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 강좌 | 강판권 교수의 화요 열린 강좌

나무를 이해하면 우리 존재를 이해할수있다.

모두 나무 이름을 하나씩 가져보길 권한다.
우리는 만나면 남을 헐뜯고 욕하기 바쁘다. 그러지 말고 나무를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라. 내 몸에 선한 기운이 축적된다. 그게 바로 호연지기다. 내 몸에 축적된 호의가 밖으로 드러날 때 다른 사람에게도 좋은 기운을 준다. 그래서서로기분이좋다.나무한그루를통해서 가지고 있는 무한한 잠재력을 발휘하시고
매일매일 극락에서 지내시길 바란다.

 

나는 역사학자이자 인문학자면서 동시에 나무를 학문으로 연구하는 대한민국의 첫 번째 학자 가 아닐까 생각한다. 인문학자의 의무 중 하나는 방법론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 무를 주제로 강연을 다니면서도 나무를 보여주지 않는다. 나무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나무를 만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오늘 나는 인문학자로서 나무를 어떻게 만나야 하 는지 전하려고 한다. 나무 만나는 법을 제대로 알면 우리는 모두 쉽게 극락에서 살 수 있는 방 법을터득할수있을것이다.

나는 ‘나무관세음보살’이라는 염불을 참 좋아하는데, 아재 개그 같겠지만 이 말을 들여다보 면 나름 철학이 숨어 있다.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모시는 전각을 원통전(圓通殿)이라고 부르며, ‘둥글 원(圓)’에 ‘통할 통(通)’을 쓴다. 둥근 나무는 세상 소리를 다 듣고 사람들은 그 나무에게 많 은 지혜를 배운다. 관세음보살에게 귀의하듯 우리가 나무를 대한다면 훨씬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나무를 만난다는 것은 일상에서 가장 쉬운 방법으로 가장 위대한 혁명을 이룰 수 있는 일이다. 나무를 만나는 방법만 제대로 안다면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쉽고도 가장 저렴하게 혁명을 이룰수있다.나무를이해해야만우리존재도이해할수있다.

나는 나무를 통해 ‘자존(自尊)’을 배웠다. 자존의 여부가 결국 삶의 가치와 의미를 갈라놓는다 고 확신한다. 자존을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삶의 목적이다. 자존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무엇인가? 자존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은 탓을 한다. 또 하나의 차이는 비교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존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수용성이 떨어진다. 자존은 하늘이 부여한 그 자 체로, 정체성이라 할 수 있다. 불교식으로 말하자면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청정한 존재이며, 관건은 그것을 드러내는가 아닌가에 있다.

『중용』은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 솔성지위도(率性之謂道) 수도지위교(修道之謂敎)”에서 시작한다. 하늘이 명한 것이 바로 인간의 본성이고 천성이다. 하늘이 주고 부모의 부모가 준 것이다. 하 늘에서 받은 천성대로 사는 것을 일러 도(道, 길)라고 한다. 결국 삶의 문제는 길의 문제이고, 그 길을 닦는 것을 가르침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가르친다는 것은 길을 일러주는 것이고, 길을 일러주는 것은 결국 천성을 드러나게 해주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행복하려면 자기가 타고난 능력을 드러내야 하는데, 우리는 그 방법을 잘 몰라서 헤매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길을 일러 주는 사람을 우리는 인문학자라고 부르며, 길을 일러주는 것을 나는 철학이라고 부른다. 철학 은 결국 방법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그 방법을 이야기하는 자가 철학자인 것이다.

하늘로부터 받은 우리의 본성이란 창의성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젊었을 때 나는 잘하는 게 별로 없었다. 대학이나 대학원도 제때 들어간 적이 없다. 그러다 처자식을 먹여 살릴 수조차 없 는 지경까지 이르렀을 때 나무를 만나게 됐다. 나무를 만나며 책을 쓰기 시작했고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었기에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 그전까지는 내게 책을 쓸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줄몰랐다.그러다절실한순간을맞이해서내안에있던능력을드러낼수있었던것이다.

『숫타니파타』에는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 렵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구절이 있다. 강아지는 조그만 소리에 도 놀라지만 사자는 어지간한 소리에 놀라지 않는다. 또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소한 일에도 걸 려 넘어지지만 바람은 그물에 걸리는 일이 없다. 연꽃은 진흙에 살면서도 더렵혀지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무한한 잠재 능력이 있다. 우리 모두에게는 연씨 같은 종자가 빛과 물을 기다리고 있다. 나의 자존은 나만의 자존이 아니라 내 아버지 어머니의 자존이자 할아버지 할머니의 자존이고 우리 조상의 자존이기도 하다. 따라서 나의 잠재 능력을 드러낸다는 것도 단순히 내 능 력을드러내는데그치는것이아니라,내몸속에있는유구한역사를드러내는것이다.

경남 함안의 성산산성에서 600년 된 연꽃씨가 발굴된 일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그 연씨를 물에 발아시켜 꽃을 보게 되었다. 그 연꽃을 보려면 함안박물관에 가면 된다. 600 년 전에 있던 것도 빛과 물을 주니 그 모습이 드러났다. 그렇다면 우리 안에 있는 종자는 어떻 게 드러낼 것인가. 나무를 하기 전까지 나는 자존이 별로 없던 사람이다. 내가 가장 수용하지 못했던 것 중 하나가 돌출된 이마였다. 아버지 이마를 닮았다고 탓도 많이 했다. 하지만 그런 다고 이마가 달라지겠나.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한 데 있었다. 수용하는 것이었 다. 내 모습을 완전하게 인정해야 하는데 그걸 부정하니까 부모 탓을 하게 되고, 그렇게 탓하 면서 어마어마한 비극이 시작된다. 그 비극이란 내가 가지고 있는 무한한 잠재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막아버린다는 것이다. 나는 나무를 알기 전까지 내 키가 작은 줄 알고 살았다. 그래서 신발에 깔창도 깔아보고 굽 높은 구두도 신고 별짓을 다해봤다. 하지만 나무를 알고 난 뒤에 내 키가 작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키가 작지 않다. 키가 크지 않을 뿐이다. 오로지 이 사실을 수용하는 데 40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나는 큰 키도 작은 키도 아니라 오로지 내 키 일뿐이다.내가이사실을인정하는찰나에내안의잠재능력이드러날수있었다.

관상(觀相)에서 ‘관(觀)’이라는 것은 ‘자세하게 보다’, ‘관찰하다’라는 뜻이다. 대충 보는 게 아니 라 매우 깊게 보는 것이다. ‘상(相)’은 ‘눈으로 나무를 보는 것이 서로’라는 뜻이다. 소통이란 이 처럼 마주하는 것이다. 최근 관상에 대한 책을 낸 지인이 내 관상을 보고는 이마 덕에 지금의 내가 있게 된 것이라 하더라. 본인이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것,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야 말로 자신의 장점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이 마음에 안 든다고 계속 쳐내기만 한다. 이 얼굴 은 사라지지 않는데 내가 계속 그것에 의미를 주는 거다. 하지만 내가 그것에 의미를 두지 않 는 순간, 다른 데 관심을 옮기는 순간 그것은 의미가 없어진다.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가 문제다.

자존이 안 되는 사람은 계속 비교한다. 『장자』에 그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기(夔)’라는 외발 짐승은 발이 많은 노래기를 부러워하고, 노래기는 발이 없는 뱀을 부러워하고, 뱀은 형체가 없 는 바람을 부러워한다. 자기 본성대로 능력을 드러내려고 하는 게 아니라 남과 자기를 비교하 는 것이다. 식물을 대할 때도 그렇다. 올해는 꽃이 일찍 폈다는 둥 늦게 폈다는 둥. 그 꽃들은 일찍 핀 것도 늦게 핀 것도 아니다. 모두 제때 핀 거다. 운문종의 개조 문언선사는 “매일매일이 좋은 날(日日是好日)”이라고 했다. 우리는 비가 오면 비가 와서 불만이고 바람이 불면 바람 분다고 짜증을 낸다. 하지만 날씨가 안 좋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단지 바람이 불고 비가 왔을 뿐. 바람이안불고비가안오면솔방울은어떻게생기고은행열매는어떻게맺을수있나.

우리는 식물에 대해 많은 오해를 한다. 가령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을 보자. 왜 ‘꽃처럼 아름 답다’고 하지 않고 ‘꽃보다 아름답다’고 비교를 하는가? 생명에 대해서는 ‘~보다’를 붙여서는 안 된다고 본다. ‘~처럼’ 하고 말하면 얼마나 좋은가. 모든 생명에는 절대 가치가 있다. 우리가 부르는 잡초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세상에 그냥 풀은 있어도 잡초란 없다. 잡목, 잡새, 잡어는 또 어떤가. 이게 우리의 인식이다. 가치관이, 세계관이 바뀌어야 한다. 그러려면 이 세계가 어 떻게 존재하는지, 생명체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알아야 한다.

생태(Ecology)를 보통 자연 생태라고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에코라는 것은 평등의 관계 성을 뜻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갑을관계에 대한 문제 역시 생태 문제다. 존 재를 평등한 관계로 바라보는 생태 의식이 부족해서 나타나는 문제다. 모든 존재들은 역할에 차 이가 있을 뿐 가치에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역할의 차이를 가치의 차이로 치환해버리는 데서 문제가 발생한다. 이처럼 생태 의식이 없는 것을 생태맹이라고 한다. 오늘날의 화두는 생태맹에서 벗어나 관계성을 회복하고 평등한 관계를 만드는 데 있다.

대구 팔공산 자락에 동화사란 절이 있는데, 이 동화란 오동나무 꽃을 뜻한다. 오동나무에 꽃 이 핀다는 것은 오동나무에 봉황(鳳凰)이 앉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오동나무를 심은 뜻 은 큰 인물을 기다린다는 것이다. 동화사에 봉서루(鳳棲樓)라는 누각이 있는데, 그 뜻은 봉황이 깃든다는 것이다. 봉황은 대나무 열매만 먹는다. 그런데 동화사 가봤다는 사람 중에 오동나무 본 사람 있나? 대나무 꽃 본 사람은 있나? 봉은 수컷이고 황은 암컷인데, 봉서루 앞에는 황(凰) 이 낳은 알을 조각해놓고 그 옆에는 대나무를 심어놓았다. 이처럼 완벽한 스토리를 재현해놓 았는데도 우리는 알지 못한다. 사찰을 답사할 때도 자연 생태와 인문 생태를 동시에 살펴야 제 대로 볼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 사찰은 자연 생태의 역사가 살아 있는 곳으로,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다. 그것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고 불교사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잘 봐야 한다.

나무는 땅에 뿌리를 박고 하늘을 향해 자란다. 하지만 나이는 옆으로 먹는다. 나는 이를 종 횡무진이라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종적인 삶을 산다. 그래서 비교한다. 하지만 진정한 삶은 나무처럼 수직과 수평의 삶을 동시에 사는 것이다. 나무는 하늘을 닮아서 모든 것을 수용한다. 위로는 하늘을 아래로는 땅을 받아들인다. 그래서 나무를 아는 것은 천지를 아는 것이고, 나무 를 만나는 것은 천지를 만나는 것이다. 천지를 안다는 것은 나의 삶을 안다는 것이다. 『주역』에 “자강불식(自强不息)”이라, 스스로 힘쓰면서 쉬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나무는 한순간도 게으름 피우지 않는다. 잎을 만들고 꽃을 만들고 열매 만들기를 반복한다. 하지만 우리는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할 수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꽃을 보면 예쁘다고 꺾고 은행나무 열매 보고는 냄새 난다고 뭐라 한다. 꽃이 비바람에 흔들릴 때 얼마나 아픈지 한번이라도 생각해봤나. 은행나무가 열매를 맺을 때 안부인사 한번 해봤나.

나무는 도망가는 법이 없다. 언제든 보고 싶어 찾아가면 그 자리에 있다. 게다가 나무는 평등하다. 부자건 가난한 이건 직접 가서 봐야 한다. 나무는 그 모두를 똑같은 모습으로 대해준다. 차별이 없다.

느티나무에 꽃 피는 걸 본 적이 있는가. 지천에 보이는 게 느티나무인데도 내 아버지는 구 십 평생을 사시면서 그 꽃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관찰을 해야 한다. 나무 전체의 수형을 잡 고, 그다음에 줄기를 보고, 그리고 열매를 보라. 찬찬히 보면 줄기도 각각의 모양이 있고 색깔이 있으며, 이파리도 그 모양이 있다. 햇살이 들어올 때 그 빛을 통해 아래서 보면 또 전혀 다른 모습이 나온다. 이렇게 나무를 관찰하다 보면 상상력이 일어난다. ‘아, 이건 이런 모양이구나’, ‘색깔이 이렇구나’ 하면서 내가 쓰지 않았던 마음이 그제야 드러난다. 상상이 드러난다. 내 가 아이큐 90에도 책을 쓸 수 있었던 건 그런 상상력 덕이었다. 나무를 수없이 보고 계속 상상 해서다. 여러분도 할 수 있다. 아주 쉽고 간단하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여러분 모두 나무 이름을 하나씩 가져보길 권한다. 내 이름은 쥐똥나무다. 우리 집사람은 라 일락이고, 큰애는 은행나무, 작은애는 느티나무다. 이것이 물아일체다. 친구들끼리도 나무 이 름을 하나씩 지어서 서로 그 이름으로 불러보라. 길을 가다 그 나무를 만나면 사진을 찍어 그 친구에게 전송해보라. 너를 만났다고. 얼마나 즐겁겠는가. 우리는 만나면 남을 헐뜯고 욕하기 바쁘다. 그러지 말고 나무를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라. 내 몸에 선한 기운이 축적된다. 그게 바로 호연지기다. 내 몸에 축적된 호의가 밖으로 드러날 때 다른 사람에게도 좋은 기운을 준다. 그래서 서로 기분이 좋다. 나무 한 그루를 통해서 가지고 있는 무한한 잠재력을 발휘하시고 매 일매일 극락과 천국에서 지내시길 바란다.

 

질의응답

◦ 나무에도 영혼이 있나? 나무 아래서 참선하면 나무의 영향을 받을까?

나무도 영혼이 있다. 나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위대하다. 이미 여러 과학자들이 많이 증명해냈다. 우리는 나무 없이 존재할 수 없다. 하지만 나무는 우리 없이도 잘 산다. 당연히 나무에도 영혼이 있고 나무 밑에 서기도 하면 그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

◦ 『장자』에 나무와 관련된 얘기가 많은 줄 안다. 세상에서 가장 정적인 존재가 나무인데 어째서 나무가 정중동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고 했을까?
나무는 오랜 세월 한 자세로 있으니까 정적으로 보이지만 그 삶 자체는 어마어마하게 동적이다. 나무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래서 질리지 않으니까 나무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 특별히키우는나무가있나?

나무를 키우지 않는다. 그 이유는 죽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나무를 잘 키우려면 우선 그 나무 의 성질을 잘 이해해야 한다. 10m 이상 자라는 나무를 교목이라 하고, 그 이하는 관목(떨기나무) 이라고 부른다. 크게 자랄 나무인지 아닌지 잘 살핀 후 나무를 심어야 한다. 나무가 잘 자랄 수 있게 터만 잘 만들어주면 그다음부터는 간섭하지 않아야 한다. 내 부모님은 너무 바빠서 평생 나를 간섭할 여지가 없었다. 내가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던 이유다. 나는 간섭을 받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나 스스로 만들어냈다. 이게 무위자연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그 나무만의 특성을 잘 알고 기다려만 주면 잘 자라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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