 씨앗이 소생(甦生)한다는 건, 과거와 미래를 여는 순간이다. 씨앗 없이는 꽃도 없다. 얼마나 단단한 과거를 씨앗에 담느냐에 따라 상원사의 웅장한 전나무 같은 지금이 만들어진다. 그 ‘지금’은 추상적 개념인 미래의 시간과 과거의 시간을 구체적 시간으로 환원하는 작업을 상원사 숲이 하고 있다.

사진 제공|민현규(숲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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