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이 아름답다|비닐·플라스틱 대란, 넋 놓고 봐야 하나?__변택주

비닐·플라스틱 대란,
넋 놓고 봐야 하나?

변택주│경영은 살림 연구가

 

지난 4월 초에 이사한 딸아이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전에 살던 오피스텔 경비실인데 종량제 쓰레기봉투에 담긴 쓰레기 가운데 비닐포장지 몇 장이 들어 있으니 와서 재활용 쓰레기로 분류해 버려달라는 요청이었다. 검색해보니 재활용할 수 있는 쓰레기를 종량제 봉투에 담아 버리는 것은 폐기물 관리법 위반으로 과태료를 물어야 한단다. 그런데 지난 3월 말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폐비닐을 버리러 갔다가 도로 가지고 돌아와야만 했다. 아파트 관리소에서 “재활용 분리수거 업체가 폐비닐을 받지 않는다고 하니 되가져 가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같은 수도권 공동주택 폐비닐 수거 거부 대란이 일어난 까닭은 지난 1월 중국이 폐비닐을 비롯한 재활용 고체 쓰레기를 수입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란다. 이 소동은 환경부와 지자체가 수거 업체들과 협의해 다시 가져가도록 하면서 급한 불은 껐다. 그러나 중국은 올해 말부터 페트병을 비롯한 전자제품과 같은 고체 재활용 쓰레기도 수입하지 않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완전히 분해되기까지 500년에서 1,000년까지 걸리는 비닐과 플라스틱들은 퍽 많은 숫자가 바다로 쓸려가고 있다. 이것들은 거북이, 바닷새들을 질식시키며, 고래와 돌고래 위장을 가득 채워 아사시킨다. 그러나 이런 사실들이 곧바로 내게 닥친 문제로 확 와 닿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플라스틱 조각은 사람이 직접 먹거나 크게 다칠 일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아주 작은 플라스틱이라면 문제가 달라진다.
지난해 한국해양과학기술진흥원 조사에 따르면, 경남 거제와 마산 일대 양식장과 가까운 바다에서 잡은 굴과 담치, 게, 갯지렁이 가운데 97%인 135개 개체 몸속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발견됐다. 지난 3월 영국 맨체스터대 연구진이 『네이처 지오사이언스』에 실은 논문에서는 우리나라 인천·경기 해안과 낙동강 하구가 세계에서 미세 플라스틱 농도가 두 번째, 세 번째로 높고, 서울도 9위 안에 들어 있다고 했다. 또 미국 뉴욕주립대 세리 메이슨 교수는 전 세계 8개 나라에서 11개 브랜드 생수 260병을 거둬들여 조사했더니 93%인 241병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나왔다고 지난 3월 밝혔다. 이렇듯이 비닐과 플라스틱 문제는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케냐에선 비닐봉지 쓰면 4년 징역형

케냐에서는 2017년 8월부터 비닐봉지를 쓰거나 만들고, 수입하면 최대 3만 8,000달러(약 4,260만 원) 벌금이나 4년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했다. EU는 한 사람이 한 해 동안 쓰는 비닐봉지 90개를 2026년까지 40개로 줄이겠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는 2015년 한 해 동안 한 사람이 420개나 썼다. 케냐는 그동안 다달이 2,400만 개나 되는 비닐봉지를 써왔다. 케냐 인구가 4,850만 명으로 5,000만 명 남짓한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계산해보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달이 쓰는 비닐봉지는 17억 5,000만 개로 케냐보다 무려 73배에 이른다.

 

 

플라스틱 쓰레기, 도로로 탈바꿈

인도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벵갈루루에서는 날마다 쓰레기가 5,000톤이 쌓인다. 이 가운데 재활용되는 것은 25%뿐이고, 나머지는 묻거나 태운다. 태우면 온실가스를 내뿜는 플라스틱 쓰레기는 1,500톤에 이른다. 쩔쩔매는 인도 정부의 숨통을 터준 것은 민간 재활용 업체다. 플라스틱 쓰레기를 아스팔트로 탈바꿈시키는 길을 튼 것이다. KK플라스틱(KK Plastic Waste Management)은 새로운 분자 구조를 지닌 비투멘(bitumen, 아스팔트 원료)을 찾아냈다. 이 ‘중합 비투멘’은 이제까지 나온 비투멘보다 인도 몬순 기후에서 더 잘 견딜 만큼 튼튼하다. 공사비용 또한 절반 가까이 낮다. 비닐 쓰레기 100톤이면 비투멘 40톤을 만들어낼 수 있어 도로도 깔고, 쓰레기도 줄여 일석이조이다. KK플라스틱 비투멘은 수단과 시에라리온, 뉴질랜드 같은 개도국과 선진국에 두루 수출되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플라스틱 없는 가게?

『허핑턴포스트』에 따르면 올해 1월 영국에 있는 한 대형 마트에서 ‘깐 앙파’를 팔기 시작한 것을 두고 논란이 일어났다. 까닭은 ‘깐 양파’를 싼 플라스틱에 있었다. 영국 트위터 유저들은 ‘흉물’이라고 꼬집고, “요즘 사람들은 대체 얼마나 게으르고 멍청한가?”라며 드잡이했다. 지난 1월 11일, 영국 테레사 메이 총리는 앞으로 25년 내에 모든 플라스틱 폐기물을 없애도록 하겠다고 밝혔던 것과도 맞서는 일이다. 그러나 『인디펜던트』는 많은 사람이 플라스틱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깐 양파’를 비난했지만, 장애가 있어 미리 손질된 음식 재료를 쓸 수밖에 없는 사람도 있다고 덧붙였다.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것을 두고 이러니저러니 입씨름을 벌이는 모습이 부럽기 그지없다.
올해 3월 초,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세계에서 처음으로 플라스틱 포장지를 없앤 슈퍼마켓이 등장해 눈길을 끌고 있다. 영국 환경 캠페인 동아리 플라스틱 플래닛(Plastic Planet)과 네덜란드 슈퍼마켓 브랜드 에코플라자(Ekoplaza)가 손잡고 에코플라자 매장에 ‘플라스틱 없는 가게(Plastic-Free aisle)’ 문을 연 것이다. 에코플라자는 유기농 식품만 파는 가게다. 이 가게는 인테리어를 할 때부터 아예 플라스틱 소재가 끼어들지 못하도록 디자인했다. 진열대도 플라스틱 진열대 대신 철과 나무 소재를 쓰고 라벨도 판지를 써서 만들었다. 가게를 찾은 손님들은 플라스틱 포장지에 담기지 않은 고기, 쌀, 초콜릿, 유제품, 시리얼, 과일, 채소 등 700여 가지에 가까운 품목을 고를 수 있다. 이 상품들은 플라스틱 재질 포장지 대신 유리, 철제 용기, 종이 용기에 담겼다. 흔히 유리는 뚜껑 부분에 얇게 플라스틱 소재로 코팅이 되어 있다. 그러나 이 가게에 있는 유리 용기 뚜껑 부분에는 플라스틱이 들어 있지 않아 몸에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다. 또 일부 품목은 자연 분해

되는 바이오 물질로 만든 용기에 들어 있다. 여기엔 소비자들이 쉽게 가려낼 수 있도록 ‘플라스틱 프리(Plastic Free)’ 마크가 달려 있다.
이런 친환경 포장 용기들은 에코플라자 플라스틱 없는 가게를 다른 ‘쓰레기 없는(No waste) 매장’과 차별화시키고 있다. 손님이 직접 물건을 담을 용기를 가져오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플라스틱 없는 가게는 여느 슈퍼마켓과 다를 바 없이 손님에게 쌀, 우유, 요구르트, 각종 소스를 편리하고 낯설지 않도록 하면서도 넌지시 플라스틱을 쓰지 않도록 알리고 있다. 플라스틱 플래닛 공동 창업자 시안 서덜랜드는 “소비자들은 수십 년 동안 음식과 음료에 플라스틱 포장지가 없어선 안 된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플라스틱 포장지 없는 슈퍼마켓은 그게 오해라는 것을 알려준다”고 말했다.
플라스틱 플래닛이 지난해 실시한 영국 소비자 설문 조사에서는 응답자 가운데 90%가 에코플라자처럼 ‘플라스틱 없는’ 슈퍼마켓이 들어서는데 힘을 보탰다. 에코플라자는 플라스틱 포장지를 없애는 프로젝트 가게를 올해 안에 74개로 늘리겠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있는 많은 슈퍼마켓이 에코플라자처럼 플라스틱 없는 가게를 열어 플라스틱 덜 쓰기에 뛰어들기를 빈다.

 

사탕수수로 만든 레고 브릭

완구 회사 레고가 사탕수수로 만든 플라스틱 브릭을 내놓는다. 나무와 나뭇잎, 덤불 같은 ‘식물성 플라스틱 브릭’ 생산에 들어가 올해 안에 팔기로 했다. 레고는 2015년 핵심 제품과 포장재를 ‘지속 가능한 소재’로 2030년까지 바꾸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지속가능소재센터(Sustainable Materials Center)를 세우고 10억 덴마크 크로네(한화 약 1,676억 원)를 투자해 지속 가능한 대안을 연구해왔다. 사탕수수를 원료로 만든 ‘식물성 브릭’은 그 첫 열매다. 이 브릭은 부드럽지만 튼튼해 이제까지 나왔던 플라스틱 제품과 다를 바 없다.
레고코리아 관계자는 새롭게 선보이는 지속 가능 레고 브릭은 100% 생분해성 소재는 아니라고 했다. 친환경 플라스틱 소재가 자연 분해되려면 특정 조건이 갖춰져야 하는데 실제 자연환경에서 이와 같은 조건이 들어맞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나와 있는 모든 친환경 플라스틱 소재가 다 그렇다는 얘기다. 따라서 지속 가능 레고 브릭은 앞으로 재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췄다고 한다.

되살림, 너도 살고 나도 사는 길

앞서 꺼낸 본보기들은 중앙정부를 비롯한 지방정부와 기업이 나서서 풀어야 할 것들이다. 그러나 정부나 기업도 모두 사람이 하는 일이다. 누군가 뜻을 내어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내디딘다면 이루지 못할 일은 없다. 그렇다고 해서 개개인이 손을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 인과에 시차는 있어도 오차는 없기 때문이다.
작게는 ‘①장바구니 가지고 다니기 ②페트병에 든 음료 사 먹지 않기 ③덜어 쓰는 리필용 제품 사서 쓰기 ④찻집에서 머그잔에 음료 달라고 하기 ⑤저마다 컵 가지고 다니기’처럼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챙겨서 해나가야 한다. 그렇게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재활용 쓰레기들은 잘 버려야 한다. 이를테면 페트병을 비롯한 병이나 캔들은 겉에 붙은 라벨들을 깨끗이 다 떼어내고 안에 든 것들을 싹 비우고 물로 말끔히 헹궈 내놔야 한다. 비닐이라고 해서 다를 바가 없다. 스티로폼에 김칫국물을 비롯한 얼룩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되살려 쓰지 못한다. 얼룩이 있는 것들은 떼어내어 종량제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려야 한다. 내용물을 깨끗이 씻어내지 않은 재활용 쓰레기는 되살려낼 수 없기 때문이다.
법정 스님은 2002년 부처님오신날, “목숨을 죽이거나 해치지 않는 것은 불자로 살아가는 핵심이다. 모든 목숨붙이는 부처 씨앗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어떤 목숨붙이를 죽이는 것은 그 목숨붙이가 부처가 되는 길을 가로막는 짓으로 크나큰 죄악”이라고 드잡이했다. 스님은 또 2005년 부처님오신날에는 “부처님은 어디서 오시느냐?”고 물었다. 어리둥절해하는 불자들에게 『열반경』 「범행품」에 나오는 ‘자비심이 곧 여래’라는 말씀을 들려주면서 ‘부처님은 자비심에서 오신다’고 말씀했다. 자비심이 곧 살림이다. 되살림, 너도 살고 나도 사는 길은 더디더라도 여리고 서툰 걸음을 내디디는 데서 열린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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